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그를 소개해 준 선배에게 연락해야 했다. 소개팅하고 두 달이 넘어가는데, 우리, 두 사람이 만남을 이어가기로 했다는, 그리고 현재 잘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그리고 식사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마운 일이니까.
소개팅 이후 만남을 이어가면서, 선배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을 때는, 두 사람이 잘 맞을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와 나는 맞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특히 소개팅이라는 다소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만남의 형식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릴 때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달랐다. 나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는 소위 K-장녀로서, 매우 모범적인 학생 시절을 보내고, 벼락치기에 능한 능력을 타고나, 소위 명문대학에 속하는 대학엘 들어갔다. 그는 어릴 때 태어나 보니, 강남의 부유한 집에서 고학력의 부모님의 막내아들이 되어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허약하여, 힘들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 또한 막바지 있는 힘을 다 쏟아내어 서울에 있는 대학엘 들어갔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이후 직장생활까지, 사회와 조직,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며, ‘참 사회생활 잘하는 여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렇게 30년에 가까운 직장생활을 마치고 인생 중반에 프리랜서 선언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세상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고, 절에 들어가 수행하는 스님 생활을 했다. 그는 전기도 없는 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2002년 월드컵도 몰랐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소식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나는 그때 모두 시청 앞 광장에 있었다.
나는 나의 사회 커리어에 맞는 남자를 만나, 즉 사회와 세상에 관한 경험과 시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과 만나서, 함께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만날 거로 생각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만날 수도 없을 것이며, 내가 사랑에도 빠질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때 사회적 활동뿐 아니라 경제적 활동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선배와 선배 와이프는 이렇게 다른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막 여름 더위가 시작될 즈음, 봄의 외투를 벗어 팔등에 올리고 다닐 때로 기억된다.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레스토랑에서 선배 부부를 만났다.
“허허허.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어. 잘 됐다.”
“어머 두 사람이 이제 보니 너무 어울린다. 하하하”
선배 부부는 우리 두 사람을 신기한 듯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바라보았다. 소개를 해준 두 사람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바로 질문엘 들어갔다.
“아니, 근데…. 두 분은 우리가 어떤 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궁금해요.”
“맞아. 나도 그래. 우리가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와 나는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함께 물어보았다.
“어? 글쎄. 우리 왜 그랬지?”
선배가 그의 사촌 동생인 선배 와이프에게 물었다.
“아니 그냥 당신이 어느 날 언니 얘길 했잖아. 그런데 이름까지 얘기하고 깜짝 놀랐지. 어머, 우리 사촌 언니하고 이름이 성까지 다 똑같네. 그러면서 학교랑 학과도 같고. 어? 혹시 이거 엄청난 인연 아닐지 하면서…. 이거 엄청난 인연이다. 소개해 주자…. 그런 거잖아”
그 선배의 와이프 이야기는, 나와 그의 누나가 이름과 성이 똑같고, 더군다나 학교와 학과까지 똑같은 것을 신기해하면서, ‘우주의 기운이 내려온 것’처럼 뭔가 강한 인연이라고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합리적이고 적확한 사실보다, 논리적으로는 안 맞지만 강하게 끌리는 사실들이, 어떤 일을 도모하는데, 신속하게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나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두 사람은 그것을 시시콜콜 얘기하기보다는 우리의 만남을 어떤 강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만남이 이어질 거라는 기대가 많진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 둘, 그와 나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들이고, 상대방을 좀 배려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외모로 봤을 때 아직은 서로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경제적 문제는 특히 남자의 경제적 문제는 그의 부유한 부모님의 도움을 조금은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대답이 내가 기대한 것엔 미치지 못했지만, 우리의 만남이 강한 인연에서 비롯되었다는 멋진 프레임엔 한 발짝 더 다가간 것 같아, 나름 흥미로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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