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Jul 27. 2024

11화 먹구름

24시 무인라면가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가 쨍하던 하늘은 금방이라도 소나기쏟아질 듯 진회색으로 변해있었다. 아무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순식간에 변해버린 날씨에 거리

걷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배신을 당할 수밖에....

분명 오늘 일기예보는 하루종일 화창한 날씨에 낮 한때 약간 흐릴 거라고 했건만.  

사람 마음처럼 믿을 수 없는 게 일기예보라더니 오늘이 딱 그랬다.

서우는 일어나서 하늘을 좀 더 보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정도로 병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어두워진 하늘은 마치 지금 자신의 모습 같아서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

가 나질 않았다. 서우와 아빠는 언제부터 이렇게 어긋난 관계가 되어버린 걸까....

생각해 보려 노력해도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질 않았다.

후두두둑.


"일어났네요? 오늘 기분은 좀 어때요?"


갑자기 쏟아진 빗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 탓에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간호사 선생님이 서우의 침대 옆으로 와 있었다. 서우는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태진과 소율이 허겁지겁 24시 무인라면가게로 달려왔다. 준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늘 밝기만 하던 준기의 얼굴이 이렇게 어두웠던 적이 있었나. 그래서 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율은 준기를 바라보았다.

웬만해선 표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 태진도 오늘은 달랐다. 진심으로 서우가 걱정되었다. 가장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서우였지만

세 명의 친구들을 모두 이곳에 자주 모이게 한 것도 어찌 보면 서우의 역할이 컸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봐. 나 숨 넘어가는 꼴 보고 싶냐?"


준기의 메시지 하나에 뛰어온 소율이 참다못해 폭발하고 말았다.


"오늘 내가 빌려둔 연습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도 없이 안 나오길래 전화해 봤더니 서우 어머니가  받더라고. 서우가 보호병동에 입원했다고..."


"보호병동? 그게 뭔데?"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 태진도 이번만큼은 기다림이 힘들었다.


"정신과에 있는 보호병동에 입원했대. 서우... "


소율과 태진은 그다음 말을 뭐라고 이어가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서우가 대체 왜...

무슨 일로 그곳에 입원했다는 말인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실은 내가 너희들에게 말 안한 게 있어...

서우랑 나랑 같은 정신의학과에서 만났었어. 서우는 중학교 때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많이 힘들었었대. 그래도 최근에 많이 좋아졌다고 했었는데....

아, 나는 연습생 때 스트레스가 좀 많았었나 봐. 밤에 잠을 통 못 자고 가슴도 답답하고 뭐 그래서 병원에 갔었지. 지금은 괜찮아. 걱정 마. 진짜야~~"


준기가 나는 정말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 힘들었을 또 다른 준기가 있었을 걸 생각하니 소율은 가슴속에서 갑자기 울컥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소율이 너 우냐? 난 진짜 괜찮아졌어."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소율을 보자 준기는 정말로 당황했다. 평소에 냉혈한이라고 놀리곤 했었는데 그런 소율이 지금 자신과 서우를 걱정하면서 울고 있다.


"우리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준기 너도 많이 힘들었겠다. "


태진이 준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츤데레 같지만 태진은 가끔 이렇게 따스한 한마디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아 진짜. 이 분위기 뭐야 정말. 나는 상담받으면서 너무 많이 좋아졌고 지금은 연습생 생활도 안 해서 그런지 더 좋아졌어. 정말이야."


"그렇담 정말 다행이고. 근데 서우 병원에 우리 안 가봐도 되는 건가. 보호병동? 거긴 면회가 안되나?"


태진의 물음에 준기도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했다.


"안 그래도 서우 어머님께 가봐도 되는지 여쭤봤는데 서우가 원하질 않는대. 보호병동에 있는 모습 나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소율과 태진은 서우가 혼자서 어떤 길을 헤매고 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미안했다. 혹시 깜깜한 암흑 속을 혼자 걷고 있는 그런 기분일까, 아니면 TV에서 본 것처럼 서서히 물속에 잠기며

점점 숨이 막혀오는 그런 고통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서우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들이 한없이 나약하게 느껴졌다.


