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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Oct 22. 2021

씽크홀

나는 보통 남들이 통과하는 청소년기 대신 암흑기를 통과하여 성인이 되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나는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칠흑같이 캄캄한 터널을 떠올린다. 그 시절은 나의 암흑기였다. 나는 내 곁의 친구들 덕분으로 다행히 기나긴 터널을 통과했지만 주체적으로 통과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그럭저럭 살아낸 것이었다. 난 무기력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삶의 파도에 떠밀려 갔으므로 하루하루 삶을 허비하며 살아간 셈이었다. 내 삶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은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깊고 어둡고 커다란 구멍이어서 마치 씽크홀을 연상케 했다. 난 엄마의 죽음 이전까지만 삶을 살다가 죽음을 시점으로 삶을 그저 뛰어넘어 공백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새까만 공백 속에는 애도되지 못한 상실의 아픔과 슬픔, 기댈 곳 없는 외로움, 인간의 삶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들, 죽음에 대한 그림자들, 그리고 갑자기 어른인 척 커버려야 했던 두려움과 바람에 맞선 공포와 불안한 감정들이 잡동사니처럼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한 번도 정리된 적 없는 감정의 실타래들은 내가 진짜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동안 내 삶을 지배하는 지배자가 되어 조금만 틈이 생기면 나의 주인 노릇을 하였고 심지어 그 커다란 구멍 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려 하였다.


그것은 마치 운동선수에게 오곤 하는 슬럼프처럼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와 나를 어두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조금 일어선 것 같으면 다시 무너지고 좀 더 일어서면 무너지는 상태가 반복되는 삶에 나는 점점 지쳐갔고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이라고 수없이 많은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습관과 같았다. 한번 길이 잘못 들면 고치기 어려운 습관처럼 마음도 습관처럼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렇게 되었다. 행복한 마음이 들 때 곧 들이닥치고야 말 불행을 예감하며 불안해했고 불행이 왔을 때 당연하게 여겼다. 어떤 상담사는 그것을 '우울증'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 내렸지만 나는 그것을 '현재 진행형'이라 정의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살아가야만 했고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늪에 빠진 사람 같았다. 불행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내 발을 물고 저 깊은 구멍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내가 마음대로 방치해버리고 도피했던 삶이 결국 내게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엉망으로 그저 살아낸 삶. 그 삶은 내게 요구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만을 향하던 삶. 내가 주인으로 살지 못한 삶. 그 대가가 바로 습관이었다. 마음의 습관들이 빚쟁이들처럼 나를 따라와 나를 무너지게 했고 주저앉게 만들었다. 근묵자흑이라고, 검은 마음은 내가 깨끗한 마음이 되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밝은 세상에 이끌리는 나를 향해 말했다. 너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고.


나는 한 번도 투쟁한 적이 없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 적이 없었다. 바람과의 동거로 한 번도 수용받지 못한 나에게 투쟁은 소리 없는 외침 같았다. 사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가끔 사람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이 생기면 나는 방어적으로 회피하고 싶어졌다. 상대를 이길 자신도 없었고 내 의견을 관철시킬 자신도 없었다. 투쟁하지 못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우울한 감정을 느꼈다. 어떻게 그렇게 순응만 하면서 살아왔을까 하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조소.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나 자신과의 투쟁에 온 에너지를 쓰느라 다른 곳에 투쟁할 에너지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낮아진 나의 자존감을 높이면서 자꾸 빠지곤 하는 구멍에서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니 내 삶은 그 자체가 투쟁이었다고 해야 할까? 살아내는 것. 나의 투쟁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강해져야 했고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지만, 나는 강한 척하며 살아야 했고 그럭저럭 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연기를 잘 해낸 사람이었다. 난 더욱더 내 속의 실타래들을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꽁꽁 감추었다. 나는 누군가의 눈에 내 실타래를 들킬까 봐 염려할 때가 많았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은 행동이나 표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특히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잘 찾아내곤 했는데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끌렸다. 나는 스스로가 힘든 만큼 그 사람들의 힘듦이 보였고 내 코가 석자이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받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는 나를 꽁꽁 싸매고 살았지만 늘 항상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고 누군가의 따뜻함이 절실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그들을 찾아내는 나의 안테나가 너무나도 정확하게 작동할 때마다 나의 실타래도 누군가에 의해 감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려했던 것이다.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의 어두움이 내 몸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싫었다. 그것은 이중적인 마음이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 거부하고 싶은 마음. 나는 멋진 척 내 삶을 잘 살아내고 싶었다. 내 속의 아이는 늘 연약하여 세상에 당당히 서는 것도 힘겨워했지만 나는 그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고 빠르게 흘러갔다. 난 이미 성인이 되었고 진짜 어른인 척 살아야 했다. 언제까지 내 속의 아이만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엄마는 해님처럼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강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슈퍼우먼 같았다. 일과 집안일을 모두 완벽히 해내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늘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우리 세 남매는 슈퍼우먼의 보호 아래 철부지처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로 있다가 갑자기 슈퍼우먼이 사라지고 나자 우왕좌왕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도 버거워했다. 우리는 서로 상실의 아픔을 얘기하지 못했다. 그 얘기를 하면 서로 뾰족한 가시에 찔릴까 봐 도망치기에 바빴던 것인지,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어 그런 얘기를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등을 내어주지 못했다. 아마도 커다란 일을 당하면 꺼내놓는 것 자체가 너무 아파서 꺼내놓을 수 조차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때 스스로를 감당하기도 버거워 없는 일처럼 회피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게 가장 합리적인 추측일 뿐이다.


나의 씽크홀은 여전히 상흔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은 꽤나 중요해 보인다. 있었던 상처는 아물지만 없는 것이 되지는 못한다. 완전한 치유란 없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있던가? 난 그저 엎질러진 물 대신 다른 물을 채울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채워진 다른 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나의 투쟁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조금은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슬픔은 충분히 슬퍼해야 작아진다. 겪어야 할 일들은 충분히 겪어내야 지나간다.

있었던 일은 여전히 내 앞에 없었던 일이 되지 못한다. 여전히 씽크홀은 내게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또 어느 순간 씽크홀에 빠져 허덕일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겪어내는 방법을 안다. 겪어내면 지나간다는 것을 안다. 아는 것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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