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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08. 2024

50원에 행복하던 시절을 기억하나요

20240408

"자기야, 어릴 적에 불량 식품 뭐 먹었어?"
"아폴로, 쫀드기... 맛은 기억이 안 나."
"분홍색 껍질에 쌓여있던 소시지 알아?"
"천하장사는 불량식품 아니잖아?"
"그거 말고 천하장사 2개 합친 길이야."
"그건 모르겠고 테이프는 먹었어. 맛은 없어."
"아! 뭔지 알 거 같아. 난 포장도 없던 딸기맛 쮸쮸바! 50원이었는데."
"50원에 얼린 보리차도 학교 앞에서 사 먹었다."
"진짜? 보리차를?"
"응, 여름에 얼린 거 떠서 팔았어."
"황금 잉어 그거 있잖아 이름 기억 안 나는데 설탕 굳힌 거."
"그것도 뭔가 뽑기나 다트 같은 거 던저서 먹었지."
"난 한 번도 황금 잉어 뽑은 적이 없었는데..."
"맞다, 학교에서 급식우유 받은 거랑 핫도그 바꿔 먹었다."
"진짜? 그거 가게 손해 아닌가?"
"남는 장사지. 핫도그가 50원이었으니."
"좋은 핫도그가 아니었구나. 뽑기는 안 했어?"
"뽑기가 달고나지? 했지."


놀이터 입구 옆, 뽑기 천막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자 한남더힐보다 더 살고 싶은 곳이었다. 마대자루로 얼기설기 엮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한평 남짓한 이곳에서 8살 소녀는 삶의 희로애락과 자본주의의 힘을 몸소 체험했다. 주머니에 50원의 유무에 따라 엉덩이 붙이고 당당히 앉아 있을지, 까치발로 서서 어깨너머로 구경을 할지가 결정된다. 한판 할 돈밖에 없어 뽑기를 할까 달고나빵을 먹을까 매번 고민했지만 결국 뽑기를 선택했다. 꼭 뽑아서 다음 판으로 넘어가겠다는 승부욕보다는 조금 더 엉덩이를 붙이고 싶은 욕심이었다. 섬세하지 못한 손을 가진 덕에 가장 쉬운 모자도 성공하지 못하고, 다음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그래도 선택은 "모자 뽑기 주세요."

아저씨에게 건네받은 뽑기에 집중할라치면 주위에 모여든 아이들의 데굴데굴 시선이 느껴진다. 보기만 한다면 다행인데 꼭 서너 명은 "거기 말고 저기부터 해." "으악!" "어어어어! 망했다" 훈수를 넘어 정신 사나운 추임새를 동반한다. 조용한 곳에서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을, 이 소란통에서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결국 얇은 뽑기에 원치 않는 파열음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실수했는데 내 뒤에 있던 시끄러운 아이가 미워지는 감정은 부스러진 뽑기를 나눠주지 않고 혼자 먹으며 해소했다. 물론 가만히 있었다고 나눠줄 리 만무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진정이 될 거 같았다. 좀 더 오래 하고 싶었는데 결국 한판만에 끝내고 속상한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다음 차례에 떠밀려 뒤에 서서 구경꾼이 된다. 그리고 나 역시 나불나불 참견꾼이 돼서 부스러진 조각 하나 못 얻어먹지만 엄마한테 끌려갈 때까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 행복을 찾아 또다시 천막 문을 열고 제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그곳 아니면 달고나 뽑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검색해서 주문하면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키트가 온다. 심지어 알록달록 짜임이 예쁜 천과 나무로 된 인디언 텐트도 집안에 꾸며놓을 수 있다. 그렇게 집안에 나만의 뽑기 천막을 설치해서 마음껏 모자 뽑기를 하고 달고나빵을 만들어 먹는다는 상상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 느끼던 행복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느끼던 행복은 내 뒤에 있던 아이들의 추임새와 함께이기에 더 커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두 눈 딱 감고 에라 모르겠다 톡 건드렸는데 딱 맞게 잘리던 그 순간, 뒤에서 들리던 환호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와아!!!

50원을 내고 잠시 머물던 곳에서 50억을 내고 지내는 곳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러나 현실은 한남더힐 살고 싶다.

사진출처 (우) 나무위키


#한달매일쓰기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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