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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코와 요코 사이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by 글짓는 목수

“괴롭다는 것은 나그네에게 깊이 빠져들 것 같은 불안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때에 꾹 참고 견뎌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중에서 –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상대에게는 절제된 감정 상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건 자신이 상처받을 것 같은 불안 때문이며 또한 그 불안이 상대에 대한 간절함을 지속하게 만든다.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계속 갈망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가지려 하지만 가질 수 없는 욕망이 불러낸 불안과 안타까움은 사랑이 타오르지도 식지도 않게 만든다. 이건 사랑이 실현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중첩 상태를 가진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싫어하면서 또한 갈망하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신설국] 중에서


붐비는 열차 안에 한눈에 들어오는 남녀 커플이 눈에 보였다. 노란 머리의 파란 눈을 가진 남자와 검은 머리에 친숙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성이었다. 하얀 피부의 두 남녀는 가무잡잡한 사람들로 가득한 열차 안에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남녀는 나를 쳐다봤다. 그건 나 또한 그 열차 안에 있는 또 다른 이방인이라는 것을 그들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는 여행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I’m from France” (전 프랑스에서 왔어요)

“I’m from Japan”” (전 일본에서 왔어요)


남자는 프랑스인이었고 여자는 일본인이었다.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한국인이 말레이시아의 남북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열국 완행열차 안에서 만났다. 여행자는 여행자에게 솔직하다. 그건 서로 헤어질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스쳐가는 인연은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지 않기 때문에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알지만 떠나간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비밀을 털어내고 사라진다. 이건 마치 고해성사와도 같지만 그 대상을 일상에서 계속 봐야 하는 신부님에게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지금 내가 그 두 커플의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되는 것은 나는 신부님도 아니고 이 이야기가 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일본의 오키나와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눈부신 해변에서 눈부신 인연을 만났다. 여자는 어머니와 둘이서 여행을 왔고 남자는 배낭을 메고 유럽에서 극동 아시아까지 세계여행을 다니다 마지막에 들린 곳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에 휴양지에서 인연을 만났다. 둘은 가정이 있는 남녀였다. 해변에서 잠시 나눈 대화가 그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둘은 달빛 아래 해변에서 다시 만남을 가졌고 둘은 알 수 없는 끌림에 하룻밤을 같이 했다고 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삶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파리로 여자는 도쿄로. 그리고 서로는 일 년에 한 번 지구 어딘가에서 배낭을 메고 만나는 매년 연인(Once a year couple)이 되었다고 했다. 불륜의 사랑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셋이 탄 열차는 긴 터널을 지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의 어느 마지막 역에 정차했고 그곳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나는 한동안 멀어져 가는 커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불륜의 사랑이 둘이 각자의 일상의 삶을 살아내도록 하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 2018년 말레이시아의 어느 완행열차 안에서... -



[신설국]중에서

“'1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와줘요.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1년에 한 번은 꼭 와줘요.'약속 기한은 4년이라고 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중에서 -


그들의 여행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까? 아니면 소설처럼 4년의 기한이 끝나고 이제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인연과 그와 비슷한 불륜의 사랑을 하고 있을까? 토론에 모인 사람들은 나의 과거 배낭여행의 일화를 듣고 무언가 각자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설국] 이야기 속의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떠올랐을까? 나 또한 [설국]을 읽지 않았다면 그때 말레이시아의 완행열차 안에서 만났던 그 커플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된 기억은 언제나 그 어떤 단서를 통해서만 상기된다. 그 기억들을 상기하는데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 나는 문학을 읽을 때면 항상 나의 삶 속에서 그와 비슷한 혹은 상반되는 그 어떤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문학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그 문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사랑은 비극적일까요?”


소설의 마지막 요코의 죽음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남을 암시하고 있었다. 둘의 애틋하고 평화로운 휴양지에서의 사랑이 변질된 것은 고마코의 욕망 때문이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의 얼굴에서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떠나온 휴양지에서 다시 아내의 모습이 드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코의 집착이 행동으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시마무라를 옆에 앉아 가만히 쳐다보고 아침에 그의 방에서 화장을 하고 술에 취해 수시로 그의 방에 드나드는 행동들… 마치 자신의 집에서 아내처럼 시마무라의 삶으로 들어오려 했다. 선을 넘으려는 것이었다.

[설국] 중에서

“요코에게 시마무라는 야릇한 매력을 느꼈는데, 웬일인지 도리어 고마코에 대한 애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정체 모를 아가씨와 사랑의 도피행을 하듯 돌아가버리는 것은 고마코에의 심심한 사죄 방법이 아닐까도 생각되었다. 또한 형벌 같기도 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중에서 -


시마무라가 요코를 향해 품은 순정이 만든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질투였다. 요코가 고마코의 질투를 불러낸 것이다. 고마코의 선을 넘은 말과 행동들은 어쩌면 요코가 그 사이에 개입하면서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그 어떤 부가적인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냥 여백 있는 장면과 둘의 맥락 없는 대화를 보여줄 뿐이다. 상상은 독자의 몫이다. 보이지 않는 베일에 가려진 불륜의 사랑이어야만 하는 묵시적인 약속을 고마코가 깨뜨리려 했다. 서로는 서로를 가질 수 없기에 갈망하는 관계였지만 그것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욕망을 품게 됨으로써 그 관계는 파국으로 흘러간다.


