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김상욱 - 두 번째 -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존재한다면 왜 그것이 있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 김상욱 [떨림과 울림] 중에서 –
물리(物理)는 물질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의 존재 이유를 밝히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물질이 생겨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어둠만 가득한 곳에 빛이 생겼고 그 빛이 폭발하며 물질과 반물질이 세상에 튀어나왔다. 원칙적으로 똑같은 질량의 물질과 반물질 생겨났다가 다시 소멸해야 하는 것이 맞다. 쌍생성과 쌍소멸의 과정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반물질은 모두 사라지고 잉여 물질이 남았다. 그 물질이 나와 너를 만들었고 이 세상의 우주 만물이 되었다. 과학(물리학)은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 존재하는 물질들의 이치를 끊임없이 파헤치고 있지만 이 물질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 시작의 설명할 수 없다.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냐?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종말을 구하고 있느냐?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라. 시작에 서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 자야말로 종말을 알 것이니, 죽음을 맛보지도 아니할 것이라."
- [도마복음] 18:1~3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라” – [요한계시록] 22:13 –
우리는 시작보다는 끝이 더 궁금하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운명과 내가 속한 조직과 국가의 미래에만 관심이 있다. 모두가 끝을 알 수 없는 미래에만 관심을 가진다. 머나먼 우주의 반대편 끝까지 보고자 하는 인류의 희망을 실은 보이저호는 이제 우리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태양계의 중력에서 벗어난…) 하지만 아무것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없다. 아마 끝도 없는 어둠 속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보이저 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은하계는 보이저 호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보이저 호가 결코 다른 은하계에 닿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어둠 속애서 길을 잃었다.
거시에서 미시로
우리는 이제 멀고 광활한 우주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계를 드려다 보기 시작했다. 그곳에 시작의 비밀이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한 점에서 시작한 우주 아니던가. 원자의 세계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물질의 최소 단위 원자, 그 원자의 세계는 지금껏 우리가 생각해 오던 거시 세계의 법칙이 아닌 또 다른 세계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다. 양자물리의 세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확률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우의 수만 존재한다. 마치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는 우주의 법칙을 따르지만 단, 거시 세계는 물질의 위치와 질량과 운동량(에너지)이 모두 확인되지만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이 위치를 알고자 하면 운동량을 알 수 없다.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려 하면 그 순간 그것이 언제 어디로 갔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이것이 빛(광자와 전자)의 성질이다. 빅뱅의 시작인 빛은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며 이 시작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두 가지의 애매모호한 중첩 상태를 이용해서 확률적인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다. 또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는 것이다. 이런 빛의 성질이 마치 인간의 속성과 비슷하지 않은가?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면 무한한 시간 가운데 하필 그 순간 시작했을 이유가 없고, 시작점이 없다면 모든 사건 이전에 똑같이 무한한 시간이 있어야 하므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 김상욱 [떨림과 울림] 중에서 –
저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우주의 시작 유무는 둘 다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이율배반적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인간을 탐구했던 철학자 칸트도 인간이 가진 사고방식(이성)으로는 도저히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인간의 시작도 그와 같지 않을까? 누군가는 인간의 탄생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 태초의 하나의 단세포 원시 생물에서 시작한 생명체가 수백만 년의 시간 동안 분화하고 진화해서 수많은 생명체가 만들어졌고 인간도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부터 설명이 되어야 맞다. 인간의 시작 이전에 물질의 탄생인 빅뱅이 설명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인간보다 우선한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는 무기물(비생명체)과 유기물(생명체)을 형성한다. 물질의 탄생을 설명하지 못하는데 어찌 인간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모순이다. 사람들은 모순에 빠져 있지만 모순인 줄 모른다.
우주의 시작을 설명해야만 그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해지지만 우리는 빅뱅에서 쌍생성으로 탄생한 물질과 반물질이 쌍소멸로 사라지지 않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잉여 물질이 생겨났다. 인간은 그 잉여물질(원자)이 분화(분자화 = 진화)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 물질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걸 설명할 수 없기에 인간의 탄생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맞다. 모든 것의 원인을 찾아가면 시작으로 가지만 시작이 없다.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생겼다. 과학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유를 찾는 학문 아니던가.
유기물과 무기물 그리고 알고리즘
과거 유명한 철학자들은 대부분 과학에도 큰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물질의 이치를 모르고서는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얽혀 있어 상호 영향을 미친다. 양자 세계에서는 양자 얽힘이라고 말한다. 이건 마치 인간세계의 인연과 비슷하다. 내가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의 방향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관계가 인간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닌 만물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양자의 세계인 원자는 무기물이지만 인간은 유기물이다.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컴퓨터 혁명이 순수한 기계적 사건에서 생물학적 격변으로 바뀌고, 권한이 개인에게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알고리즘들에게로 이동했다"
- 유발하라리 [호모데우스] 중에서 -
이쯤 되면 유기물과 무기물의 구분이 사라진다. 원자라는 무기물의 세계가 생명과 의식을 가진 유기물을 이루고 있다. 이건 무기물인 원자가 얽혀서 상호작용하며 유기물을 형성하고 있음이다. 또한 유기물은 유기물과 반응하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유기물은 유전자를 가지며 인류는 이 유전자 암호(염기서열)를 거의 다(99.99%) 해독했다. 그 말은 패턴을 찾아서 알고리즘화 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 유기물과 무기물이 구분이 사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왜 NVIDIA CEO 젠슨 황이 생명공학에 큰 관심을 보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얽힘 = 인연
이렇게 만물이 얽혀있는 것이다. 양자 얽힘은 필연적이다. 예측 불가한 얽힘이다. 오로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우의 수만 존재(확률)한다. 당신은 그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인생은 모두 선택의 연속 아니던가. 그 하나의 선택이 또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고 또 선택한다. 이것은 계속 무한 반복된다. 이건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이자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리와도 비슷하다. 무엇을 선택하고 누구와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이어져서 발생하는 일들이 달라진다. 또한 선택된 무엇(물질 혹은 상대)에게서도 똑같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얽힘은 갈수록 더욱 복잡해진다.
“만약 우리가(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김상욱 [떨림과 울림] 중에서 -
저자는 물리학자임에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이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만약 신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라면 '그때에 비로소 이 세상에 신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끝없이 뻗어가는 우주 안에서 이유 없이 또한 정처 없이 떠도는 인간이 끊임없이 그 이유와 정처(갈곳)를 알고자 함이 신을 없애고자 함이 아니라 신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것이어야 함을 모른다. 당신은 누군가의 마음을 지식과 계산으로 알 수 있는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 [마태복음] 7:7~8 -
과학은 답(Answer)을 찾고자 하고 철학은 의문(Question)을 찾고자 하며 종교는 믿음(Faith)을 찾고자 한다. 모두가 필요하지만 순서는 반대이다.
믿음을 가지고 의문이 생기면 답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