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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05. 2024

요리 그까짓 거 대충 좀 해 먹고살면 어때서

20240404

브런치 글을 읽다 보면 요리글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요리고자를 움직이게 만든 맛깔스러운 사진과 친절한 레시피는 수육이었다. 생애 최초로 수육이라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냉장고를 채운 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음식물 쓰레기가 되기 직전 주섬주섬 꺼내본다. 덩달아 저장해 놓았던 레시피들도 찾아본다. 너무 많은 레시피는 오히려 득이 아니고 독이다.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하 물어본 단톡방에서 지인들이 친절하게 필수 재료를 콕콕 집어준다.


혼수로 준비해 온 12년 묵은 르크루제를 꺼내 재료를 넣고, 된장소스를 고기에 바르고, 물도 대충 , 1시간 이상을 푹 삶자 화면으로 보던 그 음식이 내 앞에 있다. 우리 세 식구 든든히 먹고 남은 수육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으니 세상에 이거 내가 한 거 맞나 싶다.

"엄마 이거 팔자! 블로그에 올려봐."

아이 입에서 최고의 찬사가 흘러나온다.


무슨 일을 하던 장단을 하는 성격이 아니고 새로운 일도 우선 지르는 사람인데 왜 요리의 시작은 이렇게 어려울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렇다기엔 주위에 차고 넘치는 게 정보다. 신혼 초, 호기롭게 만든 요리를 맛본 신랑의 솔직한 혹평에 기분은 나빴지만 장애물이 되지는 못한다. 그럼 음식에 취미가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아침 출근하면서부터 점심메뉴를 고민할 만큼 먹는 거에 진심이다.


성격에 안 맞는다. 요리 자체가 아니라 그 수많은 레시피들이 나에게 맞지 않다. 재료마다 정해진 용량이 있고 그 용량에 따라 소스의 비율, 불 조절, 심지어 정해진 시간 동안 숙성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요리 하나를 하는데 자로 잰듯한 정확성은 나에게 너무 어렵다. 굳이 요리 하나를 해 먹으면서까지 정량을 따지는 게 비계량적 인간에만 힘든 일일까 궁금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해야 할 일들을 시간에 맞춰 계획한 만큼 수행을 하고 그에 따라 만족 또는 반성을 하며 살아간다. 최근 트렌드인 루틴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계획적이고 정량적인 삶을 정성껏 살고 있다. 요리 하나만큼은 그냥 대충 그까짓 거 편하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으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맛난 글을 보면 만들고 싶어지는 이중성은 어쩔 것인가.


#한달매일쓰기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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