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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14. 2024

15화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24시 무인라면가게

"윤소율? 너 진짜 소율이야?


태진은 자신이 그렇게 말해놓고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소율의 얼굴을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아니 그동안 보아왔던 소율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진한 화장에, 화려한 액세서리,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본 듯한 댄서들의 힙한 옷차림까지.

태진이 알던 소율이 아니었다.

그러니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너, 너 어떻게 된 거야?"


소율은 태진의 이런 반응이 그저 재미있다는 듯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야, 그만 그 입 좀 다물어라. 턱 빠지겠다. "


소율의 말에 태진은 그제야 놀라 떡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

려고 애썼다.


"뭘 그렇게까지 놀라. 진짜로 난 줄 몰랐어? "


"응. 완전 딴 사람인 줄. 근데 뭐야. 다른 여자애들은 다 화장하고 다녀도 너는 안 하고 다니지 않았냐? 무슨 심경의 변화야?"


소율은 대답 대신 거울을 보며 조금 전 태진과 함께 집었던 모자를 이리저리 써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벗어서 태진의 머리에 푹 씌웠다.


"음. 이건 나보다 네가 좀 더 잘 어울린다. 인정! 네가 해라."


"뭐냐고.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


"그 모자 살 거면 얼른 결제하고 뭐라도 먹으러 가자. 시간 되지? "




햄버거 가게에 온 소율과 태진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곧이어 주문한 햄버거 세트가 나오고 소율은 배가 고팠는지 우걱우걱 햄버거부터 먹기 시작했다. 사실 태호와 늦은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은 탓에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았던 태진은 열심히 먹는 소율을 한동안 지켜보기만 했다.

소율에게 무슨 일이 또 생긴 걸까?

엄마와 또 큰 전쟁을 벌인 것임이 분명해.

그러고 나서 반항심에 화장까지 진하게 하고 돌아다니는 걸 거야. 혹시 가출한 건 아니겠지?

혼자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는데 소율이 햄버거를 반쯤 먹다가 입을 열었다.


"뭔 생각 하니? 넌 안 먹냐?"


"점심을 늦게 먹었더니 배가 안고프네."


"그래? 그럼 이거 내가 더 먹어도 되지? "


소율은 자신의 햄버거를 뚝딱 먹어치우더니 태진의 햄버거까지 먹기 시작했다. 꼭 며칠 굶은 사람처럼 열심히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엄마가 굶기냐 요즘?"


풉. 하마터면 소율은 입에 잔뜩 물고 있던 햄버거가 튀어나올 뻔했다.


"우리 엄마가 너희들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닌 거 알지만 막 밥도 안 주고 굶기진 않아. 점심을 못 먹어서 그래. 내일까지 해가야 하는 학원 숙제를 점심때 다 해놓는 바람에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거든."


"점심도 굶어가면서 숙제를 하냐. 집에 가서 하면 될 것을."


"나 실은... 분장학원 다녀. 특수분장. "


"뭐?"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오늘 태진은 소율이 때문에 여러 번 놀라고 있었다. 특수분장 학원이라니. 태진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었다. 아니 소율의 집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 게 맞는 것 같다.

윤소율 이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크게 치려고 이러는 건지. 태진은 걱정부터 앞섰다.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야. 엄마, 아빠는 모르셔. 학원 끝나고 오후에 몰래 다니는 거야."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너희 엄마 가만히 안 계실 것 같은데... "


"사실 고1 때부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해 왔어. 그전까지는 그냥 엄마가 정해놓은데로 하라는 공부하고 학원 다니고 그게 다였어. 너도 알다시피.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대는 엄마 꿈이지 내 꿈은 아닌 거야.

어느 날 TV를 보는데 무슨 프로그램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직업과 관련된 프로였던 것 같아. 거기에 할리우드에 특수분장사가 나오는 거야.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 짜릿하더라고.

