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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책쓰기 사이

[페소아리즘] 출간 기념사

by 글짓는 목수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신이 망각한 빈 공간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그건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페소아는 우리 안에 여러 가지 페르소나가 존재함을 알려준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 페소아는 그 여행길의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 또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 당신도 페소아가 찾아낸 수많은 이명처럼 수많은 나를 찾길 바란다.


- 글짓는 목수 [페소아리즘] 중에서 -




[불안의 서] 부산 보수동 초판 1쇄

내 생애 첫 책을 출간했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늘은 경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왜냐구요? 기념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출판 기념회에 강단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시간 페소아의 글을 읽고 떠오른 상념들을 저의 삶과 함께 산문책으로 엮어 보았습니다. 제 인생 책이자 멘토 작가가 되어 버린 ‘페르난두 페소아’, 그의 글은 읽는 시간보다 사색하는 시간이 더 많은 책입니다. 해외에서 체류하며 수없이 투고와 공모전을 통해 책 출간을 기대했지만 무명의 글쟁이 책을 원하는 출판사는 없더군요. 간간이 전액 자비로 출간하는 것을 의뢰하는 출판사가 있긴 했습니다.


"혹시 저의 원고가 어떤 내용인지 읽어 보셨나요?"


저에게 답장을 보내온 편집자인지 아니면 출판사 직원인지 모를 그분은 저의 원고를 읽지도 않았더군요. 읽지도 않고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넘쳐나는 무명작가들이 투고한 원고들을 읽을 시간은 없겠죠. 제가 쓴 글은 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글이지만 그 글이 타인에게 소중하게 되는 건 별개의 문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되어야 글도 의미를 가진다는 불편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타인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글은 자신의 의미를 찾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페소아리즘] 뒷면 표지

본래 글을 쓴다는 것은 돈을 버는 행위와는 거리가 먼 짓거리입니다. 오히려 돈과 시간을 쓰기만 할 뿐이죠. 글을 쓰는 시공간을 제공받기 위해 카페에서 커피 한 잔도 마셔야 하고 소모된 칼로리를 채우기 위해 밥도 먹어야 하며 뇌가 다시 회전할 수 있도록 잠과 휴식을 취해야 할 잠자리(주거비용)도 필요합니다. 그동안 계속 시간을 흘러가죠. 아무런 경제적 부가가치도 만들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 흐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의 눈에 보이는 그 어떤 물질적 피드백이 없는 시간을 견디는 일입니다. 사실 견딘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만약 이것을 힘들게 견딘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면 그 자는 아마 오래지 않아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요즘은 작가들이 광고 홍보로 스스로 자신의 글을 알리는 시대예요. 요즘 뜨는 작가들은 펀딩, SNS 등을 이용해 자신의 글을 어떻게든 알리려 혈안이 되어 있죠”


출판사 담당자가 얘기하더군요. 맞습니다. 지금은 자기 PR 시대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쓰고 스스로 홍보하고 스스로 팬을 만들고 스스로 책을 쓰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출판계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더군요. 출판사도 먹고살아야 합니다. 지금 서점에 가보면 출판사가 책의 가지 수만큼 많아진 듯합니다. 한강 작가님의 덕분인지 한국에 독서 열풍이 불고 또한 독서는 글쓰기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난 듯 보입니다. 한 간에는 다들 책 읽고 글 쓰면 경제는 누가 돌리냐는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발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저변의 깔린 사람들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 방법 중에 독서가 유용하죠. 글쓰기가 병행되면 그 변화의 질은 더 나아질 것입니다. 인간과 사회는 항상 경제로만 발전을 말하지만 정신의 발전은 경제처럼 수치로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의 발전 뒤에 오는 발전은 기존의 쥐어짜는 발전과는 다를 것입니다. 더욱이 최첨단 산업과 디지털 ai 시대에는 기존의 발전 방식으로는 업그레이드되기가 어렵습니다. 읽고 쓰는 것은 인류의 가장 좋은 학습과 성장의 방식입니다.

