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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Oct 22. 2021

7월의 눈부신 햇살

그녀와는 삼 년 만의 만남이었다. 각자 결혼을 한 뒤로부터 만남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방치된 채 늘 떠밀려 잊히곤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두 번이나 같은 반을 했던 친구였다. 그녀는 늘 긍정적이고 당당했다.

삼 년 전에 그녀의 근무지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로비에 그녀의 얼굴이 나타났을 때 내가 그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깊은 보조개가 발휘하는 마력 같은 웃음 때문이었다. 왼쪽 볼에 깊이 팬 보조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던 그녀에게 늘 따라다니곤 하는 장신구 같은 것이었다(귀걸이를 하면 평소의 얼굴보다 두 배는 예뻐 보이는 효과를 발휘하듯이). 웃음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었다 – 웃지 않는 그녀를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대형서점의 문과 문 사이 통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약속 시간에 늦어 서둘러 들어오다 문 안으로 들어가는 나의 앞모습을, 옆모습을, 그리고 뒷모습을 맥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듯 무언가 느낌이 이상해서 고개를 홱 돌렸을 때 그녀가 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웃으며 다가가 그녀의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마력 같은 웃음을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그녀의 팔을 통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내 살과 당연히 맞닿아야 할 그녀의 살. 내 살에 부딪힌 것은 그녀의 앙상한 뼈였다. 순간 너무 놀라 팔을 빼며 그녀의 팔을 주무르듯 쓰다듬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진 거야? 응? 왜 이래?”

“응. 좀…… 빠졌지?”

“좀이 아니잖아. 이건……”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한 사이라는 장점이 하필 이런 순간엔 안 좋은 영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계속 쏟아져 나오려 하는 말들을 간신히 붙잡아 주고 있었다.


우리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높다란 통 유리창으로 늦은 아침의 햇살이 한가득 쏟아져 내리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의식적으로 햇살 근처로 가야 한다는 이끌림이 앞섰던 것 같다. 두 잔의 커피 사이에는 평온한 듯 피어오르는 가녀린 하얀 연기와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이 공존하고 있었고 내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올 말들에 당황하지 않고 미리 대비하기 위한 온갖 사전 시나리오가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나 많이 좋아졌어. 나 아프고 난 이후로 지금이 제일 좋아진 상태야. 그래서 연락했어.”

제일 좋아졌다는데 내 눈에는 왜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나빠졌었기에 지금이 좋아진 상태일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만한 핑계로 그녀에게 무관심했던 지난 삼 년이 내게 깊은 후회의 급 물살이 되어 허우적거리게 했다. 무엇이 한 인간을 이토록 황폐하게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그녀의 눈에서 세상의 모든 따스한 빛을 차단하도록 만들었을까. 웃음과 웃음 사이. 그녀를 보지 못한 사이에 웃음은 급 물살에 떠밀려 갔던 것이다.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웃음이, 지금은 없었다 –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잃은 후에야 잃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을 도리는 늘 없는 것만 같다. 이제는 웃음과 웃음 없음 사이로 정정되어야 했다. 예상이 빗나가고 조우한 낯선 현실. 웃음으로 각인되었던 그녀를 그리워하기보다는 어색한 지금의 그녀를 서둘러 받아들이는 것이 옳았다. 나는 웃음과 웃음 없음 사이의 시간들에 대한 그녀의 기록들을 낱낱이 들어주어야 했다.


그녀는 무감각하고 무의미한 세상 속에 서 있었다. 그 세상은 느끼려 애를 써도 느낄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는,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띄엄띄엄 그녀는 지난 일 년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밤 심한 복통이 처음으로 찾아왔고 대학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했으나 병명을 밝힐 수 없었던 것. 잦은 입원과 퇴원, 계속 찔러대는 바늘과의 싸움에서 그녀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과정 속을 살아가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녀 앞에는 무한의 시간만이. 통증과 싸우며 불안해해야만 하는 기약 없는 시간들이 펼쳐졌고 차라리 시한부 통보를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고 했다. 언제까지 치료하면 나을 거라는 기한이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희망이었다. 과정 속에 침몰된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 지금 당면한 문제보다 커 보이는 것이 있던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은 무자비하게 그녀를 짓밟았다. 식욕을 앗아갔고 정신을 빼앗아갔다. 무기력한 삶. 이번에 바닥을 쳤으니 더 이상 바닥은 없겠지 하면 더 깊은 바닥을 만나고 더 깊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자신을 그녀는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통증은 자신만이 느끼는 통증이었다. 외부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통증이었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담당 의사는 복통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 같다는 무책임해 보이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는 그녀의 통증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한 - 외부 세계에서 통증을 인정해준 - 첫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놀라움. 두려움.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 이야기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나의 친구가. 긍정적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던 내 친구가. 가능하다면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냐며 분위기를 바꿔 버리고 싶었다. 그녀에게 혈액 투석기라도 달아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모두 빼내고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두 채워 넣고 싶었다. 나는 온갖 긍정적인 이야기를 그녀에게 쏟아 놓았다.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 한참 쏟아내던 이야기 끝에 “넌 참 긍정적이네.”라고 그녀가 얘기했을 때, 살짝 그녀의 입가에 냉소가 흘렀을 때에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다. 하지만 멈춰서는 안 되었다. 멈추는 순간 나는 어떠한 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끝없이 불러올 침묵이 두려워,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야기를 하여 그녀에게 내가 가진 에너지를 티끌만큼이라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난 촌각을 다투는 레이스에 출전한 선수처럼 최선을 다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고 최선을 다해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끌어 모아 그녀 앞에 늘어놓았다. 우연이 대어를 낚는 행운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가 정신과 진료 중 찾게 된 지워졌던 기억의 조각 – 과거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은 내 과거를 연상시켰는데, 순간 생의 처음으로 과거의 지우고 싶었던 불행 – 내게는 너무나 가혹했던 형벌 같던 기억 - 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현상과 마주했다. 천사가 내게 이런 깨달음을 속삭이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이롭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잠깐 동안 멍청하게 멈춰 있었다. 오래전이었다. 삼십 년도 더 지난 시간들. 내가 그녀보다 힘든 시간들을 좀 더 일찍 겪었을 뿐 그녀도 과거에 힘든 시간들을 겪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일은 없는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었지만 현재 진행형인 통증으로 살아 돌아왔다.