저거다, 싶었지. 너무 배워보고 싶었어. 그때부터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학원을 알아봤지. 우리나라에 특수분장 학원이 많지는 않더라고. 근데 학원비가 생각보다 비싸서 사실 모은 용돈만으론 부족했어. 정말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할머니 찬스를 쓰기로 했지.

할머니께 석 달만 보태달라고. 석 달 다녀보고 정말 이 길이 내 길이다 싶으면 그땐 부모님께 정식으로 허락받고 다니려고.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고? 나도 그 정도 각오는 했어. 하지만 엄마, 아빠가 반드시 허락하게 만들 거야. 난 할리우드로 갈 거거든. 엄마가 대학을 원한다면 미국에서 유명한 영화학교던 분장학교든 어디든 도전해서 꼭 갈 거라고. 그리고 꼭 성공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이야. 너 나 알잖아. 난 꼭 다 해내고 말 거거든. 부모님께 PPT 만들어서 제대로 브리핑할 거야. 내 인생이 걸린 문제니까.

이젠 엄마가 두렵지 않아. 내 인생이잖아. 

아 오늘 얼굴? 오늘은 영화 속 캐릭터 분장이었는데 내 얼굴을 맡은 친구가 영화 속 댄서 분장을 한 거야. 그래서 좀 화려하지? 그래도 피 철철 분장이 아니라 오늘은 이러고 좀 돌아다녀 보고 싶었어."


두 번째 햄버거를 먹어치우고 난 후 소율은 한참 동안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태진은 묵묵히 소율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역시 소율이다. 멋진 윤소율이다.

그리고 태진은 소율이 이야기한 데로 반드시 해낼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우는 요즘 하루 24시간이 무척이나 바빴다.

학원에서 방학특강 수업이 끝나는 대로 연습실로 직행, 그곳에서 건반 연습도 하고 곡 작업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 실용음악

학원의 수업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다.

내 연습실 옆방엔 준기가 있다. 준기는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최근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뭐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서우의 말에 바로 기타 학원을 등록했다. 물론 서우는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만 한다. 음악을 하면서도 학교 공부에 절대 소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아빠와 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지원을 해준 아빠에게 서우는 요즘 살가운 아들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힘들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들의 꿈을 지지해 주기로 한 아빠에게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기 위해 서우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다.  


"똑똑"


서우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준기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언제까지 할 거야? 배고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 집 가는 거 어때? 분식 콜?"


"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준기네 부모님이 하시는 분식집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열심히 한다고, 대견하다고 늘 토닥여주시는 준기 부모님을 보면서 준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서우는 생각했다.


"지난번에 썼던 곡 마무리 되고 있어?"


입 안 가득 넣은 순대를 오물거리면서 준기가 진행 상황을 물어왔다.


"지적했던 싸비 부분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확 꽂히는 멜로디가 없네. 좀 더 고민 중이야."


"곡 작업 빨리 마치고 녹음하자. 내가 아는 기획사에 데모 만들어서 전부 뿌리게."


"근데 과연 우리 곡을 알아봐 주는 곳이 있을까?"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서우는 아직 준기만큼의 자신감을 장착하진 못했다.


"안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준기가 옆에 있어서,

함께 음악이라는 공통된 꿈으로 서로 돕고 있어서 서우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뭐든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겠지. 준기 말대로 될 때까지 해 보는 거야. '


"요즘 태진이랑 소율이 못 본 지 좀 된 것 같아. 그렇지?"


"그러네. 걔네들도 요즘 바쁜 모양이더라고. 맞다. 태진이는 체대입시학원 다니기로 했다며.

자식, 결국 그 길로 가네. 윤소율은 학원에 처박혀 있느라고 바쁜가?"


서우는 갑자기 친구들이 모두 보고 싶어졌다. 아웃사이더처럼 학교를 다니고 겉돌기만

했던 자신에게 처음 다가와주고 꿈을 지지해 친구들.


"다음 주에 24시 무인라면가게에서 모두 보자고 문자 날려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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