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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401호 VIP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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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Feb 19. 2024

우리 집에 하인들이 산다

자발적 하인 되기

하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어요. VIP께서 기침을 하셔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VIP에게 심려를 끼칠까 봐 하인들은 노심초사했어요. 피곤함을 머금은 채 하인들의 아침일과가 시작되었어요. 새벽에도 VIP가 깨서 다시 주무시게 하느라 하인들은 몹시 피곤했었거든요.


하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요. 상주 하인과 출퇴근 하인.


상주 하인 1은 삼십 대 후반의 여성으로 직장을 휴직하고 집안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그녀는 VIP의 수면, 식사, 빨래, 쇼핑, 딸랑이 닦기 및 각종 놀이 시설 점검 등을 담당하고 있답니다.


다른 상주 하인 2는 VIP의 외부 재원을 담당해요. 그는 사십 대 초반의 남성으로 하인 1이 휴직 중인 바람에 외부재원 공급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 외에 하인 2는 하인 1을 도와 VIP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각종 집안일을 돕는 중이랍니다. 특별히 하인 2는 VIP의 목욕, 손발톱 케어, 해충 제거 및, 운전, 짐꾼의 역할도 겸하고 있어요.


하인 3은 출퇴근을 해요. 그녀는 육십 대 중반의 여성으로 하인 1과 2가 업무에 지쳤을 때 주로 방문해요. 특히 하인 3은 주방 설거지, 요리하기, 식재료 제공을 담당한답니다.


하인 3은 VIP의 사촌 언니의 집도 방문해요. 지난번에 하인 3은 VIP 사촌 언니의 돌 사진 촬영을 다녀왔어요. 거기에서도 하인 3은 드레스 시중, 각종 물건 나르기 등 하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답니다.


하인 1은 여느 때처럼 VIP가 심심하지 않도록 VIP의 엔터테인먼트에 열과 성을 쏟고 있었어요. 설거지를 하고 있던 하인 3이 말했어요.

“이거 VIP의 시다 아니야?”

(하인 3은 옛날 사람이라서 ‘시다’라는 표현을 했을 뿐이에요. 우리말로는 하인인 셈이에요.)


자각이 일어났어요. 고타마 싯달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것과 같았어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는 정적이 흘렀고 고요했을 뿐이죠. 고타마 싯달타의 깨달음이 드라마틱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인들의 깨달음도 다이내믹한 상황의 반전이 아니었답니다. 단지 하인 3의 한 마디로 하인들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에요. 사람의 위치는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오는 것일진대 그들의 역할이 하인의 역할과 같았거든요.


다른 점이 있다면 하인 1,2,3은 누가 시키거나 명령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하인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어요. 똑같이 오줌 치우고 똥 치우고 목욕시키고 먹이고 재우고 엔터테인먼트에 온갖 힘을 쏟지만 자발적이냐 아니냐가 큰 차이를 가져와요.


하인 1,2,3은 세상 어떤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고 있거든요. 하인들은 하루하루 고단하지만 VIP가 한 번씩 웃음을 줄 때마다 행복감을 느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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