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는 길
[초단편 소설] - 여덟 번째 -
B와 b는 항상 함께 했지만 서로는 항상 다른 것을 갈망했다.
B는 일상의 너무 많은 일들을 소화하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로 향한다.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열이 나고 땀이 흐른다. B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신경과 근육 세포들이 느껴진다. 그 느낌이 때론 강력해 통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B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과 충격 그리고 소리와 빛과 열을 오감을 통해 느끼며 b에게 알려준다. b는 단지 B가 그런 오감을 통해 느낀 것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아무런 대가 없이 알려준다. 이런 b의 피드백은 지체 없이 이뤄졌다. 그래서 B가 좀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은 감각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B는 그런 b가 고마웠다. B는 b의 도움으로 날이 갈수록 정교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덕분에 B는 날이 갈수록 훌륭한 기술을 갖춰 나갔다. B의 능력이 출중해질수록 b는 거기에 걸맞은 피드백을 해주었다. b는 B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했다.
B: 아~ 오늘 하루 종일 움직였더니 너무 피곤하네, 나 좀 쉬어야겠어
b: 나에게도 좀 시간을 내줄 순 없겠니?
B: 미안해~ 나 아무것도 못하겠어, 어서 좀 쉬어야겠어, 다시 내일을 견디려면..."
b: 그래?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B: 아~~ 함! 졸려... 미안! 나 먼저 좀 잘게..."
b: 아... 안돼, 내게도 조금만 시간을 줘...
B는 이내 잠들어 버렸다. b는 슬펐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 B가 원망스러웠다. b는 B가 잠든 사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B가 없는 혼자만의 시간은 B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b는 자신만의 그 소중한 시간들을 부여잡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지만 B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B는 b의 재치 있고 기발한 도움으로 날이 갈수록 그 능력을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았다. 사람들은 B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B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B의 손과 발이 닿는 곳은 튼튼하고 정교하며 웅장한 것들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B가 만들어내는 것을 가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한 해에 한 두 개 그것도 한 두 사람 특별한 사람 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 만들어진 것은 더 이상 B의 것이 아니었다. B는 자신이 만든 것을 숫자와 바꾸었다. B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그 가치는 더 큰 숫자로 보여졌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줄을 서서 B에게 많은 돈을 갖다 바치며 그의 손과 발을 원했다. B는 좋은 집과 멋진 차,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과 또 수많은 B², B³, B⁴, B⁵.... 들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B: 어때? 나 덕분에 행복하지? 이렇게 좋은 음식과 집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우러러보니까?
b: 글쎄... 좋은 것 같긴 한데... 뭔가 너무 허전해
B: 그래? 아직 좀 부족한가? 더 열심히 해서 더 채워줄게
b: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이전에 네가 하릴없이 많은 시간을 내게 내어줄 때가 더 좋았던 거 같아.
B: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거지 같던 시절이 뭐가 좋았다는 거야?
b: 음.... 사실 난 그때 내가 정말 살아 있음을 느꼈던 거 같아.
B: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난 절대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b: ....
B는 b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b는 또다시 슬퍼졌다. 하지만 b는 B가 하자는 데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B는 날이 갈수록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b는 그리워했다. 옛날 B와 함께 드넓은 푸른 공원 위 따스한 햇살 아래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서로를 온전히 느끼던 시간을... 그때 B는 움직임 없이 가만히 앉아서 b를 깊이 느끼고 들여다봤다. 그리고 b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주었다. 덕분에 b는 미지의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다. B는 단지 b가 그 미지의 탐험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게 손끝을 움직여 남겨주었다.
B의 모든 감각이 정지하자 b의 모든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B는 많은 시간을 b에게 할애했다. b는 그런 B가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B: 뭣하고 있어? 어서어서 움직여!
B²: 옙! 알겠습니다.
"쿵"
B: 으아아아악!
B와 B²가 함께 지붕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B²는 b² 와 호흡이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B와의 거리를 잘못 판단했다. 들고 있던 기다란 목재가 회전하며 B의 어깨를 쳤다. B는 10m 아래로 추락했다.
의사: 척추 신경이 마비되었습니다.
B: 네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의사: 안타깝지만 이제 앞으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가 없으실 겁니다.
B: 말도 안 돼! 어떻게 내가....
의사: 다행히 손끝에 신경은 살아있어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으십니다.
B: 걷지도 못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흑흑
B는 장시간의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걷지도 움직일 수 없도 없는 불구가 되어버렸다. B는 이제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B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많은 사람들이 B의 사고 소식을 듣고 놀라 찾아왔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B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자 더 이상 사람들은 B를 찾지 않았다.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B에게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었던 모양이다.
B: 흑흑... 이제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아
b: 너무 슬퍼하지 마! 그래도 내가 항상 곁에 있잖아
B: 하지만 이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
b: 아냐 이제부터 넌 나를 나로 만들어 줄 수 있어
B: 그게 무슨 말이야?
B는 조용히 앉아 b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b는 침잠하며 깊은 미지의 여행을 떠났다. B는 b가 이끄는 데로 가만히 따라갔다. B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들을 수도 없었으며 느낄 수도 없었다. 가끔씩 b가 B를 불러내었다. 그때마다 B는 b가 알려주는 데로 손끝을 움직여 주었다. b는 B가 밖의 모든 것을 막아주고 버텨주어 환희에 찬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B는 가만히 b의 여정을 지켜봤다.
b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B는 허기가 밀려왔다. B는 b가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음식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b의 에너지를 채워주었다. 그렇게 움직임 없는 여행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b가 여행하며 쌓아온 수많은 흔적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행의 흔적은 시간이 갈수록 수많은 또 다른 b², b³, b⁴, b⁵... 에게로 퍼져 나갔다. b를 흠모하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더 많은 이들이 b가 경험한 환희의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b: 자! 봐! 또다시 사람들이 우리를 찾기 시작했어, 그들은 우리가 만든 것을 모두 느낄 수 있게 되었어
B: 그래, 그런데 그들은 내가 아니라 너를 찾는 거잖아
b: 아냐, 너와 나는 하나야, 내가 너고 네가 나야. 우린 연결되어 있어
B: 내가 한 게 뭐 있겠니? 그냥 네가 시키는 대로 손끝만 움직였을 뿐인데
b: 너의 움직임이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너로 인해 표현될 때 나는 존재할 수 있어, 그게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야
B: 그게 무슨 말이야?
b: 너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B: 하지만 나 이제 더 이상 손끝도 움직이기 힘든걸,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
b: 잘했어,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B는 이제 더 이상 손 끝조차 움직일 힘이 없었다. B의 숨이 끊어지려 할 즈음이었다. b는 조용히 B의 귀에 속삭이듯 말을 했다.
b: 미안해~그리고 고마워,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B: ....
b: 그때 네가 떨어지지 않으면 너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하지만 내가 살아야만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걸 그 옛날 너와 함께 했던 초라했던 시절 깨달았어. 그래서 너를 멈춰야만 했어, 미안해...
B: .... 으으으
B는 숨을 거두었다. B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하지만 b는 영원토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B는 몸(Body, 육체)였고
b는 뇌(brain, 정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