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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Oct 22. 2021

기다림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미소가 머금어지고 그렇게 든든할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세상을 다 가진 사람 마냥 우쭐해지는 것이다. 너는 이런 친구 있니? 하는 마음으로 뽐내고 싶어지는 유치한 마음.


고등학교 때 나는 또 한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에게 그 만남은 계획된 만남이었겠지만 나는 그날을 우연한 만남으로 기억한다. 5월 녹음이 한창 무르익는 계절이었다. 졸음이 몰려오던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러 도서관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우연히 같은 반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울창한 녹음이 보이는 펜스 안쪽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인 어깨 높이 정도의 검은색 펜스가 빙 둘러쳐져 있는 바깥은 공원이었는데 그 자리는 공원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었고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했다. 나는 종종 그 자리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나랑 취향이 비슷했던 것인지 각자 발걸음이 이끄는 데로 걸었을 뿐인데 우리는 같은 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예감처럼 나를 설레게 하였다.


눈앞으로 커다란 버드나무가 보였다. 나는 버드나무를 좋아했다. 가끔 눈을 감고 버드나무를 상상하면 그 상상 속에는 항상 호숫가 옆 버드나무에 기대어 앉아 풀피리를 불고 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원에서 안쪽으로 더 깊이 걷다 보면 커다란 호수가 나오고 호숫가에는 버드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나는 친구와 그곳 벤치에 종종 앉아 있곤 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 장소를 상상의 장소로 자주 인용했었던 모양이다. 벤치에 앉아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나의 이상형이 버드나무 옆에서 풀피리를 부는 남자아이라고 말하고는 둘이 서로 한참을 깔깔거렸었다. 농담 속에서 남자아이는 나의 이상형으로 둔갑했지만 그 아이는 바로 나를 투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상 속에서 남자아이는 풀피리를 불다가 지치면 고개를 나무에 기대고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하늘로 곧게 자란 굵은 가지 아래로 녹색 커튼처럼 쭉쭉 늘어진 가느다란 줄기들이 가녀린 바람에 흩날리며 아이의 얼굴을 간질였다. 아이는 손을 뻗어 줄기의 감촉을 느끼며 따뜻한 햇살 아래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평화로운 미소였다. 나는 한 폭의 평화로운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굳이 아이가, 굳이 남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강해지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론 아이로 남아 있고 싶었나 보았다.


버드나무 실가지가 5월의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주말 오후여서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새들의 지저귐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한 무리의 소란스럽고 떠들썩한 목소리 뒤로 깔리는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그들의 걷는 속도에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색함 때문인지 5월의 초록빛 평화로움에 도취된 것인지 한 동안 커피만 홀짝이며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네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어." 친구가 침묵 끝에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나는 같은 반에 중학교 동창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친구를 떠올렸다. 나는 무슨 얘기를 얼마만큼 들었다는 건지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고도 무엇을 들었다는 것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아마도 동창으로부터 간략한 사실 하나를 정보처럼 들었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친구는 뜬금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니 자신은 서울로 유학을 온 셈이라고 하면서 친척집에 얹혀사는 힘듦과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에 대해 얘기했다. 같은 반이지만 서로 얼굴만 알뿐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나에게 숨기고 싶을 것 같은 속이야기를 어떻게 술술 꺼내놓을 수 있는지 난 놀라움을 한편에 둔 채로 - 나는 친구의 용기에 감탄했다 -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신이 속내를 비췄으니 자연스러운 단계는 이제 내 속내를 비춰야 하는, 그 친구의 계산된 대화 속에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친구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친구가 너의 얘기를 듣고 싶다며 갑자기 대화의 방향을 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난 잠시 동안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친구의 표정에서 진실로 너의 얘기를 듣고 싶어, 라는 마음을 읽고 나서야 나의 마음은 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눈앞으로 풍선을 한 손에 든 아이가 다른 한 손으로는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빨간 풍선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혹시 날아가버리지는 않을까 위태로워 보였다. 그 순간 위태로웠던 나의 마음이 가느다란 줄 하나에 매달린 가녀린 풍선처럼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 분, 이 분, 삼 분, 사 분, 시간은 침묵 속에 정확한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 초침이 한 칸 한 칸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나는 입이 바싹바싹 타는 것을 느꼈다. 십 분이 흘렀을까. 이십 분이 흘러도 나는 한 마디도 꺼내놓지 못한 채였다. 나는 첫 문장을 내뱉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는데도 어떤 말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너의 얘기를 들려달라고 한 건, 이 친구가 처음이었다. 모두 나의 정보를 들어 알고 있음에도 묻기를 어려워했다. 자칫 얘기를 꺼냈다가 서로 난감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기에 그 얘기를 금기어처럼 취급해 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우리는 아직 어렸고 나도 그러는 편이 오히려 좋았다. 그런데, 이 친구의 요청 앞에서 나는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 하나를 찾아내었다. 나는 이 순간이 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간절히 하고 싶었는데 할 기회가 없어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는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한 마디라도 입을 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는 비장함으로.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내 입에서는 아, 음, 어, 그러니까 같은 의성어들만 튀어나오고 있었다.

