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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401호 VIP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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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Feb 14. 2024

아빠와 함께 읽는 백설 공주

다소 비판적인 백설 공주 이야기

옛날에 얼굴이 눈처럼 하얗고 예쁜 백설 공주가 있었어요. 백설공주는 새엄마인 왕비와 함께 살았어요. 왕비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마음씨는 아주 고약했지요.

미국서는 '화이트 워싱' 혹은 PC (political correctness)가 논란의 중심에 있어요. 화이트 워싱은 원작에는 다른 인종인데 영화를 만들면서 백인을 기용하는 것을 말하고요. PC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되는 말인데 다른 인종에게 평등을 주창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하려는 것을 말해요. 최근에 디즈니에서는 PC를 내세워 인어공주도 흑인, 백설공주도 흑인을 기용해서 실사영화를 제작하려고 한다네요.


아빠도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어서 그런지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대요. 그런데 인어공주도, 백설공주도 타인종을 기용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나친 해석이라고 했어요. 백설 공주가 눈처럼 하얀 피부라는 뜻인데 흑인이나 황인을 캐스팅하는 게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네요.

왕비에게는 신기한 요술 거울이 있었어요. 왕비는 날마다 거울에게 물었지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왕비님도 예쁘시지만 백설 공주가 제일 예쁘답니다."
화가 난 왕비는 사냥꾼을 불러들였어요.
"당장 공주를 숲 속으로 데려가서 없애 버려라!"

왕비는 날마다 거울에게 물었대요. 어느 날 갑자기 거울은 태도를 바꾸었어요. 분명 어제까지는 왕비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고 했을 텐데 오늘은 거울이 백설 공주가 예쁘다고 한 거지요.


사실 '미'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요. 문화 마다도 다르고 인종 마다도 달라요. 거울이 '미'에 대해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봐서는 거울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아빠는 궁금하대요. 왕비가 거울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봐서는 왕비도 거울과 '미'에 대한 기준이 비슷한 것 같대요. 아빠는 과연 '미'에 대한 기준을 획일화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대요.


아빠가 봤을 때는 왕비는 감정 조절 장애 (mood disorder)뿐만 아니라 인격장애 (personality disorder)가 매우 강하게 의심된다고 해요. 화가 난다고 해서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더더군다나 왕비는 권력이 있는데 굳이 백설 공주를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정 백설 공주가 꼴도 보기 싫으면 아름다움을 잃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어도 되고요. 죽이는 방법 외에 미움을 표현할 길은 많을 텐데 굳이 죽이라고 하는 것 보면 분명 심리적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거래요.

하지만 사냥꾼은 백설 공주를 죽일 수가 없었어요.
"백설 공주님. 어서 도망가세요."
백설 공주는 슬퍼하며 멀리멀리 달아났어요. 그리고 깊은 숲 속에서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발견했지요.

백설 공주가 슬퍼한 것을 보면 그래도 새엄마인 왕비에 대한 애착이 꽤 형성되어 있었나 봐요. 아니면, 백설 공주는 안전한 성에 머물지 못하고 갑자기 밖으로 내쫓겨서 슬픈 것일지도 몰라요. 아니면, 백설 공주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걱정이 되어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불쌍해서 슬픈 것일 수도 있어요.

그곳에는 일곱 명의 착한 난쟁이들이 살고 있었어요. 일곱 난쟁이들은 백설 공주의 이야기를 듣고 친절하게 말했어요.
"불쌍한 백설 공주님. 여기서 지내세요."
백설 공주는 오두막집에서 난쟁이들을 도우며 함께 살기로 했어요.

백설공주는 신세가 딱했지만 그래도 살아갈 궁리를 했어요. 삶이 그렇대요. 어떻게든지 다 살아지더래요. 아빠는 자살충동이 심한 사람들을 만난대요. 그때 아빠가 하는 작업 중에 하나가 자살 이외에도 분명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탐색하는 거라고 해요. 자살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굳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진 않는대요.

며칠이 지나 왕비는 요술 거울에게 물었어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난쟁이들과 살고 있는 백설 공주가 제일 예쁘답니다." 화가 난 왕비는 과일 장수로 꾸미고 백설 공주를 찾아갔아요. "아가씨. 이 사과 하나 먹어 보구려." 백설 공주는 독이 든 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털썩 쓰러지고 말았어요.

거울은 정말 너무 한 것 같아요. 굳이 "난쟁이들과 살고 있는"이라는 단서를 왕비에게 줄 필요는 없잖아요. 거울 스스로가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거울은 적어도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여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기준이라는 것은 그런 능력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우니까요. 이쯤 되면, 거울은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러워요. 혹시 거울이 왕비를 이용해서 백설 공주를 죽이려 한 건 아닐까요? 아빠는 거울이 왕비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정신적 장애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랬어요.


아빠는 왕비가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보통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네요. 상식적으로는 "자신보다 이쁘다"는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거잖아요. 늘 나보다 이쁜 존재가 있기 마련인 거잖아요. 그런데 백설 공주를 죽이고 나면 자신이 가장 이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착각까지 하고 있으니 왕비는 망상(delution)까지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일곱 난쟁이들은 쓰러진 백설 공주를 발견하고 크게 슬퍼했어요.
"흑흑. 백설공주님!"
일곱 난쟁이들은 백설 공주를 유리 관에 눕히고 지켜주었지요. 지나가던 이웃 나라 왕자가 그 모습을 보았어요.
"아름다운 공주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내가 공주님을 모셔가도 되겠소?"
일곱 난쟁이들은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요.

"착한" 사람들이 경계가 없는 경우가 더러 있대요. 백설 공주를 받아들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왕자를 언제 봤다고 백설 공주를 데려가라고 하나요? 더더군다나 백설 공주가 동의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여부를 묻지도 않고 왕자가 부탁을 들어주면 어떻게 하나요?   

난쟁이들이 유리 관을 덜컹 들어 올리자 백설 공주의 목에 걸려 있던 사과가 툭 튀어나왔어요.
"와아! 백설 공주님이 살아나셨다!"
"난쟁이님들. 정말 고마워요."
백설 공주는 왕자와 함께 이웃 나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아빠는 아무리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라도 함부로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했어요. 더더군다나 결혼은 많은 부분을 생각해봐야 한대요.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구원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반드시 결혼 생활 중에 큰 실망을 하게 된대요. 결혼은 구원을 해주는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가 되어야 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reciprocal relationship)가 바람직하대요. 그래서 백설 공주는 왕자를 따라갔어야 했다기보다는 난쟁이들과 함께 살면서 왕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고민해 본 후에 결혼을 결정을 했어야 한대요.


콩콩이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는 백설공주 책을 핥기 시작했어요. 비판적인 시각으로 동화를 읽는 것은 바람직해요. 하지만 콩콩이의 성장 속도를 생각해 가면서 해야 해요. 콩콩이는 아직 물고 빨고 핥는 1살도 되지 않은 영아인걸요.  


참고

(주)키즈스콜레. (2023). 누르면 들리는 명작 동화 사운드북 시리즈. "백설공주 사운드북". (주)키즈스콜레. copyright. 꿈꾸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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