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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정착 사이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에스터 페렐 - 두 번째 -

by 글짓는 목수 Mar 09. 2025

“개인주의 사회는 이상한 모순을 낳는다. 서로 간의 신의가 더욱 필요해지는 동시에 불륜의 매력 또한 더욱 강렬해진다.”

-  에스더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우리는 안정 속에서 불안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가정과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 소속되어 안정을 꿈꾸며 또한 그것을 벗어난 불안 속에서 일탈의 환희를 느낀다. 어느 때보다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진 시대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주장하며 울타리 안의 일상에 머물다가도 홀로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 속에서 일탈과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울타리 안으로 돌아온다.


불륜은 마치 여행과도 같다.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관계의 매력에 빠져든다. 하지만 때가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또다시 나갈 그날을 위해 일상을 견딘다. 연휴에 공항에는 일상을 벗어나려는 수많은 인파로 넘쳐난다….

A man looking at a woman leaving with a bag from far outside the departure hallA man looking at a woman leaving with a bag from far outside the departure hall




“넌 돌아갈 곳이 있잖아. 난 돌아갈 곳이 없어. 넌 항상 때가 되면 너의 가족들이 있는 따뜻한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지 그럼 난 그 울타리 밖에서 차가운 바람과 외로움 속에서 다시 네가 울타리 밖으로 나올 그날을 기다려야 해.”

“미안해, 하지만 난 너 하나만을 사랑해 너도 알잖아, 정말이야”

“넌 항상 내가 너에게 단 하나뿐인 사랑이라고 말하지, 하지만 넌 왜 너의 울타리 안에 네가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왜 떠나지 못하는 거지?”

“그…. 그건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그럼 난 왜 항상 울타리 밖에서 네가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거야?”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아니야?”

“그래 난 널 사랑해, 그런데 널 사랑하고 난 후부터 난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울타리로 돌아가고 나면 그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아마 넌 그럴 틈도 없이 너의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그런 외로움이 스며들 틈이 없을 거야. 넌 네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면 다시 또 그들 몰래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나와의 사랑을 꿈꾸겠지…”

“그건…”

“나는 네가 울타리로 돌아간 시간 더 큰 공허와 외로움이 밀려와 그리고 더 견디기 힘든 건 네가 네 가족들과 둘러앉아 웃으면서 저녁을 먹고 네 아내와 침실로 들어가는 것이 상상된다는 거야. 난 그 시간을 견디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널 만나기 전에는 없었던 고통이야. 이게 내가 널 사랑한 대가라면 내가 감수해야겠지만 넌 도대체 뭘 감수하고 있는 거지?”

“미안해,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아. 하지만 난 나의 가정을 지켜야 해, 너도 그걸 알고 날 만난 거잖아."

"그랬지... 그랬었지..."

"나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가 있어, 그걸 놓아버리면 난…  난… 도저히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 없어”

“넌 이기적이야.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다 가지려고 하는 거야. 내가 너와 사랑하기 위해 감수할 고통을 넌 함께 하고 싶진 않은 거야. 넌 너의 행복이 중요하기에 자신이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겐 이기적일 수도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아.”


여자는 등을 돌렸다. 남자가 머물던 울타리 주변에서 멀리 떠나갔다. 또 다른 울타리가 있는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서. 남자는 떠나가는 여자를 바라보며 눈물 흘렸지만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을 그녀가 이미 다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가족들 품에 안겼다. 그런데 더 이상 예전처럼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하고 웃으며 지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건 떠나간 여자가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남녀는 서로 고통을 나눠가졌다. 다만 시간의 차이만 있었을 뿐….


-  [자작 소설 중에서 발췌] -


The woman turned her back. She went far away from the perimeter of the fence where the man stayedThe woman turned her back. She went far away from the perimeter of the fence where the man stayed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높으면 바람피울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외도가 성취의 대상이라면, 결국 우리는 바람피울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 에스터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현대인은 항상 바쁜 일상과 역할극 속에서 자신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경험을 한다. 예전에는 가족과 공동체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동일시했다면 이젠 그것이 분리된다. 내가 왜 공동체와 똑같은 행복을 느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산업자본주의 세상에는 나의 구미에 맞는 다양한 상품과 맞춤형의 서비스들이 넘쳐남에도 왜 내가 다수와 똑같은 행복을 찾고 느껴야 하는가?물질사회는 수많은 옵션의 상품을 소비하고 버리고 또 새로운 것을 소비하길 부추긴다. 물질뿐만 아니라 인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주의 사회는 행복의 기대치가 커졌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고를 수 있는 행복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행복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또한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을 안겨준다. 그건 이 행복을 선택하면 놓아야 할 행복에 대한 상실의 고통이다.


