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ep15
그때 그와 나는 극본 속에 남녀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는 다른 형태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극본 속의 갈등은 좀 특별하고 판타스틱하게 표현되고 있었다는 것만 다를 뿐 현실의 갈등과 품고 있는 감정이나 심리적인 상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이제 더 이상 이상세계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현실의 제약과 곤궁함은 결국 나의 이상을 앗아 가고 있었다. 나와 남자친구는 나의 극본 속에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며 서로에 대한 이상적인 사랑을 키웠지만 또한 그 극본 속 갈등처럼 서로에 대한 미움 또한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我找到工作了”(나 다시 취직했어)
“真的吗?恭喜你了”(정말? 와 축하해)
그는 나의 재취업을 축하해 줬다. 그날 저녁 그는 케이크를 사들고 나의 원룸으로 찾아왔다. 그는 마치 생일날처럼 나의 재취업을 기뻐하며 축하해 줬다. 나는 겉으로는 함께 웃고 있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다시 현실의 삶 속에서 나의 이상세계가 잊히는 것을 견뎌야 할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에게 나의 재취업은 축하할 일이었지만 이건 나에겐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嗬嗬~ 舒服了?”(헉헉~ 좋았어?)
“嗯。。”(으음…)
그날 밤 나는 그와 정사를 나누었다. 얼마 만에 가진 잠자리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소원해진 정신적인 교류는 육체적인 교류 또한 소원하게 만들었다. 그날 그의 뜨거운 체액이 내 안으로 쏟아졌다. 그는 피임을 하지 않았다.
“那我们住在一起” (우리 이제 합칠까?)
“….”
그는 아마도 이 말을 하기 위해 내가 현실의 삶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현실의 고통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에게는 기쁜 일처럼 느껴졌다. 그가 받는 현실의 고통을 내가 나눠가져 주길 바랐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현실의 사랑은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쾌락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눠가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림 그리는 일과 그것들을 공유하는 SNS 활동을 모두 그만 두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나와 육체적인 관계를 시작하고 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그는 일 그리고 나와의 연애 두 가지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는 더욱더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와 함께할 미래를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모든 다른 연인들이 거쳐가는 과정이었고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가정을 일구고 살아가는 꿈을 꾸는 듯했다. 나도 그의 무언의 압박 같은 권유에 못 이겨 글쓰기를 접고 4대 보험이 가입된 작은 중소 제조 기업에 경리로 재취업을 했다.
그즈음 나는 아마도 내 생애 마지막 이야기가 될지 모를 극본의 마지막 퇴고를 끝내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그 극본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었지만 퇴고 과정에서 현실의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며 나는 극본의 엔딩을 새드엔딩으로 바꾸어 버렸다. 내 생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극본을 방송국 드라마 공모전에 투고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我终于成了电视剧编剧”(나 드라마 작가 됐어)
“真的?是真的吗?”(대박! 정말이야?)
나의 극본이 최우수작으로 채택되었다. 방송국 드라마 제작국의 심사자 전원 일치로 드라마 제작이 확정된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남자친구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흐르고 또 흘러내렸다. 남몰래 시작한 글쓰기였다. 괴롭고 힘들 때 북받치는 감정과 말 못 할 사연들을 글로 쏟아내며 마치 일기를 쓰듯이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 글쓰기가 10여 년을 이어오며 정제되고 절제되어 갔다. 또한 삶과 상상이 연결되고 사실과 허구가 융합되며 새로운 이야기들로 재 탄생되고 있었다.
그 글들을 온라인상에 공유하면서 한 두 명씩 나의 독자들이 늘어갔다. 몇 안되지만 나의 생각과 세계를 이해해 주는 그들이 있어 계속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었던 남자친구가 오프라인의 인연으로 이어졌고 나의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함께했던 그와 함께 얼싸안고 기쁨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 짧은 순간 그 수많은 과거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霈云,你看你看, 太棒了! 收视率已经超过20% 了”(페이윈! 봐봐! 대박! 대박! 시청률이 20%가 넘었어)
“真的?嗬! 是真的呀”(정말? 헐 진짜네)
드라마가 대박이 터졌다. 공모전에 투고한 극본은 내가 3번째로 썼던 완성한 장편이었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내가 이전에 썼던 장편 소설들까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방송국에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소설들을 드라마 극본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일약 스타 극작가로 올라섰다.
모든 현실의 제약과 곤궁함이 해결되었다. 나는 다시 직장을 그만두었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일개미의 삶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남자친구 또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전업 매니저가 되었다. 더 이상 쥐꼬리 같은 월급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모전 상금으로 1억이라는 생전 보지 못한 숫자가 나의 계좌에 찍혔다. 나와 남자 친구는 그 숫자가 너무 신기해 1억이 입금된 그날 잔고가 인쇄된 통장을 가져와 방안에 붙여놓고 매일 쳐다봤다.
나의 극본의 연출을 맡은 PD는 처음으로 메인 프로듀서로서 이 드라마의 제작을 맡았는데… 그 또한 오랜 시간 보조 프로듀서로 메인 프로듀서의 그늘에 가려있다가 나와 인연을 맺었다. 그동안 쌓아온 연출 기교와 테크닉으로 드라마 대박을 이끌었다. 그는 내가 이야기 속에 담고자 하는 이미지를 아주 잘 연출해 내었다.
