[비트겐슈타인과 정신분석] 존 M 히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 비트겐슈타인 (1889~1951) -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를 꼽으라면 비트겐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언어의 철학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가 한 말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언어로 소통한다. 언어는 복잡 다양한 인간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한 가지 의미와 감정도 여러 다양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단어로는 부족한 의사와 감정은 문장과 문단으로 좀 더 길고 상세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짧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길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의사와 감정을 전달하는데 가장 적절한 단어와 문장은 얼마나 그 글과 말이 이상적으로 잘 조합되어 있느냐가 관건이다. 단어와 단어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색함이나 모순 없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건 물론 말하는 화자나 쓰는 작가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듣는 청자와 독자의 수준 또한 중요하다. 화자와 작가가 청자와 독자보다 좀 더 넓고 깊은 소양을 갖춘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럼 서로에게 좋다. 언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순 없겠지만 그 모든 것의 본질에 가깝게 가장 많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언어를 가진 인간이 가장 위대한 인간이다. 작가는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이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우리는 자주 이런 표현을 한다. 언어의 한계를 자주 표현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한다면 그 자는 언어의 넓이와 깊이가 좁고 얕기 때문일 것이다. 표현하기 힘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이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숫자나 기호로 표현할 수도 있잖아요?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그럼 위대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렇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과학자와 수학자들은 언어가 아닌 간결한 숫자와 수학기호들로 세상을 설명했다. 그들이 말수가 적은 이유이다. 그 수식과 공식들이 지금의 현대 물질문명의 발전을 이룩했다. 그리고 더 많은 불변의 수식과 공식들을 발견해 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유도 언어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안다면 숫자와 기호의 발견도 언어를 통한 학습과 사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한 과학자나 수학자 중에 철학자가 아닌 사람은 드물다.
"인류에게 단 하나의 학문만 남겨야 한다면 무엇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AI에게 물었다. 혹시 몰라서 여러 AI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은 모두 철학(哲學, Philosophy)이었다. 철학은 언어로 표현된다. 철학자는 또한 작가이며 강연자(화자)이다. 언어를 쓰고 말하는 자이다. 철학은 정답이 없다. 숫자는 정답이 있다. 그래서 언어는 계속 분화되고 숫자는 한 곳으로 좁혀진다. 언어는 우주의 섭리를 따르고 숫자는 그 반대이다.
LLM(Large Language Model)의 등장
과거 Ai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바로 언어였다. 숫자는 일찍이 정복했다. 컴퓨터의 발명부터 연산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AI가 인간의 언어를 수년간 학습하면서 이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가능해지면서 언어는 더욱 중요해졌다. 무슨 말이냐 할 것이다. 이제 당신의 언어의 한계가 당신이 만들 수 있는 세계의 한계를 설정한다. 알다시피 컴퓨터는 1과 0이라는 숫자로 세계를 이해한다. 뭐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한 가지가 더 늘어나 그 세계의 이해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혀지긴 했다. 모든 경우의 수에 접근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답을 찾는 방식이다. 그것의 학습에 필요한 몸이 GPU(Graphics Processing Unit)이다. 때문에 지금 GPU대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엔비디아를 세계 최고 몸값을 가진 기업으로 올려놓았다. 물론 지금 시점에 구글이 TPU(Tensor Processing Unit) 다른 방식의 반도체 칩을 개발해서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 루이스 -
나의 좌우명이다. 이 말이 이제 현실이 될 것이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언어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당신이 AI에게 입력하는 언어, 정확히는 프롬프트가 얼마나 정교하고 넓고 깊이 있느냐에 따라서 출력되는 값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과거 인간이 컴퓨터를 이해하려고 컴퓨터 언어(Coding : C++, Java, Python 등등)를 배웠지만 이제 이건 쓸데없는 짓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컴퓨터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컴퓨터가 우리를 이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또한 더 효율적이다.
전 세계 화폐를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 코인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처럼 인간과 컴퓨터의 언어가 통합되어 번역과 전환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컴퓨터가 바로 이해하는 시대가 되었다. AI의 언어학습 모델이 이뤄낸 성과라고 해야 할까 아님 재앙이라고 해야 할까? 이건 뭐 몇 십 년 뒤면 이것이 재앙의 불씨였는지 축복의 불씨였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이 언어 학습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AI는 언어의 단순한 의미(비문학) 뿐만 아니라 언어가 가진 느낌과 뉘앙스(문학)까지도 학습하고 있다. 이건 소설과 시 그리고 강연자의 목소리의 높낮이와 억양과 어조까지 분석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위일체 (NSH =Nvidia – Samsung – Hyundai)
AI는 인간의 언어를 정교하게 이해하고 파악해서 그 언어를 현실에 구현해 내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AI에게 몸(Body)이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AI 산업(Software)과 로봇 산업(Hardware)은 병행 발전한다. AI두뇌를 담고 그 두뇌의 신경망의 정교함은 반도체(Semi-conductor)의 정교함과 같다.
