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78 (개정판)
회사에서 명절 선물세트를 나눠주고 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명절 잘 보내고 오세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년 같았으면 홍삼 혹은 한우갈비세트등 여러 가지 고급 옵션이 주어졌겠지만 회사의 경영악화는 명절 선물세트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는 전 직원에게 일괄적으로 참치 혹은 스팸 세트만 전달되었다. 도과장의 새해 인사로 전 부서원은 컴퓨터 전원을 끄고 서로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새해 덕담과 악수를 나누며 회사를 나선다.
추석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해가 지나 또 다시 설날이다. 명절은 회사를 가지 않는다는 것과 명절 보너스가 있다는 것은 좋지만 나이가 들면서 친척 어른들을 보는 것이 그리 기쁘지만은 않다.
왠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유전자가 몸 속에 내장되어 있는 것인지 짝을 찾지 않는 혹은 찾지 못한 삼십대의 혼기 찬 남녀에게는 크게는 죄책감을 적게는 불편함을 피할 수가 없다.
“난 이제 시골에 안 갈끼다! 친구들이랑 필리핀 가기로 했다. 그리 알아래이! ”
그래도 남자인 나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인가 보다. 여동생은 그 불편함이 극에 달했는지 서른을 한 해 앞두고 명절 차례에 발길을 끊어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모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듯 보였다. 이젠 부모도 이길 수 없는 나이에 진입했다. 승리로 얻은 전리품은 여행인가 보다. 명절의 황금연휴를 온전히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시간으로 바꿔가는 듯 보였다. 나도 그런 여동생이 적잖이 부러웠지만 장남인 나까지 차례에 불참을 선언하면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진 아버지가 폭발할 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를 이을 아들로서 피할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른들은 자녀가 자신들이 그토록 지켜왔던 과거의 유산을 지키고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차례 상 위 지방(紙榜: 종이 조각에 지방문을 써서 만든 신주(神主))이 적힌 위패 앞에 엎드린 나를 내려다보시는 조상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가정을 일구고 자손을 퍼뜨리는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호통치는 것 같다.
고조부터 증조, 조부모까지 선대의 차례에 따라 절을 반복한다. 누구에게 절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따금씩 삼촌이 알려주는 구호에 따라 엎드렸다 일어났다를 계속 반복할 뿐이다.
계속되는 절하기에 밀려오는 어지럼증과 다리의 통증은 조상들의 유지(遺旨)를 받들지 않은 것에 대한 벌같이 느껴지곤 했다. 차례는 가문의 혈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을 주기 위한 년간 주요 행사가 되어가는 듯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미혼 남녀들이 섞이기 힘든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희택아~ 얼른 장가가야지!"
“그래 어디 만나고 있는 처자는 있는 기가?”
“아뇨 아직… 헤헤헤”
“야! 욘석아! 니가 그렇게 웃고 있을 때냐? 넌 번듯한 직장도 있고 사지도 멀쩡한데 왜 여자가 하나 없어? 너 아버지 생각도 좀 하고 해야지. 안 글나? 너보다 한참 어린 사촌동생도 벌써 애까지 생겼는데, 니가 형님이 되가 이라고 있어서 될 일이가?”
“아이고 희택 도련님도 이제 다 큰 어른인데 어련히 알아서 할라꼬요, 고만 좀 하이소”
“제가 도련님 중매라도 서야 겠네요 하하”
차례가 끝이 나고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덕담을 나눠야 하지만, 삼촌들과 숙모들이 생각하는 덕담과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많이 다른 듯 보인다. 그들의 입방아에 올라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는 한 숨을 내쉬며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대신 내뱉어 주는 삼촌들의 얘기를 멀찍이 떨어져 앉아 조용히 듣고 있다.
하필 얼마 전 아직 사회 물도 먹지 않은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사촌 남동생이 속도 위반을 저질렀다. 녀석은 이번 명절에 배가 남산처럼 불러온 앳된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둘 다 순수한 태초의 아담과 하와 같다 보인다.
둘은 순수한 이성(異姓)적인 끌림에 충실했던 모양이다. 일단 사고를 치면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법이다. 막내 삼촌과 숙모는 명절에 일가친척들에게 녀석을 속도 위반을 알리며 혼수로 애까지 만들어 왔다며 자랑 반 걱정 반 섞인 말을 전한다. 형제들 중에 가장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삼촌이 가장 먼저 할아버지가 되게 생겼다. 그 상황이 쑥스러웠던지 막냇삼촌은 형님 삼촌들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내보인다. 다른 삼촌들은 그 모습을 못내 부러워 하는 눈치다.
막내 삼촌은 이제 손주까지 키워야 할 판이다. 녀석은 사촌 형제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어찌된 일인지 어린애로만 보이던 사촌동생이 결혼을 하고 애까지 생기니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옛말에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서른이 훌쩍 넘고도 머리를 올리지 않고 댕기머리로 남아있는 나는 어른들의 눈에는 아직 어린아이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모양인 듯 했다. 하필 차분하게 이마를 가리고 내려앉은 나의 머리와 젤을 발라 이마를 드러내 세워 올린 사촌동생의 머리가 대조적으로 느껴진다. 어릴 때는 내가 업어서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던 녀석이었지만 이제는 말 붙이기조차 쉽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도 애 아빠의 무게감을 느꼈는지 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다. 그 모습이 이유 없는 어른스러움으로 느껴지곤 했다.