“요코를 고마코가 죽인 게 아닐까요?”


[설국] 독서 토론에서 누군가가 얘기했다. 그는 소설이 품지 않은 또 다른 소설을 상상했다. 시마무라가 요코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소설은 고마코와 요코의 동성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품고 있었다. 시마무라를 향한 마음이 커져가는 고마코를 바라보는 요코의 질투가 만든 비극이었다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해 토론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놀라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 상상이 맥락 없던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대화와 뭔가 허술한 상황들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신설국] 중에서

“그 애(요코)가 당신 곁에서 귀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 산속에서 몸을 함부로 해도 되죠. 아주 홀가분한 기분으로…”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중에서 -


시마무라는 두 여자의 질투의 중심에 있었다. 시마무라가 품은 순수한 연정에 요코를 향한 질투가 생겨난 고마코, 시마무라를 향한 사랑을 키워가는 고마코를 바라보며 질투심이 생겨난 요코, 이렇게 세 남녀 관계는 미묘하게 또한 치밀하게 엮여 있었다. 시마무라를 향한 고마코의 집착과 고마코를 향한 요코의 집착 그리고 요코를 향한 마시무라의 연정이 모두 연쇄적으로 엮여 있었던 것이다.


처음 [설국]을 완독한 직후 이 애매하고 모호한 소설의 이야기는 나에게 설국의 하얗고 선명한 세상보다는 뿌연 안개에 휩싸인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독서 토론에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소설 속에서 정리되지 않던 애매모호했던 장면들이 눈이 그친 설국의 풍경처럼 하얗고 땅과 푸른 하늘의 경계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제야 작가가 왜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는 다 알고 쓰지만 그것을 독자들의 상상에서 완성될 있도록 대화 속 단서와 보이는 장면들 곳곳에 암시를 숨겨둔 것이었다. 물론 그 상상은 독자의 자유이다. 작가는 뒤에 가려진 남녀의 욕망과 심리를 모두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관조하는 자세로 서술하고 묘사할 뿐이다.


아직 나는 문학적인 감수성이 그리 예민하진 않은 듯하다. 나는 왜 그런 상상을 하지 못했을까? 항상 상상하며 글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작가(타인)의 상상을 들여다볼 줄을 몰랐다. 그래서 편협한 상상만 하는 것이리라. 나의 상상이 타인의 상상과 연결되면 그 상상은 아마 무궁 무한해질 것이다. 소설을 통해 서로의 상상을 나누는 것이 즐거운 이유이다. 성과와 결과를 도출하는 회의나 논쟁이 아닌 상상을 나누는 토론이 좋은 이유이다.

[신설국] 중에서

고마코와 요코 사이


시마무라는 일상의 가정을 벗어나 새로운 안식과 사랑을 꿈꾸며 설국으로 향하는 인물이다. 고마코는 그런 안식과 사랑을 주는 여인이지만 서로의 관계가 짙어질수록 그 사랑이 일상의 삶으로 변해가려 한다. 시마무라는 나그네지만 고마코는 나그네를 잡아두려는 욕망을 품는다. 시마무라는 요코라는 또 다른 인물에게 또 다른 감정을 품으면서 고마코는 이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로 자신의 죄어오며 휴양지가 일상의 삶의 장소로 변질되어 간다. 언제나 두 남녀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개입하면서 둘의 관계는 욕망과 질투라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럼 촉이 강한 나그네는 그곳을 떠나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여자가 오뉴월에 한을 품으면… 어찌 된다는 것을 잘 알지 않은가? 책의 제목이 [설국]인 이유일까? 한국 속담이 일본에도 적용될 줄이야. 물론 이건 소설 던져준 새로운 상상이지만 나는 고마코가 나그네의 안식처에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해가는 과정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나그네는 익숙해지기 전에 또 다른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가는 존재이다. 하필 그 새로운 곳이 요코에게 느낀 것이 파국의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가 베일에 싸인 것은 어쩌면 작가의 설정이 아니었을까? 암시는 있었지만 나는 그 암시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토론에 참석한 대부분이 그랬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능력은 누구나 가졌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상상이야말로 진정한 상상일 것이다. 우리가 독서를 하며 글을 따라 떠올리는 상상은 상상력을 키워주지만 그 상상 뒤에 숨겨진 상상을 꿈꿀 수 있는 것은 창조적인 상상력이 커지는 것이리라.


고마코와 요코 사이에서 비극을 맞이하는 시마무라의 불륜의 사랑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은 무슨 상상을 하는가?


나는 또 다른 상상을 해본다. 그 상상이 나의 소설이 되길 기대해 본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 독서 토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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