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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401호 VIP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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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Nov 12. 2023

현대 문명과 신경계 발달에는 간극이 존재해요

현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신경계의 명령이 우선

VIP는 병원과 조리원을 거쳐 마침내 집에 당도했어요. VIP의 침대는 거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었어요. 엄마 아빠는 VIP가 엄마 뱃속에서 퐁당퐁당 뛰놀 때 중고로 침대 및 VIP를 위한 가구들을 배치해 두었어요.


그런 걸 보면 현대 아가의 삶은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과거 아가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VIP가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기저귀의 뛰어난 효능감, 엄마 젖량이 모자랄 때를 대비한 분유, 또 분유의 퀄리티, 0에서 6개월, 6개월에서 12개월용으로 세분화된 장난감, 기저귀 갈이대, 9개월까지 이용 가능한 간이침대, 방수 기능이 갖추어진 침대 매트 등을 보면 확실히 과거에 비해 편리해진 것은 맞아요.


현대 아기 산업의 발달과는 달리 VIP의 신경계는 석기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빠는 그런 VIP가 uncivilized 되어 있다고 표현해요 (아빠는 그럴 때만 꼭 영어를 써요). 기저귀 갈이대고 분유고 장난감이고 나발이고, VIP께서는 배고프면 울고, 안아달라고 울고, 졸려도 울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해도 울기 때문이죠.


VIP의 잘못은 아니에요. 인류가 진화해 온 과정이 축적된 신경계 때문이에요.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 그들의 엄마 아빠, 또 그들의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가 유전자를 VIP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었죠. 그리고 이렇게 물려받은 신경계는 불편할 때마다 울라고 명령했기에 VIP가 우는 거죠.


조리원 동기 아가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VIP가 그렇게 자주 우는 편은 아니에요. VIP는 특별한 이슈 사항이 없으면 눈을 빤히 뜨고 있거나 잤어요. 고작 몇 개월의 삶을 살아온 VIP이지만 우는 것 역시 꽤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임을 알고 있는 듯 보였어요. 울면 금세 배고프고, 배가 고프면 또 울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엄마 아빠는 VIP가 울 때마다 모유 혹은 분유를 제공했어요. 초보 엄마 아빠들이 그렇듯이 아가가 울면 배고파서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에요. 어쨌든 배불리 먹은 VIP는 졸렸어요.


오늘은 긴 하루이기도 했어요. 집으로 오는 길에 예방주사도 맞았거든요. 아마 깜짝 놀랐을 텐데 VIP는 울지 않았어요. 이슈 사항 이외에는 울지 않는 VIP의 기질이 한몫 거들었을 거예요. 더더군다나 불주사는 바늘이 아니라 도장 형태로 바뀌었거든요. 현대 산업이 많이 발달했다고 아빠도 생각했어요. 아빠는 자기도 주삿바늘이 아닌 도장 주사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빠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주삿바늘을 무서워하거든요.


VIP는 갓 태어난 다른 아가들처럼 조금 자다가 깰지 몰라요. 그래도 이 정도면 VIP는 훌륭한 아기랍니다. 아직 낯선 아가용 침대에서 쉽게 잠이 들다니. VIP가 깨면 배가 고파 앙앙 울 거예요. 그러면 엄마 아빠가 또 먹을거리를 한가득 주겠죠? 먹게 될 시간을 상상하면서 VIP는 새근새근 잠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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