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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15. 2023

미친 할머니

[초단편 소설] - 세 번째 -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 

 

빨간 카세트 라디오에서 테이프가 돌아가며 노래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머리에 새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듯한 한 할머니가 때가 타서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흐르는 두툼한 책을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콧잔등 아래에 걸친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통해 책 속에 가사를 들여다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놔! 놔란 말이야~ 나가서 놀 거야!"


한 아이가 할머니에게 손목이 붙잡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밖으로 나가려고 몸무림 치는 아이의 손목을 꼭 붙들고 앉아 여전히 그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으아아아앙~~ 엄마아~"


아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한데 뒤섞여 방 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밖으로 나가려고 몸무림을 치면 칠수록 잡고 있던 손목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머니!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욧!"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아이의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할머니가 어찌나 강하게 움켜쥐었는지 쉽께 떼어내지 질 않았다. 엄마는 두 손으로 안간힘을 다해 할머니의 손을 아이에게서 떼어내었다. 아이의 손목에 시뻘건 자국이 남았다. 


"할머니~ 미워! 으아아 앙~"


아이는 울면서 밖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쏘아붙이듯이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고 주저리주저리 알 수 없는 책 속의 구절들을 외는 듯했다. 엄마는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여러 번 가로저으며 방안을 빠져나왔다. 


"엄마, 할머니가 미쳤나 봐! 너무 무서워!"


할머니는 예전엔 미치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명절이면 항상 아이의 손을 잡고 들로 강으로 데리고 돌아다니며 놀아주었다. 한참 놀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한복 저고리 품 안에 꼬깃꼬깃 접어둔 지폐를 꺼내 시골 동네 구멍가게에서 맛난 과자를 사주던 기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형제들이 많아 삼촌들 손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유독 아이에게만 그렇게 특별한 관심을 주었다. 아이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특별한 관심과 사랑에 명절만 되면 할머니를 보러 갈 기대에 들떠있곤 했다.


"아이고~ 우리 사고뭉치 똥강아지 왔나"


할머니는 아이를 그렇게 불렀다. 아이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엉덩이를 토닥이며 맛난 과자를 건네는 할머니의 손길이 좋았다. 아이는 기억한다. 할머니는 설날의 추운 겨울밤이면 작은 방의 뜨끈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던 귀신이야기를... 동지 그믐날 밤이면 마을 어귀에 있는 연못에서 물귀신이 나와서 소를 한 마리씩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래서 설날 밤이 찾아오면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 안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 안에서 창호지 문에 구멍을 내고 외양간에 있는 소를 유심히 쳐다보곤 했다. 그래도 아이는 해마다 명절 밤이면 이어지는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가 너무 기다려졌다.


"어머니! 왜 갑자기 제사를 안 지내시겠다는 거예욧!"


어느 순간부터였다.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삼촌과 숙모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때도 할머니는 방에 혼자 앉아 있었고 한 손은 반짝이는 두 글자가 적힌 두툼한 책 위에 놓여있었다. 온 가족이 모여 향이 피어오르는 음식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사랑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가족들은 제사상에 올라간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할머니는 홀로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아이는 그런 할머니가 항상 귀신 이야기를 하시다가 결국 자신이 귀신에 씐 것이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이의 친구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사랑방에서 앉아 아이에서 손짓했다. 아이는 문지방 벽 뒤로 숨어버렸다. 아이는 무서웠다. 자신도 귀신이 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먼발치에서 할머니를 훔쳐만 봤다.


"♬ 아이고~ 아이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느 날 할머니가 귀신들이 사는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할머니는 귀신에게 홀려서 귀신이 되어버렸다. 가족들은 또다시 할머니의 사진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제사를 지냈다. 할머니는 꽃이 가득 핀 상자에 담겨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어깨에 실려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아이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불룩한 푸른 잔디 속에 숨어든 할머니 옆에 앉았다. 옛날 할머니의 다정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 나 노래하리라  

천한 나를 돌아보신 구세주를 찬양해  

하늘 닿는 곳까지 내 손 들리라  

예수 나의 치료자  

어떤 어려움도 깊은 절망도 

수많은 괴로움과 슬픔도 

주로 인하여 모두 지워지리라 

예수 나의 치료자 ♪♫


세월이 한참 흘러 아이도 노래한다. 아이의 앞에도 두툼한 책이 놓여 있다. 그리고 눈물 흘린다. 

그때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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