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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Oct 22. 2021

물어봐도 돼

최근에 한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 영화 제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안타깝다 - 인상적인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혼자 길을 떠돌던 십 대 여자 아이에게 한 여자 어른이 자상하게 이런 말을 해준다.

"모르는 건 물어봐도 된단다. 그동안 주변에 물어볼 어른이 없었구나."

대략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아, 나도 그랬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가슴 한편에 아릿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고 나면 각자 인상적인 부분과 생각과 느낌이 다르듯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꽂히는 장면이 다르고 대사가 다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난 그 장면 하나로 영화 전체를 보지 않고도 그 십 대 여자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영화 속 어른은 같은 말을 나에게도 들려준 셈이었다. 나는 영화 속 십 대 아이에게는 동질감을 느끼며 위안을 얻었고 그 어른을 통해 막혀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모르는 걸 물어보지 않는 아이였다. 자존심이 세고 고집도 셌던 아이였던 거 같다. 웬만한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일은 늘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았다. 모든 게 좀 어설펐다고나 할까. 사실, 어릴 때는 어설프게 지나가도 될만한 일들이 많다. 클수록 조언도 좀 필요하고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도 필요해지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것과 동시에 어른이 되어야 했다. 안 그래도 자존심이 센 아이였던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이 더 강화되었는지 나는 모르는 것을 물어볼 줄 모르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인터넷도 잘 발달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 요즘은 인터넷에 좋은 정보들과 경험들이 많이 공유되어 있다 -  오롯이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약해 보이는 게 싫었고 약한 모습이 드러나는 게 싫었다. 난 상처가 깊어질수록 더 나를 꽁꽁 싸매는 아이가 되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정말 전공을 살려 일을 시작했을 때에 만났던 직장 사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 그분은 대리 직함을 달고 있었다. 그분은 크지 않은 키에 하얀 얼굴이 금세 붉어지곤 하는 온화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굉장히 꼼꼼하고 친화력도 좋아 회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리드할 줄 아는 분이었다. 그 시절 나는 전공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등하고 있던 차였다. 왜냐하면 일의 특성상 남자들이 가득한 곳일 수밖에 없는 직장에서 내향적인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고 97년 IMF사태로 이렇다 할 경력도 쌓지 못하여 걱정만 앞서던 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그 인연으로 그분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경력을 한 줄 한 줄 채워 나갈 수 있었다. 성공적인 적응을 한 것이었다.


그는 마치 처음 글을 배우는 학생에게 그러하듯 나에게 회사 일을 가르쳐 주었다. 정말 나를 백지상태로 보고 자신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전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았다. 이 업계에서 이미 자리를 잘 잡은 사람이었다면 이거 왜 이러세요?라는 자세로 나왔겠지만 나는 그가 정말 고마웠다. 물어보는 걸 잘 못하는 나에게 미리 선수 처서 섬세하게 가르쳐줬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가르쳐주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스펀지처럼 흡수해 나갔고 웬만한 일은 혼자서도 척척 처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혼자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그런 나를 보고 온 것인지 바람처럼 나타난 그는 뭐가 잘 안되냐고 묻더니 옆자리의 바퀴 의자를 끌고 와 앉아서는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문제의 실마리는 금세 잡혔고 몇 시간 동안 고민하던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혼자 해결하려는 자세도 좋은데……. 모를 땐 물어봐요. 물어보면 금방 해결될 수 있어요. 물어보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나는 그 순간 삶이 정지한 듯 느껴졌지만 그의 안온한 표정과 미소는 정지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 물어봐도 되는구나. 물어보면 혼날까 봐, 아니면 무시당할까 봐 늘 아는 척 노력으로 극복하려 했었는데……. 물어보면 이렇게 친절하게 도와주는 어른도 있구나.'

'물어보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나는 별거 아닌 이치를 그때서야 알았던 거 같다. 물어보면 알려주는 어른.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는 어른. 나는 그런 어른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단숨에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그 말은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을 테고 사수로서 조언을 해주었던 것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와 일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재밌었고 보람되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난 또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끙끙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핑계로 다른 일을 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하곤 하는 최고의 리즈 시절을 만들 수 있었다. 나의 리즈 시절은 한창 일의 재미에 푹 빠져 야근을 하고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던 그 시절이었다. 내 힘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주변에 맘껏 베풀 수 있었던 마음이 풍족한 시기였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던 시기에서 가진 것이 생긴 시기로의 탈바꿈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말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소중한 말이 될 수 있고 고마운 말이 될 수 있다. 난 그 후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용기를 조금은 갖게 되었다. 경험이 거듭될수록 물어본다는 건 별 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왜 나는 물어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러던 중 그 영화의 장면을 보게 되었고 나도 그렇게 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 내 주변에 마음을 열고 대화할 어른이 한 명도 없었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확신처럼 생각했지만 물론 가능성이었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기 좋아하는 나는 늘 어떤 일이든 명확하게 원인과 결과가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모든 일이 무 자르듯 원인과 결과의 한 쌍으로 귀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중요한 것은 현상이고 과정이고 깨달음인 것 같다. 그 원인을 아무리 생각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현상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할 텐데 말이다. 원인의 검증 또한 너무나 주관적일 뿐이어서 객관적 자료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난 물어보는 것을 못 하는 사람에서 물어볼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내 인생이 한 꺼풀 가면을 벗은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고 나는 그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한다. 나의 최고의 리즈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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