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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Oct 22. 2021

따뜻한 나의 집

결혼과 함께 나에게는 다시 '따뜻한 집'이 생겼다. 결혼 전의 나의 집은 벽이 무너져 내리고 문도 없는 집이어서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이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한 마디로 온기가 없는 집이었다. 집은 단순히 건물의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은 가족의 울타리였다. 그래서 집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여행지에 있다가 돌아갈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나는 행복감에 젖는다. 하루 종일 바깥일을 보다가 집에 돌아갈 때 미소가 머금어진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돌아갈 집이 있고 돌아갈 집이 따뜻한 곳이라면 어떤 전쟁터에서라도 싸울 수 있는 힘이 솟구칠 것 같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싸울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결혼 전, 나는 집에 가는 것이 싫어서 항상 바깥을 배회하다가 마지못해 집에 들어가고는 했다. 집이 가까워지는 시점부터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리기 일쑤였다.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불안했다. 그랬으니 집 안에 있을 때는 오죽했겠는가. 


결혼 후 내 생활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집에 가는 길이 하나도 불안하지 않게 된 것이다. 벽은 튼튼했고 여닫을 수 있는 문은 언제든지 나의 소유였다. 나는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따뜻함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 나는 처음 갖게 된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자유의지를 맘껏 발산했고 처음으로 두근거리지 않는 심장을 갖게 되었다. 어떤 날은 심장이 너무나 평온하게 뛰어서 꿈은 아닐까 의심해 보기도 했다. 내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미처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내가 따뜻한 집을 갖게 되다니!


나는 엄마의 마지막 따뜻했던 온기가 떠올랐다. 학교에 갔다 온 어느 날, 엄마는 부엌에서 인절미를 프라이팬에 굽고 계셨다. 엄마가 아프고 난 뒤 서서 요리하는 모습은 그날이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위해 따뜻한 인절미를 접시 한 가득 구워 주었다. 나는 그 인절미의 고소함과 따뜻함이 너무 좋아서 "엄마, 다 나은 거야?"라는 말을 연발하며 입안 가득 인절미를 먹었다. 그날은 다시 올 수 없는 날이 되었지만 나는 그날의 온기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언제든 펼쳐 볼 수 있는 따뜻함. 냉동실에 넣어둔 딱딱해진 인절미를 볼 때면 고소한 콩가루를 먹을 때면 나는 그날의 온기가 온몸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낀다. 기억은 단순히 시각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의 감각으로 기억되는 것이었다. 사람의 몸은 얼마나 신비로운지. 그러니 추억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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