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Oct 14. 2023

엇갈린 남녀

[초단편 소설] - 열 번째 -

여자 : [떠나요? 또 한국 밖으로?]

남자 : [아마도...내 몸엔 몽골인의 피가 흐르고 있나 봐 ㅋㅋ]

여자 : [...]


그 이후로 더 이상 여자의 답변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여자는 보고 싶은 마음보다 그 남자의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그런데 남자의 답변은 이미 그 궁금증을 실망감으로 바꿔놓기 충분했다. 이제 여자는 이성적이었고 남자는 감성적이었다. 하지만 둘의 과거는 그 반대였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자였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매료되었다. 자신과는 다른 자유롭고 당당한 모습에 빠져들었다. 여자는 과거 남자가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짝사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건 짝사랑이 아니라 시작부터가 외사랑이었다. 왜냐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용기 내어 여자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찾았고 여자는 항상 그 타이밍을 피해 다녔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고백을 회피하며 이성관계가 아닌 공생관계로서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했다. 여자는 남자의 현실적이면서도 비상한 생각과 지혜가 필요했지만 현재 남자의 가진 외모과 배경을 받아들일 만큼의 아량베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성적 끌림 대상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성적 끌림의 대상은 그다지 지혜롭진 않았지만 그것 이외의 모든 조건을 충족해 주었다. 그래서 여자는 그 남자를 통해 그 부족함을 채우고자 했다. 그렇게 남자의 외사랑이 이어졌다. 그렇게 남자는 여자에게 오랜 시간 지혜를 전수해 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로 함께 했다. 결국 스승과 제자는 헤어지는 법이다.  그 여자는 남자를 떠났다. 남자는 이성적인 태도로 여자를 가르치며 여자에게서 감성을 키웠고 그 커져버린 감성이 결국 남자의 이성을 무너뜨렸다. 여자가 떠나고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가 깨진 남자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남자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또다시 여러 번의 시련과 방황 그리고 방랑의 시간을 보냈다. 그 여자가 떠나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고국을 떠났다.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긴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옮겼다. 그리고 그 글들 속에 모든 것을 토해내었다.  그 글 속에는 그 여자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미련과 후회와 아픔은 모두 글 속에 묻어 버렸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에 그녀를 마음 편히 만날 수 있었다. 만약 아직도 이성 간의 미련이 남아있었다면 그녀에게 만남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남자가 한 가지 미련이 있었다면 아마도 여자를 다시 만나서 겪게 될 새로운 에피소드가 후일 남자의 또 다른 글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여자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출산 그리고 한 번의 이혼을 겪었다. 그리고 여자는 두 아이를 가진 싱글맘의 삶을 살고 있었다. 여자가 부부의 연을 맺은 남자는 그녀가 꿈꾸던 결혼생활의 시나리오와는 달랐다. 그녀의 시나리오는 연애 때까지만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여자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여자는 현실적인 남자가 아닌 이상적인 남자와의 결혼이 결국 그녀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삶이 아닌 현실적인 삶에 숨통이 조여 오는 삶을 살게 될 거라 생각지 못했다. 이상은 거품이었고 현실은 가시 같았다. 과거 여자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인내를 가지지 않은 그저 설익은 끌림의 사랑이었을 뿐이었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남편의 무관심과 무례함에 스멀스멀 피어나는 남편에 대한 미움은 결국 남편의 외도로 폭발했다. 그리고 시작된 싱글맘의 삶은 그녀가 그동안 누리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다시 찾아온 옛날 외사랑 남자의 연락, 그녀는 그 짐을 나눠가질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녀의 기억 속 그 남자는 이미 합격점을 따놓은 남자였다. 이제 처절한 현실을 경험한 그녀였다. 하지만 남자는 반대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누구보다 철저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던 그였지만 여자와 헤어진 이후 남자는 철저히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여자는 그 남자로 인해 이상에서 현실로 남자는 그 여자로 인해 현실에서 이상으로 또다시 엇갈린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서로는 서로가 이제 같은 길 위에 있겠지 하는 10년 전의 상대를 기억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건 단지 그 갈림길이 잠시 마주치는 교차로였을 뿐 또다시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의 과거를 동경하며 바뀌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