시간은 나의 이런 마음도 모른 채 무심하고 정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눈앞에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우리만 세상에서 정지한 듯 보였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은 더 지나 있었다. 친구는 정면을 응시한 채 언제든지 너의 얘기를 듣겠다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 긴 침묵의 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건만 전혀 지루한 내색 없이 내가 바라보자 가만히 웃어주었다. 나는 친구에 대한 강한 신뢰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한 시간 반이 훨씬 지나서야 나는 친구에게 가까스로 말이라는 것을 건넬 수 있었다.

"말이 너무 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아. 이상해."

나는 나의 상태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었음에도 묘사할 단어가 부족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허둥거리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나 너무 말이 하고 싶은데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나 봐.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이상해. 왜 어떤 것도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는지. 너무 오래 참은 탓일 거라 생각은 드는데. 입이 마치 남의 몸에 붙어있는 기관처럼 느껴져.'

"괜찮아.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얘기해도 돼."

나는 속으로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따스한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에 찌릿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그 후로 우린 한참을 더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부담을 줬나 보다. 언제든 말하고 싶을 때 얘기해줘." 친구는 말했다. 여전히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을 뒤로하고 풍경 속에 외따로 정지해 있던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의 나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내가 얼마나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날 혀가 굳은 것처럼 아무것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을 때의 답답한 심경까지. 이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 세상 전부를 잃은 상실에 대한 말 하지 못 함은 나를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이끌었던 것이다. 난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 펑펑 울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었으나 막상 기회가 왔을 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흘리고 싶던 눈물이, 그렇게 가슴속에 쌓여 있던 울분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답답함. 너무 참아버렸던 것일까? 나에게는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두움 속에서 희망이 보이자 그 희망의 끈에 욕심이 났다.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그 친구에게 나의 마음을 꺼내 놓았다. 학교에서 친구는 내가 조금 이상해 보이면 달려와 말을 걸어주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 같이 바깥에 나와 함께 서 있어 주었다. 나에 대한 안테나를 켜 놓은 것인지 늘 웃음을 가장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안 좋은 상황을 곧잘 캐취해 냈고 도서관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면 색색의 사탕을 붙인 쪽지를 내게 슬쩍 건네고 사라지곤 했다. 누런 연습장 귀퉁이를 반듯하게 찢어낸 조각 편지지에는 친구의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염려와 희망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쪽지에 붙은 사탕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고 혀로 굴리며 오랫동안 쪽지의 글귀를 음미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달달함만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에 머물다가 돌아오는 기쁨을 맛보았다. 주말 도서관에서는 건물 입구에 마련된 게시판에서 친구의 얼굴과 성격을 닮은 그 동글동글한 글씨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게시판에 쪽지를 남겨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그 글씨체를 발견하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행복해졌고 그 글씨체를 발견하지 못한 날에는 우울해졌다. 나는 친구를 보는 기쁨으로 하루를 살게 되었다. 나와 친구는 세심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고, 친구와 나 사이에 주고받은 쪽지들도 수북하게 쌓여 갔다.


숨이 쉬어지지 않던 어느 날, 친구는 야간 자율학습을 빼고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마침 아무도 안 계시는 시간이라며 친구는 볶음밥을 푸짐하게 대접했고 나를 영등포 백화점 앞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서는 가끔 무명 가수들이 라이브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처음 본 그 신세계가 경이로웠다. 쌀쌀한 가을 저녁 우리는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씩 품에 안고 계단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무대에서는 여가수가 015B의 '슬픈 인연'을 열창하고 있었다. 나는 노래에 푹 빠져들었고 달달한 사탕을 입안에 넣고 혀로 굴리며 달달한 세계를 만끽했을 때 보다 더 큰 평화로운 세계에 감격하며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행복이었다. 친구가 없었다면, 같은 시각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나의 불안증은 어떻게 되었을까?


친구는 마치 내 삶의 계획표에 예정되어 있던 사람처럼 내가 가장 필요한 순간 나타나 나와 모든 것을 함께해 주었다. 나라면 감히 할 수 있었을까 의문부호를 남기게 되는 일들을 친구는 감히 해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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