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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Nov 22. 2024

‘나’를 알아주는 남자 - 女

아내의 章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내 나이는 꽉 찬 49세였다.      

앞자리에 숫자 4가 붙는 나이는 젊지 않은 나이인데도 젊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이이다. 싱글이라면 더더욱 그러한데, 실제 내가 겪고 있는 ‘40대’라는 나이와 사회가 생각하는 ‘40대’라는 나이는 많이 달랐다. 특히 ‘남자’, ‘연애’, ‘사랑’ 같은 이런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 괴리가 많았는데 그래서 그럴까? 이런 영역에 발을 담그게 되면 당혹스럽고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좋은 경험보다는, 대부분 겪지 않아도 될, 혹은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     

 

남편을 만나기 4년 정도 전의 이야기이다. 당시 내가 책임자로 있던 팀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가지고 한 정부기관에서 하는 행사엘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첫 직장에서 모시던 부장님을 뵙게 되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가까워진 그 부장님은 매우 친절하고, 젠틀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무척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고, 부장님도 매우 반색하면서, 나의 신상에 관해 물어오셨다.    

  

“진짜 오랜만이네. OOO씨, 그런데 결혼은 했어?”

“아니요. 아직 안 했어요.”

“그래? 왜 아직 안 했어?”

“그렇게 됐어요. 흐흐.”     

“부장님은 퇴직하셨죠? 하나도 안 변하신 것 같아요. 여기 기관에 계셔요?”

“무슨... 많이 늙었지.”     


부장님은 한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고 했고, 그 행사를 주최한 기관에서 비상임이사로 있다고 했다.     


“사무실로 한번 놀러 와요. 밥 한번 먹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대외 네트워크 능력이 꽤 중요해진다. 당시 나도 그런 네트워크를 많이 만드는 중이었다. 마침 그 정부기관도 방송 관계자들과 많은 교류를 하는 곳이어서,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될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명함을 서로 교환하고, 부장님의 연락처를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그리고 다음 날, 만나는 약속을 잡았고, 아마도 1주일 뒤쯤으로 기억하는데, 비로소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정부기관이 있는 근처, 뷰가 아주 멋진 최고층에 있는 식당에서 이탈리안 음식으로 맛있게 식사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지나온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식사가 끝날 무렵, 부장님의 본격적인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아니, OOO씨는 왜 결혼을 안 했어? 아직 젊어 보이고, 여전히 미모가 좋은데.”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혹시 독신주의자는 아니지?”

“네, 그럼요. 저는 좋은 사람 생기면 결혼할 겁니다. 아직 늦진 않았겠죠? 흐흐”

“그럼... ”     

“근데, OOO씨는 나이가 지금 몇이지?”

“네, 올해가 마흔다섯이 되네요.”

“아구, 그새 그렇게 나이를 먹었구먼. 참 세월이 빠르다.” 


나는 조금 마음이 불편해져다.    


‘요즘 저런 질문 잘 안 하는데....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굳이 나이를 콕 집어서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것들에 대한 인식 또한 많이 변해간다. 그리고 요즘 시대가 원하고 지향하는 방향으로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요구하고 있다. 나이, 성별, 경제적 차이, 학벌, 직업군 등에 따라, 대화할 때 서로 예민한 부분도 있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과년한 노처녀에게 ‘나이’를 물어보신 부장님은 그런 면에서 요즘 시대가 바라는 대화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오랜 시절 가져온 습관과 그 시절의 생각과 문화, 대화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존중할 수 있었다. 어른들이 아랫사람을 만났을 때 종종 하던 대화 중의 하나가 ‘나이’를 묻기도 했었으니까. 첫 직장의 상사를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과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내 니즈, 그리고 좋은 분이었다는 기억 등등으로 불편한 마음이 오래 가진 않았다.  


“000씨, 내가 누구 좀 소개할까?”

“아~ 네. 감사합니다. 좋은 분이 계신가요?”     

다소 멋쩍어하면서 나도 대화를 이어갔다.     

“음. 내 친구인데 말이야. ”

“................ ”     


‘잉? 친구라고?’

‘아니, 부장님이 나이가 몇이시지? 헉. 65세 정도 되시지 않았나?’    


나는 슬슬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대에서 00과 교수로 은퇴했어. 얼마 전에. 아주 멋진 사람이야. 경제적으로도 실력으로도 훌륭한 친구지.”

“지금 유럽으로 여행 갔는데, 어때? 내가 한 번 연결해 볼까?”     

‘뭐라, 말해야 하나?’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했다.


식사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부장님께서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완전히 깨뜨리는 ‘한방의 멘트’를 날리셨다.     


“000씨, 지금 가임기(可妊期)지?”

“네?”

“아직 가임기(可妊期)겠지?”

“%$#%&@*%&$···.”     


그 순간에,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가임기냐는 질문에 화를 내며 그 부장님에게 한 방 날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아니면, 호호호 웃으며 그분은 초혼이냐고 물으면서, 여러모로 능력이 되는 사람이냐며 걸쭉한 유머로 되받아칠까? 농담도 참 찐하시다고 하면서?


점점 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로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은,  

   

“부장님. 제가 너무 아깝지 않으세요?”  

   

아마도 소개해 주려는 분은 꽤 오래전에 사별이나 이혼을 한 분이었을 것이고, 자녀도 장성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재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성공한 여느 남자들처럼 조금은 젊은 부인을 새로 얻어서 늦둥이도 낳고, 오순도순 사는 것이 노후를 훌륭하게 보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부장님은 친구로서, 나쁜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 아니 오히려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남자라고 생각해서, 소개를 해 주고 싶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나이 차이도 너무 크고, 더군다나 임신이 가능한 여자를 찾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의 여러 가지 성품과 성향, 가치관, 하고자 하는 일, 풍모 등등이 아니라 결혼상대자로 ‘가임여성’을 찾는 사람을 소개해 준다는 것이다. 난 지금까지 만들어온 내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동안 살아온 내 삶 뿐 아니라 오히려 나의 미래까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깝지 않냐고 불쑥 나온 말도 지금 생각해 보면 원초적인 멘트였다. 그러나 나는 솔직하게 말한 것 같다.     

 

‘40대 여성 싱글’이 ‘결혼’과 ‘연애’의 분야에서는, 2, 30대에 겪는 것과는 다르게 많이 왜곡되거나 자존심의 상처까지 감수해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40대 이후의 여성들은 ‘소개팅’과 ‘선’이 두렵고 무섭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연애, 사랑, 결혼을 생각하는 일도 비슷한 이유로 꺼려진다.     

 

그러나 기억은 잊혀지는 법! 

나는 그로부터 4년 뒤, 한 선배가 제안한 소개팅을 수락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을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되면서, 중요한 갈림길에 섰을 때, 가끔 이 해프닝(?)이 생각났었다. 제일 중요한 건, ‘나’를 ‘나’답게 보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연애도 사랑도 결혼도 할 수 있다. 그때 그 일이 이런 면에서 나에게 매우 좋은(ㅎㅎ) 영향을 끼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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