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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16. 2023

목수와 데모도

[초단편 소설] - 네 번째 -

목수가 데모도에게 물었다.


"야! 요즘 왜 이리 사람이 없냐? 어디 일할 청년들 좀 찾아봐라"

"목수님, 요즘 이런 일 하려는 청년들이 잘 없어요"

"으이구 ~ 요즘 애들은 다들 쉽고 편한 일만 하려고 드니 쯧쯧쯧..."


목수와 데모도는 둘이서 뜨거운 태양 아래 수십 장의 함석 패널을 지붕 위로 날라 올리고 있다. 지붕이 높고 패널길이가 짧아 데모도가 지붕에서 패널을 잡아 올릴 수가 없었다. 스캐폴딩(scaffolding) 가운데 서서 받아줄 한 사람이 더 필요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 노가다다. 결국 목수가 패널을 손으로 직접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사다리를 반쯤 올라 지붕에 있는 데모도에게 전달했다. 목수는 사다리에서 균형을 잡으랴 패널을 들어 올리랴 여간 쉽지 않은 동작을 수십 번을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수십 장을 날라 올렸다. 


"꿀꺽꿀꺽 ~~ 아! 시원~하다. 이제 다 올렸네 크하하하"


목수는 생수통을 손에 들고 시원한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이마에서 땀이 목구멍으로 떨어지는 생수처럼 흘러내린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팔뚝에는 온통 잔근육들로 울퉁불퉁하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털은 힘없이 나풀거리지만 몸은 아직도 강철 같은 단단함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나 좋냐~ 이렇게 땀 흘리고 마시는 물맛이 크하하하"


목수는 고단한 육체노동 뒤에 찾아오는 희열과 감사를 아는 듯 보였다. 데모도는 넋 나간 표정으로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목수님은 목수일을 도대체 얼마나 하신 거예요?"

"글쎄... 이제 30년이 넘었지 아마... 크하하하"

"우와~"


그는 항상 쾌활한 웃음으로 말을 마무리 짓곤 했다. 그러다가도 일이 막히고 너무 힘들고 골치 아픈 상황에 직면하면 자신도 모르게 한 번씩 욕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데모도는 목수일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게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목수는 한평생을 노가다 바닥에서 온갖 일을 다 해 본 듯했다. 목공부터 타일, 미장, 페인트, 배관등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한 분야의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두루다 할 줄 아는 맥가이버 같은 존재 같아 보였다. 데모도는 일을 하다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목수는 천천히 다가와서 잠깐 고민하더니 그 상황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그는 어떤 문제가 벌어져도 그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었다. 데모도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데모도는 한 가지 더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공사를 하다가 난관에 직면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데모도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러 목수를 만나고 일을 하며 깨달았다. 목수마다 상황을 대처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저마다 달랐다.


마치 인생과도 같아 보였다. 사람들마다 각자 살아가는 삶이 다르고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다르듯이 목수일도 그래 보였다. 다만 그 상황을 대처하고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나 걸리는 시간 그리고 비용이 각자 다르다는 것에만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경험에 따라 목수의 대처함의 결과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정답은 없는 거야, 계속 오래 하다 보면 차츰 알게 되지"


데모도는 목수의 말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난 뒤 그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신이 인간을 시간 속에 가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때가 이르러야 모든 것이 드러나고 알게 되는 것은 마치 인간의 삶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유한한 시간 속에 갇힌 인간이 그것을 깨닫게 될 때는 이미 너무도 낡아버린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모도는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한 가지에만 몰두하고 비슷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만 키우며 그게 실력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이런 잡다하고 수많은 질감(사물의)을 느끼고 상황 속에 놓이는 인간은 왠지 모르게 비천한 취급을 받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프고 더럽고 힘든 그리고 너무도 많은 경우의 수를 끝도 없이 경험해도 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같게 하는 일은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이 부자가 되는 것이 맞지만 세상은 반대다. 


세상은 넓고 얕음 보다는 좁고 깊음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깊은 어딘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일은 계획적이고 전문화되어 가지만 삶은 자신의 일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괴로운 모양이었다. 


"목수님, 그러고 보니 목수일이 참 인생과 비슷한 거 같아요 그쵸?"

"글치~ 더럽고 힘들고 좆같은 게 인생이잖아, 우리 일도 뭐 좆 같잖아 크하하하"


목수는 평생 목수일을 하면서 그가 말하는 뭐 같은 상황을 일과 삶 속에서 동시에 느끼며 살아온 듯 보였다. 그래서 닥쳐오는 삶의 여러 상황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천천히 막힌 일을 풀어가듯 그렇게 삶의 시련도 풀어온 듯 보였다. 그래서 그는 힘든 상황이 닥쳐도 항상 '크하하하' 거리며 웃어넘겼다. 


"와~ 드뎌 지붕 다 올렸네, 오늘 정말 고생했다."

"목수님 고생하셨습니다, 다 해놓고 보니 뿌듯하네요 하하"

"힘들고 좆같아야 또 이렇게 살맛 나는 게 인생 아니겠냐 크하하하"

"하하하"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다. 둘의 옷은 온통 땀에 젖고 더러움이 잔뜩 묻어 거지 꼴이다. 그런데도 둘은 길거리 보도블록 위 둔턱에 앉아 시원한 캔 콜라를 마시며 실실거리고 있다. 이제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고단함은 휴식의 감사함을 알게 해 준다. 


"그나저나 내일은 어떡하나? 내일은 둘이서 하기 좀 힘들 텐데... 어디 진짜 부를만한 청년들 좀 없냐?"

"음... 글쎄요, 제 주변에는..."

"아~ 참! 목수님 아드님 방학이라 집에서 논다면서요, 나와서 일 좀 시키시죠 하하"

"에이~ 걔는 안돼"

"왜요?"


목수는 요즘 아들이 의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이 신경이 예민해서 조심스럽다고 했다. 목수는 아들이 목수일을 하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목수는 목수일을 하면서 삶을 배운 듯 보였지만 아들은 의사 공부를 하면서 과연 삶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목수는 아들이 자신처럼 넓고 얕은 경험의 세계가 아닌 좁고 깊은 지식의 세계 속에 빠져들길 바라는 듯 보였다. 


데모도는 이상했다. 목수는 다른 자녀들은 목수일을 배우며 얕지만 넓은 세계를 경험하길 바라면서 정작 자신의 자녀에게는 그런 세계를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다. 부모는 자신은 비록 넓고 얕고 더럽고 힘들게 살아도 자녀는 좁고 깊고 깨끗하고 편하게 살길 바란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모의 마음대로 살아가면 결국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데모도가 과거 아버지를 원망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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