나는 마음으로 그녀를 이해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내가 아픔들을 겪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아마 힘들었겠다는 한 마디를 건네고 멍청히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 멍청한 침묵에 불편을 느끼는 그녀를 알면서도 구원하지 못할 나 자신을 알고 지금은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안위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불편한 시간들에서 좀 벗어나 빨리 자유의 몸이 되기를 이기적으로 바랬을지도 모른다. 절대 나빠서가 아니라, 그녀를 걱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대처를 몰라서 이해되지 않는 소설을 읽고 났을 때 긴 되새김질이 필요하듯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녀를 위해 목소리를 촉촉하게 하고 눈에 살짝 눈물방울을 맺히게 하는 어떠한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이 상황을 감사했다. 목소리를 꾸며 연민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감사했다. 오히려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자꾸만 가라앉으려는 그녀를 내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진실은 힘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동안 다 하지 못했던 나만의 과거를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을 발가벗겨 내세움으로써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는 동질감과 나에게는 모든 것을 얘기해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을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그녀는 편안하게 나를 대했고 잠시 그녀의 깊은 심연의 골짜기에서 산책 나온 기분으로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직은 따스한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 7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녀와 셀카를 찍고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1인분. 그것은 보통 체중의 어른이면 능히 먹을 수 있는 만큼을 정량화한 분량일 것이다. 둘 사이에는 2인분의 음식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1인분의 반도, 반에 반도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일이 이렇게 죄스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먹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맛있게 먹는 내가 게걸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대성 때문일 것이겠지만 나까지 먹지 않으면 그녀는 그 조차도 먹지 못할 터였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맛있게도 또는 맛이 있지 않게도 먹어야 했다. 생을 즐겁게 향유하는 일이 누군가의 앞에서는 가혹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그녀와 헤어졌다. 그날 저녁 그녀에게 낮에 찍었던 사진을 콜라주해서 보냈고 며칠 후 그녀는 메시지를 남겼다.

내가 너랑 찍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더라. 그래서 예전 사진들을 찾아봤어. 마지막으로 웃으며 찍은 게 언제였는지. 그런데 삼 년 전이었더라. 내가 아픈 건 일 년 전이었는데……. 오래전부터 난 웃고 있지 않았더라. 너 만나서 삼 년 만에 다시 웃은 거 같아. 너무 신기했어. 고마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 말은 그동안 잘 살았다고 내게 수여한 표창장 같았다. 그녀와의 만남은 운명처럼 내 생의 한가운데로 들어왔고 나는 비로소 나의 생을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살아가는 의무를 다 한 자에게 생은 선물을 주었다. 처음으로 나는 내게 왔었던 불행을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지 않았다면 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작은 아픔에도 질겁하여 쉽게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불행을 겪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난 얼마든지 나의 불행을 팔아 행복을 건져줄 것이었다. 내가 온실 속 화초처럼 불행 한번 겪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에 그녀를 만났다면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그녀를 만나 내가 횡설수설 쏟아낸 말들의 저변에 있던 나의 불행은 적어도 그녀에게 어떤 말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고 연민하지도 않았다. 바스러질 것 같은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7월은 눈부신 햇살을 쏟아내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난 처음으로 내 불행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눈부신 햇살이 마법의 가루처럼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인도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생의 선물을 받은 건 나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내게 밥을 배달해주더니 이제는 불행을 감사하는 법까지 가르쳐주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말했다. 삶의 목적을 잃었다고. 나는 말했다. 나도 삶의 목적을 잃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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