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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y 22. 2023

780만 불의 허기

[초단편 소설] - 다섯 번째 -

늙은 목수와 젊은 데모도가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으리으리한 2층 하우스였다. 그 하우스는 고층 아파트들에 둘러싸여 정오가 되기 전까지는 빛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하우스 외벽 군데군데 이끼도 끼어있었다. 데모도와 목수는 공사 첫날 이곳에 왔을 때 집안을 둘러보았는데 샹들리에가 걸려있는 넓은 거실에 타원형으로 올라가는 원목 계단 그리고 방이 무려 7개나 있는 거대한 궁궐 같은 집이었다. 방도 어찌나 큰지 데모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그 집의 마스터룸(안방)과 크기가 비슷할 정도였다. 집안을 다 돌아보는데만 10여분이 걸릴 정도였다. 그런데 집은 큰데 한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곳곳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고 으스스한 한기가 감돌았다.


목수와 데모도는 며칠간 이 하우스 옆에 무너진 축대를 세우는 공사를 하느라 적잖이 애를 먹었다. 이유인즉 공사 도중에 날아든 컴플레인(지적) 사항들 때문에 하던 공사를 허물고 다시 올리는 바람에 공사비용과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마무리 작업으로 세워진 축대 위에 모래를 깔고 그 위에 보도블록을 까는 작업을 해야 했다. 아침 일찍 트럭이 와서 하우스 앞마당에 3 톤 가량의 모래를 쏟아부었다. 목수와 데모도는 쉬지 않고 그 모래를 퍼다 나르며 바닥에 고르게 펴서 깔고 있었다. 계속되는 삽질로 온몸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한 중년의 빌더가 봉지에 시원한 에너지 드링크를 들고 나타났다. 목수와 데모도는 삽질을 잠시 멈추고 땀을 닦으며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다. 


"이제 여기도 아파트가 들어설 거래요"

"그래? 근데 축대공사는 왜 하는 거야? 어차피 다 허물어야는데?"

"그게 부동산에 좀 알아보니까 복잡한 사연이 있더라고요 접때 현장에 나타난 그 젊은 중국 놈 때문에..."


빌더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 목수와 데모도가 한창 축대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왠 중국계 청년이 현장 근처로 와서 서성이는 걸 발견했다. 그는 목수와 데모도가 일을 하는 장면과 현장 사진을 찍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날 빌더가 와서 다시 공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중국 청년이 이 땅과 집을 사들인 건축업자였다. 


"한국 집주인이 여기에 알 박기를 했는데... 집값을 엄청나게 올려서 팔았나 보더라고요"

"그래?"

"얼마 나요?"


빌더의 말에 목수와 데모도는 귀가 쫑긋해지며 빌더를 쳐다봤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값 얘기는 언제나 솔깃한 법이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뭐 엄청 올려 받았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을 산 건축업자가 엄청 뿔이 난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가 가운데 끼어서 이렇게 피를 보고 있는 거고요"

"아놔!  어쩐지..."

"이거 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게 이런 건가 보네요 정말"


목수와 데모도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빌더에게 말을 했다. 잠시 뒤 시커먼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SUV가 먼지를 일으키며 하우스 앞마당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차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차가 보기 드문 검은색 무광코팅이 된 차였기 때문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노인이 차 안에서 내렸다. 그는 트렁크에서 풀 베는 장비들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어~ 어이! 홍빌더! 여기 있었구먼"

"어쩐 일이세요? 여긴 일은 저희가 알아서 잘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어~ 그것 때문에 온 건 아니고 아~ 그놈의 중국업자들이 집안이랑 집 주변이 더럽다며 청소까지 해달라잖아 아휴~ 염병할!"

"청소는 왜요?"

"그것들이 뭐 여기를 공사 시작하기 전에 렌트를 주겠다나 어쨌다나... 아주 염병할 것들!"


노인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염병할'이란 말을 후렴구처럼 내뱉었다. 빌더는 잠시 그 노인과 말을 좀 주고받고는 다른 일이 있어 현장을 떠났다. 노인은 잠시 동안 목수와 데모도가 보도블록을 까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풀 베는 장비를 손에 들고 집 주변에 자라난 잡초들을 베고 뽑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빨간색 마세라티 기블리가 또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하우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차 안에서는 중년의 아주머니와 함께 늙은 할머니 한 명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도 차 트렁크에 뭘 주섬주섬 챙기더니 청소 도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목수와 데모도를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말 한 마디 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콜록콜록!"


한 시간쯤 흘렀다. 집 안에서 청소를 하던 할머니와 중년의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는 먼지를 많이 마신 탓인지 아니면 원래 몸이 안 좋은 건지 기침을 심하게 하며 밖으로 나왔다.


"아빠! 엄마 안 되겠다. 우린 먼저 갈게!"