독서 모임 (부산 서면)

수요에 맞춰 출판사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인 출판사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쓰고 내가 기획, 편집, 디자인, 인쇄 등록까지 1인 온라인 기업입니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작가는 글을 쓰는 것이 본업이지만 글만 쓰고는 먹고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강구해 낸 생존법입니다. 유명 작가들이야 그냥 주야장천 읽고 쓰면 되지만 무명작가는 숨 쉴 틈 없이 읽고 쓰고 블로그와 SNS로 홍보하고 공모전 준비도 하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몸과 정신이 바쁩니다. 이제는 자기 홍보(PR)를 넘어서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나의 남다른 개성을 스스로 만들어서 입증해 보여야만 하는 시대입니다.


글쟁이와 작가 사이


저는 1000편(편당 5000자 이상의)이 넘는 글을 온라인(블로그, 브런치)을 통해 썼지만 그 글자 수에 비하면 팔로워(300명 정도)는 충격적일 정도로 적은 편이죠. 물론 저의 글이 질적으로 뛰어나지 않아서 일 수도 있습니다. 독자는 냉정하니까요. 하지만 양질 전환의 원칙은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많이 쓰지 않은 자가 글을 잘 쓸 수 있다면 그 자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겠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글을 잘 쓰는 건 얼마나 많이 읽고 쓰고 사색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이것이 작가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입니다. 글은 생각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읽고 사색을 통해 그 생각을 나의 삶과 상상과 연결하고 확장해서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모방에서 새로운 창작으로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저는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 작가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세상이 이해하는 작가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직업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은 결국 타인에 의해서 규정됩니다.


“책 한 권도 없는데, 작가라고요?"


누가 이렇게 말할까 두려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글쟁이가 될 수밖에 없더군요. 스스로는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글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젠 출간했으니 당당히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실 전 공모전을 통해 글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컸던 모양입니다. 책을 내고 작가가 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이건 제가 한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과 돈만 있으면 책은 누구나 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모전은 타인(전문가)의 인정을 통해 작가가 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좀 더 화려하죠. 전 아마도 화려한 시작을 꿈꾸었던 모양입니다. 누구나 화려하게 등장하고 싶어 하잖아요. 신은 저에게 화려함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글짓는 목수 작가와 차인표 작가의 만남 (그들의 하루 북토크에서...)

양질과 인기의 상관성


그건 제가 적극적인 홍보(비용과 광고, 공개 대면활동 등)를 하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또한 알 수 없는 힘에 의한 작용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상과 추측과 직감으로) 정말 돈을 안 쓰고 직접 알리지 않으니 정말 알려지지 않더군요. 지금은 SNS 플랫폼 기업들도 돈을 주지 않으면 노출을 시켜주지 않는 시대입니다. 메타(Meta)가 왜 돈을 많이 버는지는 이것과 연관이 깊죠. 이제는 개인 사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홍보 수단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갑이 되었습니다. 콘텐츠 제작자가 고객이었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생산자는 많고 판로는 소수의 몇몇 플랫폼이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과거 유통기업(과거 이마트 -> 이젠 쿠팡과 알리 같은)과 같습니다. 콘텐츠는 넘쳐나고 너도 나도 인기를 얻기 위해 돈을 헌납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투자와 수익의 개념으로 바뀌었죠. 철저히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픈하기로 했습니다. 자본주의 현실에 순응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본을 무시하면 나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세상이 아니던가요?


선택과 집중


나는 궁금합니다. 작가가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홍보 광고 그리고 편집과 SNS에 쓰는 시간이 많은데 과연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지를요. 작가는 본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적잖은 시간 글을 써오면서 글 쓰는 일도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죠. 지금은 숙달되고 훈련되어서 하루에 2~3시간을 쏟아부어 5000자(초고 기준, A4 4~5장) 정도 써내고 있습니다. 퇴고까지 합치면 3~5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몰입의 시간을 5시간 이상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경제적 일상적 활동과 육체적인 활동도 병행해야 합니다. 만약 전업 작가가 아니라면 이건 아주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획, 광고홍보 게다가 SNS, 영상 제작(유튜브)까지 한다면 이건 하루 24시간도 모자랍니다. 기계처럼 일해야 하죠. 전 다 해봤기에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다하려고 덤벼들면 읽고 쓰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모적 활동은 질 좋은 글을 유도해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Writing wherever I am (Parramatta Park in NSW)

나는 궁금합니다. 과연 어떻게 그렇게 매일 글을 쓰면서 그 모든 활동들을 해내는지를요. 그렇게 하는 작가님들이 모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은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테스트해 보았죠. 잘 쓰더군요 정말. 그냥 그대로 퍼 올려도 아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돈을 버시는 분들이 많으신 거 같습니다. 그들은 그 글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건 그 사람과 직접 대화나 토론을 나눠보면 금방 들통날 일입니다. 자신의 뇌에서 사색과 상상을 통해서 나온 글이 아니라면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분리된 채 살아가시겠죠. 뭐 요즘은 이렇게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이니까요. 그런 복붙(Copy & Paste) 글이 돈벌이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정신적 언어적으로 성장하진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일기로부터...


