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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09. 2024

이런 소리 들으려고 낳아 기른 거 아니잖아

20240409

오늘 아침, 13일 만에 등교를 하는 아이가 머리카락을 잘라주지 않으면 학교를 안 가겠다는 생떼에 또 화를 내고 말았다. 내일이 휴일이니 오늘은 등교하고 내일 잘라주겠다 했지만 본인이 자르겠다며 가위를 찾는다. 설득을 할 시간도 없고, 깨우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 상태여서 또 협박성 화를 내고 말았다. 이미 휴가로 많이 빠졌는데 오늘도 학교를 안 가면 3학년에 올라가는데 지장이 있다는 거짓말에 아이는 식탁 겸 책상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 발견한 책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엄마 이 책 읽고 있는 거야?"

"아니, 이제 읽기 시작할 거야."

왜 물어보는지 알기에 짜증과 부끄러움이 같이 밀려온다.


살아가면서 줄이는 게 정말 어려운 몇 가지가 있다. 40년간 절대 변하지 않는 첫 번째는 살이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부동의 1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화' 되겠다. 살과 마찬가지로 태생부터 화가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참지 못하고 욱하는 아이였다. 나이가 들고 배움을 통해서 또, 사회화가 이루어지면서 참고 지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물론 기질이 순한 아이가 아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앞가림은 하고 살았다. 그런데 원숭이 같은 아이가 태어나 나를 분간도 못하고 날뛰는 망아지가 되게 만들었다. 기질이 똑같은 둘이서 사람의 탈을 벗고 야생의 소리를 질러대니 여기가 집구석인지 밀림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은 신랑은 아직도 사람의 형태를 잘 유지하며 날뛰는 두 짐승을 말려보지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상처만 생길 뿐이었다. 이러다 신랑까지 탈인간화가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긴다. 어느 날부터 엄마를 닮아서 화를 낸다는 아이를 마주하니 자책감 쓰나미가 몰려온다. 이런 소리 들으려고 아이를 낳아서 기른 게 아니었다. 엄마 닮아 사랑과 웃음이 많은 아이가 되길 바랐는데 아이 역시 나처럼 화를 못 참는 사람으로 성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더 늦기 전에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아이와 나를 위해 각자 상담을 시작했다. 어제, 여행을 다녀와 피곤한 와중에도 아이의 6회 차 상담에 참여했다. 선생님은 놀이 상담을 진행하며 아이에게 치료나 도움이 요구되는 어려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화를 참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도 점점 안정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전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부모가 노력하고 필요한 것들을 어주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상담을 시작할 당시보다 훨씬 나아진 아이가 보인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부분은 아이가 자신의 기질을 인지하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최근에 불편한 상황을 접했고, 이와 관련해서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아까 엄마한테 일어난 일이 너에게 생기면 어떻게 할 거 같아?"
"난 화를 낼 거야."
"그래?"
"응. 나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야. 특히 화를 잘 표현해."
"그렇지. 너는 화도 잘 표현하지만, 많이 웃고 즐거워하고 기쁨도 잘 표현해."
"맞아. 난 마음 표현을 잘해."
"엄마도 그래. 그래서 우리가 상담을 하면서 화를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하는 거야. 같이 노력해 보자."
"응! 나도 화날 때 좀 참으려고 하는 중이야."
"화를 안 낼 수는 없어. 건강하게 화를 표현하면 돼."


이 날 대화를 하며 아이가 내 생각보다 한 단계 또 성장했음을 느꼈다. 반면 나는 여전히 자리에서 아이를 대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말했듯이 건강하게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입으로는 내뱉지만 실천을 못하고 있었다. 백날 여러 책을 읽어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아는 게 아니다. 실천하려면 꾸준히 생각하고 인식해야 한다. 나의 감정이, 불편이 무엇 때문인지 알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내 표현을 한 걸음 뒤에서 붙잡는 연습을 해야겠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나를 거울삼고 나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아이가 있으니 노력해 보자. 


아이는 엄마의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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