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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구름 Oct 22. 2023

그 작고 네모난 전자 기계가 뭐라고.

  핸드폰 전성시대

 요즘 시대에 핸드폰은 무엇일까. 부모가 잘만 활용하면 어린 자식의 떼를 잘 달래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핑크퐁 영상 하나 틀어주면 바로 울음을 그치고 영상에 집중한다. 식당에 가면 얌전히 밥 먹으라는 조건으로 많은 부모들이 유튜브를 틀어주기도 한다. 나는 딸이 어렸을 때는 그 용이한 녀석을 의식적으로 아이와 멀리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외출을 했을 때 아이의 심사가 뒤틀려 울음떼가 발동이 되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가라앉지 않을 때. 아이의 화나 짜증은 흡사 전쟁 상황에 비견할 수 있는데, 데프콘 2정도의 강도가 될 때는 핸드폰 화면을 끈 채로 동요나 동화를 틀어주면 잠잠해졌다. 문제는 데프콘 1이 되었을 때다. 영상이 아니면 절대 안 되는 단계. 그럴 때는 나와 남편도 달래다 지쳐 결국은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어주었다.    

 아이가 어린이가 되어가면서 핸드폰의 용도는 다양해졌다. 내 핸드폰을 빌려서 스노우앱의 'Funny' 탭을 눌러 수염이 달린 재미있는 사진들을 찍고, 동영상을 찍다가 유튜버처럼 마지막에 "영상이 재미있으셨나요? 마음에 드셨으면 댓글 부탁드려요."라며 (아무도 보지 않지만) 마무리 멘트도 넣는다. 또 애니팡 같은 게임을 즐기기도 하며, 온갖 이모티콘을 버무린 '❣️엄마 아빠 사랑해요‘와 같은 문장을 자판으로 쳐서 보여주기도 한다. 바야흐로 핸드폰에 지대한 관심이 생긴 것이다.



 내가 핸드폰에 관심을 가진 건 10대 때였다. 중학생 무렵부터 친구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2002 한일 월드컵과 맞물려 아이들의 핸드폰 보급률은 빠른 폭으로 치솟았다. 싸이언, 스카이, 애니콜, 모토로라 등등 핸드폰 산업은 최정점에 달했고 잘 나간다는 톱스타들이 최신형 핸드폰을 선전했다. 실제로 우리 반에서 거의 2/3은 핸드폰을 들고 다녔고, 가지지 못 한 나머지 1/3에 내가 속해있었다.

 엄마는 단호했다.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 핸드폰은 사치라는 것. 엄격하고 무서웠던 엄마의 기세에 사달라는 말 한 마디 꺼내지 못 했다. 학급별 비상연락망 조사표에 적힌 011, 016, 017으로 시작하던 친구들의 핸드폰 번호와 내 이름 옆에 02로 적힌 집 전화번호, 벨소리가 16화음이네 32화음이네 하며 알아듣지 못 할 용어들. 달랑거리는 예쁘고 귀여운 고리들을 달고 핸드폰의 소유권 주장을 확실히 하는 친구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다지는 비밀스러운 친목,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버린 나만 모르는 대화 주제들. 등등등. 친구들 관계에서 간접적 친목을 다질 접점이 내겐 없었다. 그들 사이로 어떻게든 끼어보고자 했지만 비핸드폰인은 결코 융화될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기에 더 잔인한 소외감이었다.

 친한 단짝한테 전화를 걸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당시 유행했던 가요 컬러링을 들을 때, 만약 내가 핸드폰을 가지게 되면 어떤 노래를 컬러링으로 할 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유행 가요로 할까 있어보이는 피아노 연주곡으로 할까. 단짝은 "너도 핸드폰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자주 말하곤 했는데 나는 친구들에게 끝까지 핸드폰을 가지고 싶다는 말을 하고 다니지 않았다. 말해봤자 생기지도 않을 뿐더러 그 말을 입 밖에 꺼낸다면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쉬는 시간마다 핸드폰을 켜는 친구들을 외면하면서도 그 작고 네모난 전자기계에 대한 동경은 떨쳐낼 수 없었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면서 처음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다. 저가형 하얀색 폴더폰이었다. 비싸고 잘 나가는 핸드폰은 아니었지만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벨소리는 기본으로 하고, 무료로 풀린 몇 개의 샘플 목록 중에 하나로 컬러링을 골랐던 것 같다. 생각보다 벨소리와 컬러링은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 핸드폰 고리를 사러 갔을 때이다. 대학 동기들과 공강 시간에 학교 앞 액세서리 가게를 들렀다. 반짝이는 은색 네잎클로버가 눈에 띄었다. 달랑달랑, 내 핸드폰에 매달려 은색 네잎클로버는 빛을 냈다. '이게 내 핸드폰이다'라는 표식을 매달았을 때 밀려든 충족감과 만족감에 핸드폰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비밀 친목의 장에 나도 참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화 한 시간, 문자 백 통으로 제한된 가장 싼 요금제였지만 동아리 선배들과 연락을 했고, 미팅을 나갔을 때 당당하게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밤마다 엄마 몰래 남자 친구와 나누는 문자 메시지는 별 내용 없이도 설렜다. 얼마 안 되는 문자 메시지를 다 쓰면 컴퓨터로 네이트온 무료 문자를 보내거나 미니홈피 방명록에 비밀글을 남겨 연락을 이어가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스펙 하나 따지지 않고 마냥 그 작은 기계를 좋아했던 시기였다.

 


 딸이 초등학생이 되기까지 5개월이 남았다. "핸드폰은 최대한 늦게 사 줘!" 선배 부모들의 충고를 들어와서 좋은 점보다는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딸의 열 살 생일이 되면 핸드폰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나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엄마 나는 왜 열살이 되어야 핸드폰을 사주겠다고 한거야? 우리 반 시은이는 여덟 살 되면 엄마가 사준다고 했다는데."라고 묻는 아이에게 딱히 정확한 답을 해주지 못 했다. 시은이 말고도 유치원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은 벌써 핸드폰을 들고 다닌단다. 아이의 교우 관계를 위해서는 사주는게 맞을 것이다. 요즘은 틱톡이다, 유튜브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관계망은 SNS로  연결되고 있다.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배워왔다며 틱톡에서 유행하는 춤을 추고 있는 아이를 볼 때면 기분이 묘하다.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것도 아니고, 좋든 싫든 핸드폰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언젠간 아이도 내 예상보다 빠른 시일 안에 본인 소유의 핸드폰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작고 네모난 전자 기계가 뭐라고,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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