 저자는 불륜이 이런 잃어버리고 놓아야 하는 상실감을 가지지 않고 행복을 얻으려는 개인주의자들이 선택하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보고 있다. 불륜의 상대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둘 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자여야만 이 불륜의 사랑이 성립될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사랑(불륜)이 소설에서 보듯이 이기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서로 합의하에 그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감정은 합의에 따라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남녀는 그런 불확실한 감정이 주는 설렘과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불륜을 선택한다. 합의는 명확한 행동과 결과를 위한 계약이지만 둘이 원하는 것, 즉 사랑이 가진 속성과 모순된다. 결국 이성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감정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사랑 아니던가?  이성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이성적이라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감성이다. 감성이 북받치는 감정으로 변하고 선을 넘는 순간, 즉 이상과 현실의 행복 둘 중 하나를 위협하기 시작하면 합의와 계약을 꺼내든다. 그럼 타오르던 감성은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사랑이 식어버리고 사라진 자리는 언제나 미움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다만 의식하지 못한다. 때론 사랑이 희생을 요구한다. 이건 의식적으로 변한 것이다. 사랑에 미움이 스며들면 사랑을 교환의 공정성으로 따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랑도 물질처럼 경제학적으로 따져서 이해(利害: 이익과 손해)를 분석할 수 있지만 그 분석이 시작되는 순간 사랑은 자취를 감춰 버리고 미움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밖에...


사랑의 상처는 시간이 치유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 한국인은 유독 빠른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치유도 빨리 해야 한다. 그럼 다시 울타리 밖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그것이 주는 행복감을 이미 경험했다. 그것이 가져다준 고통 또한 경험했다. 그럼 두 번째는 좀 더 치밀하고 신중해진다.


첫 경험은 너무도 강력해서 트라우마가 되었다. 현실의 일상을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안전장치들을 강구한다. 그건 처음 가졌던 순수하고 이상적인 사랑과는 멀어짐을 의미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개입된 사랑은 강렬함이 덜하다. 그런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에 더 의존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이성이 줄 수 있는 신체적 흥분과 호르몬 분비의 변화에 빠져든다. 그렇게 불륜은 첫사랑 같은 순수하고 비이성적인 사랑에서 시작해 점점 불순하고 이성적인 사랑으로 바뀌어 간다.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어리석고 유치한 사랑이 아닌 이성적이고 성숙한 어른의 사랑을 나눈다. 사랑하면 유치해지만 유치해지면 위험하다. 세상은 아이들이 살아가기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a child-loving lover = 유치한 사랑a child-loving lover = 유치한 사랑

처음 경험한 불륜은 첫사랑 혹은 첫 여행처럼 셀레고 강렬할 수도 있다. 가장 오래 기억되지만 두 번째부터는 이제 뭘 준비해야 하고 뭘 계획해야 할지 알게 된다. 처음 여행 때 느꼈던 불편함과 위험과 서툴렀던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속도와 편의와 안전을 위한 장치다. 그럼 빠르고 편리하고 안전한 여행으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그것이 없었던 여행이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은 불확실성과 설렘과 두려움이 모두 추억이 되었기 때문임을 알지 못한다.


여행과 정착 사이


결혼한 자는 배우자와 가족이라는 베이스캠프(Base camp)가 있다. 언제라도 나를 받아줄 수 있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 결혼하지 않은 자는 즉 베이스캠프가 없다. 원래부터 혼자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중첩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그럼 어느 순간부터 혼자가 힘들어진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자유롭지만 외로움을 견뎌야 함을 의미한다.


여행자는 정착한 삶을 그리워하게 되고 정착한 자는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서로는 그렇게 서로를 갈망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서로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채워주지만 그것이 커지면서 반대편의 삶을 욕망한다.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순간 서로를 놓아야만 한다. 불륜의 순수했던 사랑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당사자이든 가족이든... 만약 그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면 누군가 한쪽이 다른 쪽의 삶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혹은 둘이 각자 쌓아온 삶을 놓아야만 한다. 그건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불행하길 원치 않기 때문에 이혼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행복할 수 있기에 이혼한다.”


- 에스더 페렐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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