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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Feb 18. 2023

신기한 아이

[초단편 소설]

장난 많고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한 겨울 시골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소를 아래에서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소의 콧구멍에서 하얀 김이 연신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이는 옆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 가져다 놓은 쇠 꼬챙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여물을 먹고 있는 소의 콧구멍에 쑤셔 넣었다. 소는 여물을 먹다 말고 '음메' 하며 우렁찬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를 뛰어넘어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아이는 그때 소가 자신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와~ 소가 새처럼 날아오르네?"


아이는 그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 어른들은 외양간을 뛰쳐나가 사라져 버린 소를 찾느라 추운 겨울 온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했다. 어른들은 그 아이를 사고뭉치로 기억했다. 자칫 잘못하면 소발굽에 밟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는 오히려 공포가 아닌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엄마, 아빠 피곤하니까 내일 얘기해"


아이는 궁금증이 많아서 많을 걸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일찍부터 일을 나가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아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들은 힘든 일과 바쁜 일상에 지쳐 아이의 말을 들어줄 체력도 정신도 이미 고갈된 듯했다. 아이의 호기심을 풀어주는 것보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아이의 풀리지 않는 호기심은 커져가기만 했다.


"1페이지부터 42페이지 까지 몽땅 다 외워 알겠지?"  


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그 속에서도 많은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지만 학교에서는 계속 외우라고만 한다. 아이는 뭔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을 왜 외우지 않으면 맞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맞는 것이 무섭고 아파서 외워야 했다. 외우는 것은 아이에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계속 반복해서 입에서 공책에서 되뇌지만 그때뿐 돌아서면 잊혔다. 그래서 시험은 항상 어려웠고 학교는 괴로운 공간이었다. 그런 키 작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아이의 궁금증은 풀리지 못한 채 계속 시간이 흘러갔다.


"야! 이 새끼야! 귓구멍에 좆 박아놨어! 시키는 데로 안 해?"


아이는 어려서부터 개구리를 좋아했다. 그 알록달록하고 촉촉한 개구리의 피부가 신기했다. 그런데 아이도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개구리가 되었다. 개구리는 가고 싶은 곳으로 뛰어다니지만 아이는 가라고 하는 곳으로만 뛰어야 했다. 학교에서 시키는 데로만 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의무가 되었다. 하지 않으면 할 때까지 아프게 만들었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 해야 했다.


"야! 임마~ 여기가 학교야? 월급을 받으면 월급 값을 해야 할 거 아냐!"


아이는 이제 울타리를 벗어났다. 이젠 스스로 울타리를 찾아들어갔다. 울타리 밖은 왠지 어색하고 불안해졌다. 이제 그동안 외운 것을 써먹어야 했다. 하지만 외운 것이 없다. 또다시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한다. 아이는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체 남들이 다 돈을 버니까 벌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돈을 버는 부모의 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는 그게 자신도 따라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회사에서도 배움이 아닌 복종과 명령만이 존재했다. 다만 학교와 다른 점이라면 이젠 때리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복종하고 따르면 돈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계속 세월이 흘러 이제 흰머리도 좀 나고 얼굴에 조금씩 주름도 생기기 시작했다. 풀리지 않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이제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파묻혀 이젠 뭐가 궁금한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소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상상은 이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소가 하늘을 날아요"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이젠 소가 하늘을 날면 미친 소가 되어 버렸다. 아프면 날아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체... 그렇게 어른은 모든 것들을 과학적 혹은 논리적으로만 설명하려 했다. 아이는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 같아 보였다.


아이는 그런 어른들 속에서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회사와 사회에서 그것들을 억누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회사와 사회는 순서만 거꾸로 바뀌었지 똑같은 곳 같았다. 알고 싶은 것들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 않은 것들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현실이 내면의 아이를 계속 아프게 하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사라져야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야! 회사에서 버텨야 돼,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애도 낳고 행복하게 살려면... 이제 너 나가봐야 갈 곳도 없어"


아이의 주변 사람들은 조그만 잔에 담긴 맑고 투명한 물을 홀짝홀짝 마셔대며 아이에게 말하곤 했다. 그들은 그 잔에 담긴 물을 연신 들이키며 오히려 흐리멍덩하게 변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마시면 정신이 흐리멍덩해지는 그 물약이 신기했지만 마시면 마실 수록 신기한 것들은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그게 그들을 버티게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한 것들이 사라져야만 버틸 수 있구나...


아이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 거꾸로 섰다. 거꾸로 선 세상은 다르게 보였다. 그곳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로 가득했다. 아무도 아이에게 이러쿵저러쿵 알려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알지 못하니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는 알려고만 들었다. 지금은 알 수 없기에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상 속이 아닌 일상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느꼈다.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를 드려다 보듯이... 아이는 이전에 자신이 물고기라고 생각했다. 물 밖으로 나가선 절대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때가 되면 누군가가 넣어주는 밥을 먹으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물 밖에서 다른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물 밖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밥을 주지 않길래 이젠 배가 고플 때만 먹었다. 그러니 배가 답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사라졌던 궁금증이 조금씩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로 가득해서 그냥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넓고 조용한 곳에 앉아 종이를 넘기며 글을 읽었다. 이젠 외우지 않고 그냥 넘겼다. 잠이 오면 그냥 잤다. 다시 일어나면 또다시 넘겼다. 글자와 글자가 이어지니 생각과 생각이 이어졌다. 그렇게 생각들을 계속 이어갔다. 어색했다. 이래도 되는 건지...


하지만 아이는 신기했다.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으려 그것들을 적었다. 신기한 생각들이 보이는 것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게 했다. 아이도 점점 신기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아이는 그렇게 신기해져 버렸다. 그러자 아이는 입가에 사라졌던 미소가 돌아왔다. 신기할 것 없는 세상에선 굳게 닫혀 딱딱했던 얼굴이었다.


...........


어느덧 하얗게 세어진 머리와 지팡이를 짚은 아이는 우연히 교회 예배당에 앉았다. 펼쳐진 두툼한 책 속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읽고는 또다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눈물 흘렸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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