당시 방송국에서 무명 극작가와 보조 프로듀서가 만드는 작품이라 큰 기대를 않았기에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주연 배우들도 유명한 인기 배우가 아닌 신인배우와 조연급 배우들로 캐스팅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더그라운드 연극 무대에서 오랜 시간 연기력을 갈고닦은 배우들이었다. 나의 신선한 스토리와 PD의 특유한 연출력 그리고 잠재된 배우들의 연기력이 삼위일체가 되어 드라마는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렇게 극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력의 완벽한 궁합이 20%가 넘는 시청률을 올렸다. 나와 PD 그리고 주연 배우들은 드라마 방송계에 떠오르는 신예가 되었다. 그 이후 방송국뿐만 아니라 여러 스튜디오와 영화사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那从今以后这些事情都你来办理吧。 我只专心写作。”(오빠가 이제 다 맡아서 해줘, 난 글만 쓸게)
나는 이런 모든 현실의 활동들로 벗어나 이제 내가 원하던 이상 세계에만 머물기 위해 나의 남자친구에게 그 모든 현실의 일들을 일임했다. 그는 나의 총괄 매니저가 되었다. 나의 작품을 계약하는 조건은 모든 일정과 스케줄을 나의 매니저를 통해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PD와 감독하고만 소통했다. 그것도 비대면의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만.
방송계에선 이렇게 대면(對面)없이 활동하는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도 결국 나를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이해관계자들일 뿐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질 좋은 떡밥과 콩고물을 계속 던져주는 한 그들은 계속 나를 찾을 것임을 안다. 이미 나는 나의 글로 그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었다.
극작가가 되고 나는 온전히 이상세계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음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현실의 제약이 없는 몰입의 시간 속에서 환희의 시간을 보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노트북과 필요한 소지품만 백팩에 챙겨서 국내외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짧게는 1~2주 길게는 한 달씩 머물며 집필과 여행을 병행했다. 낯선 환경과 새로운 만남 속에서 새로운 영감들이 생겨났고 그것들이 나의 글감이 되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글만 쓰고 놀아도 계좌에 돈은 줄어들긴커녕 계속 더 불어나고 있었다. 항상 계좌의 잔고를 걱정하며 쓰던 글을 멈추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상상을 접어야 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현실의 곤궁함은 비생산적인 상상의 시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상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마도 이런 현실의 곤궁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였을까? 짧지만 곤궁함 속에서 피어나는 짧은 상상 속에선 간절함과 절박함이 묻어있는 글들이 탄생하곤 했다.
이젠 그런 현실의 절박함은 사라졌지만 현실 속에서 여행을 하며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하며 또 다른 종류의 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과거 절박함은 글의 깊이를 더했다면 지금의 여유는 글의 넓이를 확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또 다른 현실 세계 속에서 얻은 새로운 경험을 상상 속에서 리얼하게 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你什么时候买了这辆车?还有账户里有了那么多钱是哪儿来的呀?”(이 차는 또 언제 샀어? 그리고 계좌에 웬 돈들이 계속 들어오는 거야?)
“你是一位一流编剧,这个算是大不了什么”(이제 일류스타 작가님이신데 이 정도는 누려야지 않겠어?)
“。。。”
매니저인 남자친구는 이리저리 일을 많이 벌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내가 이상세계에서 환희를 느끼는 동안 그는 현실세계에서 환희를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현실세계에서 느끼는 환희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는 내가 집필에 빠져 있는 동안 여러 방송국과 영화사에 아직 만들어 지지도 않은 작품의 사전 계약들을 진행했던 모양이었다.
“你怎么跟我一点商量都没有做个合同怎么办?”(아니 나하고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렇게 작품 계약을 하면 어떻게 해?)
“我就不想妨碍你的写作而就这么处理的,你别担心了这个没有固定的期限所以你只专心写作就可以了”(너 집필하는데 방해될까 봐 말 안 했어. 괜찮아 뭐 작품 시한이 딱 정해진 건 아니니까 그냥 넌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면 돼)
“可是你这样还是”(아니 그래도… 이건 좀…)
“别操心了你只照顾剧本吧。我有在嘛”(걱정 말고 넌 쓰기만 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
내가 썼던 극본이 새드 엔딩이었기 때문일까?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듯했다. 나의 성공으로 나와 남자친구의 관계도 반전의 호전을 보였지만 그 호전된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물질의 풍요가 정신의 행복을 지속할 수 없다는 진리는 어김없이 나와 나의 남자친구에게도 적용되었다.
물질적인 것들로 회복된 관계는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물질적 풍요는 그것을 통한 또 다른 정신적 보상을 원한다. 보통 물질로 얻는 정신적 보상은 쾌락인 경우가 많다. 가장 빠르고 자극적이며 또한 중독적이다. 결국 남자친구는 내가 채워준 물질의 풍요로 또 다른 정신적 보상을 주는 현실의 대상을 찾아갔다.
‘何必是她呢? 到底是为什么?’(왜 하필이면 그녀였을까? 도대체 왜? )
하필 그 현실의 대상이 내가 만든 인물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창조한 극 중 인물을 연기한 여자배우였다. 난 내가 창조한 인물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극 중에 연출되지 않은 것까지 모두 다. 그녀의 모든 것은 나의 머릿속에 있었다. 내가 아직도 궁금한 건 그가 사랑한 여자가 내가 만든 캐릭터인지 아니면 그 여자의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내가 만든 캐릭터를 사랑했다면 그도 언젠간 나처럼 처참한 고통과 후회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럼 나는 영원히 그를 증오하게 될 것 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