"뭐라고?!"


중년의 아주머니는 멀리서 풀을 베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다시 되물었지만 둘은 이미 차에 올라타고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목수님, 12시 넘었어요 식사하시죠"

"어!? 벌써 그렇게 됐어? 그래 밥 먹고 하자"


목수와 데모도는 잔디밭에 보도블록을 깔고 앉아 도시락으로 싸 온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풀을 베던 할아버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어르신! 여기 와서 같이 식사 좀 하시죠"

"응?! 그... 그럴까? 아까 집에서 먹고 왔는데... 계속 허기가 지네"


할아버지는 목수가 내민 샌드위치와 음료를 받아 들고는 옆 자리에 앉았다.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여든다섯이야"

"아이고 그래도 정정하시네요, 

"정정하긴 풀 좀 베었더니 다리가 후덜거려서... 이제 몸도 말을 안 들어. 염병할..."

"저희 어머닌 구십에 돌아가셨는데"

"그래? 어쩌다 그렇게 일찍 가셨누?"


옆에서 듣고 있던 데모도는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아내었다. 구십 살이 일찍이라는 말이 그에게는 마치 개그처럼 들렸다. 노인 자신은 구십에는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인가 보다. 


"집이 참 으리으리하네요. 이 집을 파셨다면서요?"

"응~ 팔았지. 이제 78만 불 받았지?"

"예? 78만 불요?"

"아직 10%밖에 못 받았어, 그 염병할 놈들 때문에"

"아~ 그럼 780만 불요?"


목수와 데모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집이 크긴 해도 생각보다 너무 큰 금액이었다. 알 박기의 위력인가 보다 생각했다. 노인은 10불짜리 샌드위치와 음료를 얻어먹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좀 전에 왔던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그의 아내와 딸이었다. 딸은 치의대를 졸업하고 호주에서 처음으로 양악수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의사로 그 분야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여기저기 강연까지 다닐 정도로 유명세를 떨친다며 자랑을 했다. 그리고 큰 아들도 하나 있는데 그는 호주 대법원에 판사라고 했다. 딸과 아들도 다들 돈을 많이 벌어서 각자 큰 하우스에 혼자 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 큰 하우스에서 둘이서 살았다. 아들과 딸의 성화에 알 박기로 더 버텨야 집값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축대도 무너지고 귀신이 나올 듯 낡은 집에 수리도 않고 노인 둘이 몇 년을 더 버텼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좀 더 버텼으면 1000만 불까지 받을 수도 있었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이민자 1세대로 호주에 와서 부을 이루고 자식농사까지 제대로 지은 모양이었다. 연신 딸과 아들 자랑을 쉬지 않고 늘어놓았다. 


"아이고, 어르신 대단하시네요 자녀들까지 모두 대성시키시고"

"그럼 뭐 하누, 두 녀석이 아직 시집장가를 안 가는데... 내 죽기 전에 손주도 못 보고 죽게 생겼구먼... 염병할..." 


딸은 이제 쉰을 바라보고 아들은 이제 쉰을 넘어 환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끊임없이 소개팅이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횟수가 많다고 인연을 만나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나이보다 가진 것이 더 많으면 생기는 현상은 만남의 기회는 많지만 조건이 더 많아진다는 것과 의심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을 잡지 못하듯 늘어나는 기회 또한 잡지 못하는 이유이다. 


"오늘 아들도 온다고 했는데 안 오네, 요즘 딸이랑 둘이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나이 들어가 왜들 그리 싸우는지... 염병할"


목수와 데모도는 그의 딸과 아들이 왜 사이가 안 좋은지 알 것 같았다. 노인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남은 샌드위치를 입안으로 쑤셔 넣고는 우물우물 소가 되새김질하듯 씹어먹는다. 


"쩝쩝쩝.. 우읍! 무우울!"


빵에 목이 메었는지 물을 찾는다. 목수는 얼른 생수병을 건넸다. 노인은 물을 마시고 살았다는 듯이 한 숨을 내쉰다. 그 소리가 마치 바람 새는 소리처럼 들린다.


"아하, 죽을 뻔했네, 염병할,  난 힘이 들어서 더는 못하겠네 가야봐겠어, 다들 수고들 하쇼"


노인은 천천히 풀 베는 장비를 SUV 트렁크에 넣고는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먼지는 그가 먹고 간 샌드위치 은박지 위에 누렇게 덮였다. 그리고 잠시 뒤 빌더로부터 데모도에게로 전화가 왔다.


"야! 보도블록 작업 빨리 끝내고 앞에 풀도 좀 다 베어야겠다. 그리고 집안에 청소도 좀 하고 알았지?"

"예?! 우리 가요?"


목수와 데모도는 어이없다는 듯 똥 씹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왜 그 노인이 계속 허기가 지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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