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키즈카페 다니고, 참 세상 좋아졌다. 우리 땐 더우나 추우나 놀이터나 다녔지." 엄마들끼리 자주 하는 농이다. 우리 아이들은 더우나 추우나 키즈 카페를 간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겨울에는 히터가 틀어져 있어 편하게 놀 수 있다. 돈을 내고 공간과 시간을 빌리는 것이다. 내 아이도 키즈 카페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다양한 놀잇감 뿐 아니라 짚라인, 어린이용 클라이밍을 즐긴다. 특히 크게 펼쳐진 스탬플린에서 뛰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가 발 끝까지 힘을 주어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렸을 적 방방 아저씨가 생각난다. 친구들과 해맑게 방방을 타던, 지금 내 딸과 비슷한 어린 나도 떠오른다. 그래, 우리 땐 그 방방이 지금 시대로 따지자면 키즈 카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야외 키즈 카페.
보통의 90년대 초등학교 저학년은 항상 놀 시간이 많았다. 학교 수업이 12시 30분쯤 마치기 때문이다. 그 후 선택지는 다양하다. 집에 바로 가거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거나,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거나, 일주일에 한 번 오시는 방방 아저씨한테 뛰어가거나.
방방 아저씨는 근처 공터에 자리를 폈다. 아저씨의 트럭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질세라 동시에 달렸다. 먼지 바람 일으키며 도착한 간이 방방 센터에는 반듯한 사각형 모양, 동그란 모양의 방방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방 아저씨에게 주머니 속 200원부터 500원까지 다양하게 내고 그에 따른 시간을 교환했다. 시간 내에 뽕을 뽑아야 한다는 걸 모두 알기라도 하는지 방방에 입성한 아이들은 들어간 순간부터 뛰어다녔다. 200원은 십분짜리, 500원은 삼십분짜리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방방을 뛰면서 몇 가지 꼭 하는 놀이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손을 잡고 뛰면 큰 무게가 한 번에 떨어져서 그런지 혼자 뛰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갔는데, 꼭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 헤딩을 하고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한 명이 누워있으면 그 주위를 둘러싸고 동시에 점프를 해서 해물 파전 뒤집 듯 몸을 붕 뜨게 만들기도 하고, 여러 명이 둥글게 앉아있고 한 사람이 열을 다해 그 주변을 돌며 점프를 하면 후라이팬에 튀겨지는 팝콘 알맹이처럼 통통 튀며 깔깔댔다. 뛰기만 하는 것에 싫증이 났다면 술래잡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 됐다. 한 걸음 내딛는 보폭이 땅에서 걷는 걸음보다 커지며 술래도, 술래를 피해 달리는 아이들도 적은 힘을 들이고 큰 효과를 누리며 놀이가 더욱 즐거워졌다.
신나게 점프 하는 아이들 사이로 묘기를 부리는 아이도 간혹 있었다. 점프해서 앞구르기, 뒤구르기, 발차기 같은 화려한 쇼를 시작하면 나 같은 평범한 방방러들은 뜀을 멈추고 방방 모서리 쯤으로 가 얌전히 앉았다. 눈 앞에서 '태양의 서커스' 못지 않은 공연을 직관하는 것이다. 500원 남짓한 돈을 내고 이 모든 체험과 관람을 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놀라운 가성비 아닌가.
방방이들 앞에 캠핑 의자를 펴고 앉아 있는 아저씨가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 각각의 시간을 잴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아저씨가 시간 다 됐다고 부르면 아쉬움 뚝뚝 묻은, 새까만 먼지 묻은 발걸음을 옮겼다. 한 아이가 나가면 기다리던 다음 아이가 들어오고 방방은 멈출 새 없이 아이들을 하늘 높이 올려주었다. 그렇게 뛰고 내려오면 땅을 딛는 느낌이 이상했다. 무릎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비틀거리며, 내 다리를 잡아끄는 크나큰 중력의 힘을 느끼게 된다. 그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서 땅에 몇 번 발을 구르며 다리가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잠시 땅바닥에 앉아 쉬는 아이들도 있었다. 찌릿찌릿한 종아리 근육통에 아, 오늘도 잘 놀았다 싶은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친구들과 다리를 두드리며 너도 그러냐며 동일한 감상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땀에 젖은 채로 공터 흙바람을 뒤집어 쓴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아저씨의 트럭을 보는 순간 휘슬 소리 들은 경주마처럼 다같이 뛰어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 닿도록 점프하리라는 걸, 일주일 내내 방방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말이다.
키즈카페 스탬폴린 코너에서 "엄마 나 잘 뛰지?" 라며 제 몸의 무게를 실어 방방 뛰는 아이에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된 지금, 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는 방방에 오랜만에 올라가 뛰어보고 싶은 날이다. 딸의 손을 잡고 하늘 높이 헤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