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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Oct 22. 2021

마음은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남들이 보통 떠올리곤 하는 이미지들에 앞서 한 명의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친구는 나의 결혼에서 엄마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혼을 앞두고 신랑은 해외출장이 잦아 결혼 준비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부탁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어떻게든 혼자의 힘으로 결혼 준비를 차근차근 해내고 싶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결혼 준비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신랑과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기에 모든 예약과 준비들을 알아서 해야 했다. 나는 맘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들을 수집했고 어렵게 친구에게 함께 다녀주지 않겠냐는 부탁을 했다. 친구는 흔쾌히 같이 가겠다고 해주었고 나는 그녀와 함께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예물을 맞추는 곳은 물론이고 가구점도 여러 곳을 함께 다녔다. 그리고 웨딩 리허설 촬영 때는 사진을 찍어주러 흔쾌히 달려와 주었다.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사진을 공부했던 친구는 촬영 쉬는 틈틈이 전문가보다 더 열심히 내가 이쁘게 나오는 각도를 찾아 셔터를 눌러 주었다. 요즘도 가끔 웨딩 사진을 꺼내보고 할 때면 나는 전문가가 찍어준 사진들보다 친구가 찍어준 사진에 더 애착을 느낀다. 쉬는 시간에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사진이라 더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 사진의 작가가 바로 내 친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사진을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의 애정이 보인다고 했던가? 사진은 찰나를 담는 것이기에 찍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실물보다 더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실물보다는 더 나은 모습으로 사진이 찍히길 원할 것이다. 요즘은 사진 어플이 많이 있어 셀카를 찍으며 더 만족해하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찍히는 사람의 모습을 고스란히 뷰 파인더(요즘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고개를 틀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좋은 사진이 찍힐 때까지 찍어주는 인내의 정도가 바로 애정도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가끔 여행지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을 때도 한 번만 셔터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각도에서 여러 번 셔터를 눌러주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한 번만 찍어주어도 고마운 일인데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잠깐 만난 사람에게서도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친구는 내가 예쁘게 나왔다고 판단되면 내게 바로 달려와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예쁘게 나온 것 마냥 함께 기뻐해 주었다.

결혼식에서도 친구는 나의 들러리 겸 사진작가가 되어 주었다. 그녀가 남겨준 사진은 수백 장이 되어 나의 역사적인 날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계시지 않았기에 결혼 준비를 오롯이 혼자서 해야 했던 나에게 친구는 든든한 조력자였고 엄마 대신이었다. 친구란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내게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었던 것이다.


마음은 마음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결혼식 이후 나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신혼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은 물론이고 다가오는 생일에 맞춰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되는 액수의 상품권을 친구에게 선물했다. 나는 선물을 주면서도 친구에게 받은 고마움을 결코 이것으로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생일카드에는 이렇게 썼던 거 같다.

'너에 대한 고마움을 무엇으로도 갚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조그마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었으면 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우린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겼고 친구는 내가 준 선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운했다기보다는 그런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 나의 한 편의 마음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도움을 받으면 갚아서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이 그 당시의 나에게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친구는 여전히 그때의 일을 고마워하는 내게 시간이 돼서 도움을 준 것이 무슨 고마워할 일이냐며 대수롭지도 않아했다. 나는 그녀의 순수한 배포에 고마워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군가는 남의 아이를 제 아이처럼 챙기고 보살펴 준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함께 놀이터에 가주고 집에 데려와 간식을 챙겨준다. 물론, 덕분에 자신의 아이도 친구와 행복한 놀이시간을 갖는 일이니 당연하다고 보아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딱 자신의 아이를 위한 만큼만을 하는 엄마들도 많다. 내가 주목하게 되는 엄마들은 그 이상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순수한 애정을 보게 되면 나는 그 고마움을 받고 있는 아이와 엄마가 부러워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저 마음은 어떤 물질로도 갚아질 수 없는 마음이라고.


나는 여전히 친구에게 어떤 것도 갚지 못했다. 나는 그저 평생 그녀에게 고마워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기꺼이 내 시간을 내어주면서 끝까지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고마움은 굉장히 커서 어떤 물질로도 절대 갚을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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