저는 일기에서 시작해서 에세이, 칼럼, 소설로 나아가는 글쓰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저 또한 글을 쓰다 사실적 정보와 배경지식이 필요할 때는 AI를 활용합니다. 그럼 글이 더욱 사실적이고 설득력을 갖추게 되죠. 하지만 주제(프롬프트)를 던져주고 그들이 대신 글을 쓰게 하는 건 그들의 머신 러닝을 돕는 것이지 나의 뇌 발달과 성장을 돕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요. 저는 쓰면서 몰입하고 환희를 느끼며 성장한다는 것을 알기에 여태껏 계속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힘든 시간도 경험했습니다.

육체노동(Blue color), 인테리어 공사 (Newtown in Sydney)

왜냐구요? 현실은 녹녹지 않으니까요. 왜 세상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나눠져 있는지는 이와 연관이 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육체의 감각은 집중을 통해 부가가치(물질과 생산)를 만들지만 정신은 몰입을 통해서 부가가치(철학, 과학, 문학, 예술 등)를 만들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육체와 정신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배척하는 관계입니다. 한쪽으로 기울게 마련이죠. 육체노동자가 하루 8시간 주 6일로 일하면서 정신노동에서 큰 성과도 이룬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주경야독이 어려운 이유지요. 인간은 선택과 집중(몰입)을 통해 남들과 차별화된 성과를 이뤄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항상 포기해야 할 가치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가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자신이 무엇에 더 큰 가치와 의미를 가지느냐에 따라 삶은 변해가기 마련입니다. 그 가치와 의미가 모두 비슷한 것이라 문제이기도 하죠.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인정하는 가치는 보통 돈이나 물질 같은 것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만국 공통의 가치가 되는 것이죠. 우리가 돈을 좇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책을 쓴 이유도 그 일환의 활동입니다. 돈을 무시하면 안 되니까요.


글쓰기와 책 쓰기 사이


책을 출간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네요. 여태껏 써 온 원고만으로도 책을 10권도 넘게 쓰고도 남겠지만 실제 책으로 내기까지는 현실적이 노력이 없었습니다. 글쓰기와 책 쓰기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기획부터 편집 디자인까지 모두 제가 해냈네요. 글을 쓸 때는 몰입을 하지만 책을 쓸 때는 각성(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되더군요. 그래서 아마도 작가와 편집자(연출자)의 뇌 구조는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글과 연출을 모두 잘하는 사람은 큰 영예를 얻곤 합니다. 봉준호나 박찬욱 감독처럼 말이죠. 저는 그런 사람들과 비교할 인물은 아니죠. 전 글도 힘겹습니다.


그 힘든 첫 번째 책 쓰기를 이뤄냈습니다. 스스로에게 자랑스럽더군요. 성취감도 크고요. 그런데 이 성취감은 과거 회사에 다닐 때, 고객으로부터 큰 계약을 따냈을 때 혹은 연말 성과급을 받아낸 그런 기분과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글을 한 편씩 쓰고 난 뒤 찾아오는 그 환희와는 다른 것이죠. 그래서 전 글쓰기와 책 쓰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몰입(Flow)을 따르는 것이고 책은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기 좋게 만드는 집중(Concentration) 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이 있어야만 책이 있기에 책은 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죠. 글은 이상의 시작이고 책은 현실의 마감입니다.


부족한 책이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적잖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생애 첫 책을 만드는 과정도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틈틈이 집중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항상 유토피아를 원하지만 결코 디스토피아를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에…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페소아리즘] 글짓는 목수


(검색창에 '페소아리즘'을 쳐보세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270423

Pessoalism

[페소아리즘] 출간

https://youtu.be/faBfKgJVB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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