"우리 서우를 조금만 기다려주자. 우리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 우리 문자로 힘내라고 격려만 해 주는 건 어때? "


"그래. 나도 준기 말에 동의!"


어느새 눈물을 훔친 소율이 다시 씩씩하게 말했다. 준기 얼굴에 다시 밝은 웃음이 번졌다.


"그나저나 소율이 너 방학 동안 기숙학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나온 거야?"


"하늘이 날 저버리지 않았나 봐. 지난주에 기숙학원에서 집단 식중독 환자가 나오는 바람에 한 바탕 난리가 났었잖아. 나는 다행히 그날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환불받고,

 와~ 정말 그런 난리가 없었다. 나 그래서 집에서 학원 다니잖아. 하하하."


소율의 얼굴이 모처럼 밝아졌다. 저렇게 기분 좋게 웃은 적이 언제였던가 싶을 만큼 그렇게 웃고 있었다.

방학 내내 꼼짝없이 감옥 같은 기숙학원에 갇혀 있을 뻔했던 소율에게 갑작스러운 식중독 사고는 한줄기 빛과 같았다. 물론 식중독에 걸린 친구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아마도 소율이 세운 계획을 실천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소율이 너한테 잘 된 일이라면 다행이다. 암튼 서우한테 혹시라도 먼저 연락 오는 사람 있으면 반드시 서로 알리기다 알겠지?"




서우는 보호병동에 온 지 사흘 만에 엄마의 면회를 허락했다.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 병원 산책길을 엄마와 나란히 걸었다. 엄마는 서우 앞에서 늘 죄인처럼 굴었다. 아빠로부터 자식을 보호하고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엄마를 더 괴롭게 했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서우가 벤치에 앉자 엄마는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 가방을 풀어놓았다.


"병원 밥  없지? 엄마가 서우 좋아하는 걸로 만들어 왔는데 조금만 먹어 볼래?"


서우는 대꾸 없이 엄마가 내민 젓가락을 들었다. 그제야 엄마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바리바리 싸 온 음식들을 펼치고 시원한 보리차도 컵에 따라 서우 앞에 놓았다. 입맛이 없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만드느라고 애썼을 엄마를 생각해서 서우는 억지로 입에 음식물을 집어넣었다.

더 이상 못 먹겠다 싶을 때 서우는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때를 기다린 듯 엄마가 서우의 눈치를 살피며 말문을 열었다.


"서우야 있잖아.... 아빠가 지난번 일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후회하고 계셔. 너한테도, 엄마한테도 미안해하고 계시고... 그러니까 서우야...

아빠 보는 거 너도 힘들겠지만..."


"엄마! 저 당분간은 아빠 보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 당연히 그렇겠지... 엄마는 서우 네 마음 이해해. "


"그러니까 엄마도 이제 그만 오세요. 저도 시간이 좀 필요해요. "


"그래... 알았다."


서우의 단호함 앞에서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서우는 그저 좀 쉬고 싶었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서 쉬기로 마음먹었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태진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조금 빠르게 느껴졌다.

오늘은 태진이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이다. 할머니 혼자 준비하고 계실 생각을 하니 태진이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버스에서 내린 태진이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가 사라졌고 이사와 전학을 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탓일까. 엄마가 돌아가신 게 까마득히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는데 이제야

첫 기일을 맞이한 거다.

엄마를 떠올리고 그리워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만큼 태진의 일상은 바빴다. 그래서 엄마에게 더 미안했다.

오늘만큼은 유난히 엄마의 부재가 가슴으로 와닿았다.


"할머니,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태진은 할머니부터 찾았다. 그런데 현관에 놓여 있는 낯선 신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태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방을 바라보았다. 상을 차리고 있는 할머니 옆에 서 있는 저 사람은...

아빠였다. 태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전 10화 10화 용기가 필요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