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자고 결심한 이유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날이다.
서점에 들러 평소 즐겨 보던 작가의 책을 집어 읽고 있을 때였다. 작가의 이혼 경험을 통해 통찰의 생각들을 딸에게 말해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날 문뜩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제는 사람들의 이혼 경험과 후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이혼가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늘어나는 이혼만큼 이혼가정 자녀의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혼을 결정하는 당사자는 엄마, 아빠 본인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결정한 이혼에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두 분의 이혼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이혼 후 달라지는 삶을 예상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맞닥뜨리게 된 삶이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부모님과는 이혼 후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물론 이혼 전의 이야기는 금기어처럼 꺼내수도 없다. 6살 부모님의 이혼 전의 시간은 우리 집에서 지워진 시간이다.
간간히 함께 살지 않는 엄마를 만나면 "많이 미안하다고, 잘 커줘서 고맙다고" 그 한마디를 들었다. 그런데 그 마저도 그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둘 다 눈물을 흘리느라 더 이상 진전은 어려웠다.
말을 떼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리고 있다. 그런데도 언제나 부모님과 앉아 대화를 해보고 싶다. 아마 엄마와 아빠는 이 것에 대해서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나는 내가 먼저 용기를 내서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는데 막막했다.
정말 부모님 앞에서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꼬맹이가 되어서 다 풀어놓고 싶은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정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말로 꺼내지 못한다면 글이라도 보여드리고 싶다. 그래서 온전히 꼬맹이가 되어 나를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하지만 글을 쓰기까지 망설임도 많았다. 감추고 싶고 쉬쉬하고 싶은 부모님의 이혼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맞는 것인가. 부모님이 살아온 삶을 내가 사람들에게 꺼내는 것이 무례한 것은 아닌가. 불편한 시선을 받는 부모님이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복잡한 과거인 부모님의 삶에는 내 삶도 있었다.
내 인생은 그 연장선과 결코 떨어지지 않는 삶이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던 때, 아니면 나를 임심 하던 때, 아니면 두 분이 결혼하던 때 그 모든 것이 내 삶과 연결이 되어 있다.
나는 이 또한 당당히 내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 아빠만 이혼 후 인생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고. 내 삶도 달라졌다고.
나도 두 분이 이혼하면서 힘들었고 무서웠다고 말이다.
뭔지 모를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떳떳하지 못했던 날들,
갑자기 엉망진창인 방안에 던져버려 진 것 같은 상황들.
차라리 내가 결정한 삶이라면 헤쳐나가면서 성취감이라도 있을 텐데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현실들.
그러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또 다짐하며 살아냈었다.
누구도 내 삶을 흔들 수 없도록 단단해지자고.
그게 부모가 될지라도 내 삶을 우직하게 살아내자고 다짐했었다.
그 무수한 날들을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면서 내 삶을, 나 자신을 풀어내면서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글을 쓴다.
*** 부모님이 이혼하던 6살 때부터로 돌아가 그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슬픔들을, 원망들을, 그리움들을 꺼내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말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나마 풀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