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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인가? 격상인가?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발제문 -

by 글짓는 목수

1. [인간 실격]를 읽고 쓴 각자의 독후감(벌거벗은 인간_참조)을 낭독한 후 간략한 소감을 말해주세요.



2. 감정노동에 관하여…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양손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이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원숭이다" [민음사] 10p

주먹을 쥐고 웃는 원숭이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웃는다는 것은 화가 나지만 절대 화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일 것입니다. 반대로 슬퍼도 웃어야 하는 상황도 있죠. 현대의 감정노동자(조직, 접객 노동)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 상황이죠. 현대인들이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잘 표현하지 못하는 건 이런 감정과 행동의 모순과 부조리에 오랜 시간 익숙해진 결과가 아닐까요?


당신도 주먹을 쥐고 웃어본 적 혹은 죽을 것 같이 괴롭고 슬픈데 누군가의 앞에서 웃어본 적이 있나요?



3. 선택 장애


"저에게는 양자택일하는 능력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훗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인이 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 [민음사] 20p-


주인공은 어린 시절 우유부단한 성격이 훗날 벌어질 우울한 삶의 원인으로 회상합니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보통 선택의 마지막 단계는 양자택일입니다.


당신은 일상 혹은 일 속에서 가장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함께 나눠볼까요?



4. 교육? or 쇠뇌? or 기만?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끝내 저에게 그 요령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 [믿음사] 27p -


"나는 서로를 속이면서 깔끔하고 밝고 뒤끝 없이 살고 있는, 또는 살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한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인간은 끝내 내게 그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 [열린 책들] -


"내겐 서로 속이면서도 결백하고 명랑하게 살고 있는, 혹은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 보이는 인간들 자체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사람들은 끝내 내게 그 묘책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 [문예출판사]


1)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입니다. 당신은 이 어떤 번역(요령, 진리, 묘책 등등)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다른 책의 것이 더 마음에 든다면 낭독해 주시고 그 이유를 한 번 나눠 볼까요?

바른 생활과 도덕과 윤리

2) 우리는 어려서 바른생활(초등), 도덕(중등), 윤리(고등) 교과서를 배우며 어른들로부터 정직과 선행과 같은 가치를 끊임없이 교육받으며 자라납니다. 그런데 국영수(수능)를 잘해서 출세한 많은 전문가 고위층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른생활과 도덕 그리고 윤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마치 도덕과 윤리와 같은 과목은 피지배층을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윤리와 도덕 과목은 과외(사교육)가 없는 이유입니다. 대중을 말 잘 듣게 만들기 위해 만든 교과목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리 도덕을 잘 익히고 실천한 학생은 가난과 사기를 면치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윤리와 도덕(철학)이 없는 자들이 전문가와 통치자가 되면 사회는 불신과 기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왜 우리의 학교는 윤리와 도덕(인문학과 철학)보다 국영수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일까요?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과목)은 무엇인가요?



5. 책 속 명문장


책 속에는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책 속 문장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를 꼽으라면?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6. 천재의 고독


"어떤 천재에게도, 가령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에게도 있지 않을까요. 배우에게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소는 고향의 극장일 터." – [민음사] 29p -

예수의 가르침

다자이 오사무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 읽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성경 속 구절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선지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과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 [마가 6:4], [누가 4:24], [마태 13:57] -


이 구절은 공관복음 모두에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왜 천재와 선지자 같은 사람이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7. 남성성 vs 여성성


“여자들이 너한테 홀딱 빠지겠다.” – [민음사] 33p-

다자이 오사무 청년 시절

다케이치가 자신의 아픈 귀를 청소해 주면서 요조에게 하는 말입니다. ‘오바 요조’의 모습은 마치 요조숙녀 같기도 합니다. 이름도 절묘하게 지었습니다. (일본어 발음으로 ‘요오초오슈쿠조’) 요조에게서 남성적인(당시 남성에게 요구되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남자로 보기엔 어눌해 보이지만 섬세하고 여성스럽습니다. 나중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인가 봅니다. 요조가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당시 일본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 세계가 그에게는 어쩌면 가장 괴로운 공간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 남녀의 역할이 확연하게 구분된 세계에선 성역할에 맞는 행동양식이 강조되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기준(고정관념? 혹은 편견?, 교육받아온?)이 무엇이라고 보나요? 과거 남자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여자는 여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길러져야 하는 소양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각자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볼까요?



8. 토모다치 (友達, ともだち)


“너는 굉장한 화가가 될 거야.” – [민음사] 40p-


다케이치는 요조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친구입니다. [데미안]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그런 친구였듯이 말입니다.


“다케이치에게만은 원래부터 상처 입기 쉬운 나의 감각을 태연히 드러내 보였고”,


요조는 자신의 비밀과 연약함을 다케이치에게만 드러냅니다. 그리고 위안과 격려를 얻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친구(토모다치) 일 것입니다.


당신은 어린 시절 이와 같이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나요? 있었다면 한 번 나눠 볼까요?



11. 경전과 고전의 연결


"모두가 성경을 잘못 읽고 있음이라 그렇지 않다면 상식도 지혜도 없으리니"


성경 속에는 삶의 지혜와 상식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건 불경도 마찬가지죠. 경전보다는 고전이나 철학서 혹은 자기 개발서 같은 책을 통해 지혜와 상식을 습득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고대 경전은 시대상을 품은 스토리텔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경전은 모르고 고전을 읽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서양고전에는 성경의 내용 등장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지혜는 경전에서 고전으로 그리고 현대의 다른 스토리로 그 형태와 시대상을 바꿔가며 표현됩니다.


당신이 고전에서 (혹은 현대문학이나 현대예술 -영화, 미술, 음악등) 경전(성경이나 불경 혹은 베다 아니면 코란?) 속 내용(지혜)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경험이 있나요? 나눠 볼까요?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9. 죄와 벌


"죄의 반대말은 대체 무엇일까? (중략) 죄와 벌을 엔터(반의어)로 생각한 도스토옙스키의 녹조. "


죄와 벌이 어떻게 반의어가 될 수 있을까요? 요조는 당신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나요? 당신이 생각하는 죄의 반대말은 무엇인가요?



10. 오바 요조는 누구인가?


남성과는 "돈 떨어지면 인연도 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요조는 다른 일반적인 남자들과 달리 여자가 끊이질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는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와 [이방인]의 뫼르소 혹은 [설국]의 시마무라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소설 속 요조는 그 시대의 다른 남성과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자를 끌어당기는 그 어떤 매력이 있는 듯 보입니다.


왜 여자들은 오바 요조라는 인물에 빠져드는 것일까요? 소설을 읽고 난 후 주인공 오바 요조는 당신에게 어떤 인물로 인식되나요? 한 문장 혹은 단어로 그를 정의 혹은 서술할 수 있나요?



11. 자서전? or 고백록(회개록)? or 유서?

다자이 오사무(1909~1948)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는 그의 대표작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집필한 직후, 1948년 6월 13일에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도쿄의 다마강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6일 후인 6월 19일, 그의 39번째 생일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의 삶이 반영된 자전적 소설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설 말미에 이것을 마치 타인의 이야기처럼 말합니다. 부끄러웠던 걸까요?


그는 왜 그랬을까요? 작가는 어떤 감정으로 이 소설을 썼을까요? 당신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건 자서전인가요 고백록인가요? 아니면 유서인가요?



12. [인간 실격]을 읽고 내가 다시 이 소설을 제목을 짓는 다면 어떻게 짓고 싶나요? 그리고 평점은?


*별점: ☆☆☆☆☆

*한줄평 (책제목):


[인간실격] in M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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