나처럼 사회에 때가 묻은 영혼은 보통 사고를 잘 치지 않는다. 다년간의 사회생활은 나에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만을 끊임없이 주입했고 그것에 밀려난 순수하고 감성적인 영혼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듯 보였다.
성인이 된 이후로 해마다 지내는 두 번의 대 명절마다 물어오는 나의 안부는 대부분이 결혼에 관한 것이었다. 만약 내가 아직 번듯한 직장이 없었다면 분명 취업에 관한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그럼 결혼을 했다면, 분명 자녀 계획을 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생은 마치 정해진 순서에 따라 안부를 묻고 그 안부에 답해 나가야 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난 어른들의 그런 시선과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려 차례가 끝나면 아직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은 철없는 사촌 동생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녀석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다 어둠을 틈타 탈옥을 감행한다. 그러면 의무의 시간은 끝이 나고 의무를 이행한 대가를 친구들과의 유흥으로 보상하며 나만의 자유 시간을 즐긴다.
어린 시절 명절의 의미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여섯 형제의 둘째로 태어나신 아버지와 나머지 형제들은 명절날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모여들었고 그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형제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자리인 듯했다. 어린 시절 차례(제사)가 혈육을 모이게 하는 중요한 행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나에겐 수많은 삼촌과 큰아버지에게 적지 않은 경제적 수혈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맛난 명절 음식들과 친척들로 북적대는 시골 할머니 집의 분위기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시골집 앞 마당에선 개와 닭이 오색영롱한 한복을 차려 입은 우리들과 어울려 뛰어다닌다. 김이 새어 나오는 부엌 가마솥 근처에는 숙모들이 모여 앉아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수다를 떨고 있다. 삼촌들은 차례상을 준비하며 분주한 명절날 아침을 맞이 한다.
아이들은 옆에서 어른들의 차례상에 오른 음식에 손을 대다 호통을 듣기도 한다. 이른 아침 차례가 시작되기 전 막내 삼촌이 결혼할 어여쁜 예비 숙모를 데리고 마당으로 들어오면 모든 친척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방과 마루까지 꽉 들어찬 대 식구의 대규모 차례 행사는 장관을 이루었고 어린 나의 머리 속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각인되었다.
그렇게 차례를 지내고 대가족이 식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아침을 먹으면 새삼 식구(食口)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최소한 일년에 한 두 번은 모여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가족으로서 연(緣)을 이어갈 수 있는 조상들이 지혜였을지도 모른다.
명절의 차례는 결국 식구가 모이게 하는 수단이었다. 모든 것이 조상을 기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결국 조상이 우리들을 모이게 해주는 명분을 만들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제사는 안 지낼끼다!”
“큰형님! 그게 무신 말입니까? 제사를 안 지낸다 카는게?”
“어무이랑 아부지하고 다 얘기 끝냈다. 그리들 알아라!”
뒤늦게 찾아온 큰어머니와 큰아버지를 필두로 한 집안의 종교개혁은 그런 명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백부(伯父)와 백모(伯母)는 아마 백번(百番)도 넘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결국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했다. 할머니는 돌연 제사 지내는 걸 중단하셨다.
형제들은 모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삼촌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핑계로 고향을 찾지 않았다. 한 해에 두 번 같이 먹던 밥상은 사라지고 식구라는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듯 했다.
몇 해가 흘렀고 결국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세상을 떠난 두 분의 기독교인을 위한 차례를 지내기 위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남긴 땅과 유산은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준 큰아버지 내외에게로 돌아갔고 두 분의 장례를 끝으로 형제들과의 인연을 끊었다.
당시 나에겐 눈 앞에 보이는 맛있는 명절 음식들과 같이 뛰놀 수 있었던 사촌형제들과 정겨웠던 시골 마당 그리고 항상 나의 주머니를 채워주던 어른들의 세뱃돈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라는 존재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다.
“부처님! 제발 예수님을 물리쳐 주시고 다시 가족들을 모일 수 있게 도와 주세요”
당시 그 모든 것을 앗아간 형체도 실체도 알 수 없는 성경책 속에 존재하던 예수에 대한 미움이 커져갔다. 그 때 나의 어린 마음 속에는 예수의 가장 막강한 적수였던 금빛 찬란한 부처가 더 크고 멋있어 보였고 그가 험악한 인상을 가진 4명의 천왕들과 함께 힘을 합쳐 예수를 물리쳐 주었으면 하는 기도를 하곤 했다.
실체(實體)의 소중함은 이제 비실체(허구 혹은 가상)로 대체되어 간다. 인간만이 가진 허구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능력은 결국 인간을 옥죄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