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향수를 쓰지 않았다. 몸에서 비누냄새나 섬유 유연제 향이 날지는 모르지만 향수 냄새가 날 리 없었다.
'앗'
순간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대로 있었다. 그것 때문이었다.
남자는 여느 때처럼 쇼핑센터 매장 안을 지나고 있었다. 시내 번화가에 미팅이 있을 때면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항상 쇼핑센터의 주차장을 이용하곤 했다. 쇼핑센터 전용앱을 깔고 회원 가입을 하면 하루 4시간의 무료 주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로 향하려 쇼핑센터 안을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화장품 매장 앞을 지날 때였다. 도회적인 분위기의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 두 명이 매장 앞을 지나가는 행인 고객들에게 하얀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남자가 그중 한 여성 앞을 지날 때였다. 여성은 엄지와 검지로 네모난 종이의 모서리를 집고 흔들면서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마치 고속도로 통행증을 낚아채듯 무심결에 그 종이를 받아서 지나쳤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법도 했는데 그날은 그 여성과 시선이 너무 오래 마주쳤다.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시선도 관심에 일종인데 타인의 관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보답해야 하는 법이다.
남자는 종이를 코에 가져다 데었다. 향수의 은은한 향기가 콧 속으로 스며들며 침울하고 피곤한 아침에 평소와는 다른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나쁘지 않다. 남자는 종이를 마땅히 버릴 곳이 없어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종이에서 묻어나던 향수의 향기가 옷에 스며들고 있었다. 남자는 그 향에 익숙해져 자신의 몸에서 향이 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고객을 만나 논리 정연한 말과 갖가지 신빙성 있는 자료과 최신 정보들을 태블릿 PC로 보여주며 불안한 고객의 심리를 자극했고 그 불안을 자신에 대한 신뢰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또 한 건의 큰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부장님, 또 한 건 성사시키셨네요 역시 부장님이세요"
"뭘 그래서 보고 섰어? 어서 내일 고객 만나서 보여줄 자료 정리해서 올려!"
"네.... 넵, 부장님!"
남자는 자신의 책상 앞에 서서 굽신거리는 직원에서 차가운 한 마디를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들 정신차리고 일하자 제발! 우리 팀 실적 계속 내려가고 있는 거 알지"
"..."
그말을 들은 직원들은 좀 전까지 책상 파티션 위로 고개를 빼곰히 내밀고 남자를 바라보다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일제히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날따라 남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왠지 평소와는 다른 말들과 표정들로 자신을 대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게 무엇 때문인지 몰랐는데 지금 남자 앞에서 계산대에서 커피값을 계산해 주는 여직원의 말에 그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거요!"
남자는 안주머니에서 향수 종이를 꺼내 그 여직원에게 건넸고 가게를 나섰다. 여직원은 향수 종이에 적힌 브랜드 로고를 보고 난 후 그 종이를 코로 가져가 향을 맡는다. 그리고 가게를 나서는 남자를 다시 바라본다.
향기 나는 꽃에 벌과 나비가 모이듯이 향기 나는 사람에게는 시선이 끌린다. 하지만 그 향기가 어디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향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향수지에 적힌 브랜드를 보고 나서야 그 향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게 된다. 향기의 출처를 알고 나서 그 사람을 다시 본다.
꽃은 저마다의 고유한 향이 있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향기를 숨기고 원하는 향기가 되고 싶어 한다. 그때 그녀가 바라본 남자는 과연 그 남자였을까. 공장에서 만들어진 향기와 브랜드 로고가 주는 느낌과 눈에 보이는 꾸며진 차림새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그 남자의 진정한 내면의 향기와 모습은 무엇인지도 모른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