얼마 전 Apec 회의에서 정상회담보다 더 큰 화제였던 것이 바로 반도체의 두 거물과 로봇기업 총수의 치맥 회동이었다. 삼위일체이다. 반도체의 두 핵심 축인 학습용 시스템 반도체인 GPU와 그 성능을 뒷받침하는 메모리(HBM, RAM) 그리고 그 AI 두뇌의 명령을 오프라인에서 실행할 바디를 만드는 로봇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이다. 바야흐로 Buying Korea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가 한국의 문화와 기술역량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능력 = 모든 능력
한국은 왜 뒤늦게 AI 산업에 뛰어든 것이며? 왜 GPU가 시급한가? 이건 한국어를 좀 더 완벽하게 이해하는 AI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AI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말만 하면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점차 갖춰가고 있다. 모든 산업이 AI에게 그 능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산업이 발전해 간다. 세상의 모든 물질을 AI가 움직이고 조합하고 연결시킬 수 있게 하는 시대를 만들려 하고 있다. 당신이 좀 더 비싼 구독료를 내고 AI에게 아주 정교하고 철학적이며 심오한 질문과 지시를 내리면 AI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와 산업의 변화에 따라 현재 한국의 교육 과정도 바뀌고 있다. 이제 학생들의 의무교육과정에 전 과목에 논술과 구술 평가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인간(소수 평가자)이 아닌 AI가 평가할게 될 것이다. 이건 모든 지식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교육이다. 문제와 주제에 대해서 자신만의 견해와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논거와 사례 그리고 그럴듯한 상상을 연결시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숫자와 기호로 이뤄진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어도 풀이 방식을 언어로 다른 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머리 안에 만 있는 것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다. 그럼 점에서 인간의 언어 능력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이제 지식은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하다. 지식을 어떻게 철학적 (이성) 사고 혹은 문학적(감성) 상상과 결합하여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AI가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실현시킬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언어가 현실이 된다. 그럼 언어능력이 실현(구현) 능력과 일치하게 됨을 의미한다. 만드는 과정은 모두 AI가 한다. 온라인은 AI 서버에서 오프라인은 AI로봇이 할 것이다. 그럼 인간이 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
잉여 인간과 그들의 부양(기본소득)
이런 변화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가져온다. 잉여인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음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잉여인간을 부양해야 한다. 부양이라고 하면 노약자나 아동만이 아니다. AI시대에 기존 산업과 직업들이 해체되고 인간의 노동력이 가치를 상실해 버리면 잉여 인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중 누군가는 AI 흐름에 올라타서 AI를 적극 활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AI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고 AI 산업을 막거나 늦출 수도 없다. 이건 국가 경쟁력이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AI를 개발하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다 같이 안 하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남(타국가들)들이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자체적인 AI 기술이 없으면 타국의 속국이 되고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 AI는 국경도 민족도 이념도 초월해서 작동하고 감시하며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그것에 길들여지면 벗어날 수도 없다. 국제사회는 약육강식의 법칙만 작동한다. 과거 역사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전 세계가 앞다투어 AI에 집중하는지는 이 때문이다. 새로운 글로벌 패권국가는 아마 AI로 모든 산업의 발전을 이룩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모든 산업에 투입되던 노동력이 AI로 점차 대체되어 갈 것이다. 부가가치(附加價値, Added Value)를 창출함에 있어서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고 임금(인건비)의 비중은 점차 사라져 갈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필요악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잠도 자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임금도 올려줘야 하고 파업도 한다. 하지만 AI 로봇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인간의 노동(임금)이 사라지면 상품의 가격은 내려가고 이윤은 올라갈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상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그렇게 벌어들인 이윤으로 대체된 노동인구를 부양해야 한다. 그래서 AI 산업이 중요하다. 왜냐 AI 산업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GDP를 제고하지 않으면 이 잉여인간들을 부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AI 산업에 뒤쳐진 국가의 국민들은 가난해지고 속국의 노예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
AI = 언어 = 나
AI의 활용능력은 인간의 언어 능력에 기초한다. 나의 언어능력(말과 글)이 정교하고 뛰어나면 그에 상응하는 AI가 도출해 내는 결괏값이 정교하고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 결괏값은 오프라인 세계의 AI로봇들을 통해 구현된다. 언어가 과거의 수많은 단계들을 생략하고 바로 현실 세계에 반영된다. 당신의 언어 능력이 전부가 된다. 비트게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언어능력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가 된다는 말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언어가 전부다. 나의 언어의 질(깊이)과 양(넓이)이 경쟁력이 된다.
당신은 동의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