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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Nov 15. 2024

서로 알아야 하는 것 - 男

남편의 章

그녀와 강릉에 가기 전, 서울 안산에서 만나 산책하던 중일 때였다.     


“난 8평짜리 임대주택에 살아요.”

“네?”

“임대주택이요.”

“?”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사촌 동생네한테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처음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의구심을 가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내가 이어서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기로 한 것 같았다.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요. 아버지는 저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예요.”

“...”     


그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애매한지 가만히 있었고, 나중에 하남에 한번 놀러 오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난 그녀에게 나의 경제적 상황을 제대로 보여 주고 싶었다. 거짓 없이 그리고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만약 나의 상황을 보고 나서, 그녀가 나와의 만남을 다시 생각하기를 바랐다. 이제 서로 좋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거짓으로 시작하기 싫었고, 만약 나의 상황을 보고 나와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아직은 서로 큰 상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에서 처음 내려왔을 때, 부모님은 반가워하셨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어머니는 나에 대해서 안타까운 감정을 가지고 계셨지만, 아버지는 분노의 감정이 있었다. 갑자기 세상을 버리고 출가한 아들이, 산속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나이 지긋한 중년이 되어 갑자기 나타났으니 반갑기도 했겠지만, 나의 과거에 대한 괘씸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분노로 바뀌었을 거였다. 그리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 늙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는 나에게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도움을 주셨고, 나 또한 더 이상의 도움을 요청할 면목이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산속에서의 삶에 익숙해서인지 가난한 삶이 힘들지 않았고, 특별히 세상에서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빈한하지만 부족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렇게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며 용돈을 벌며 만족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당시에는 아직 하남까지 전철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내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도 별로 없었고, 배차 시간도 멀었다. 서울 시내를 나가는 방법은 광역버스를 타고 잠실에서 내려서 움직이는 방법과 차를 가지고 서울 본가에 주차한 뒤 시내로 나가는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처음 하남에 올 때는 자신의 차를 가지고 왔다. 그녀의 차는 SM5였는데, 1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오래된 초기 모델의 차량이었다. 하지만 잘 관리된 차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꼼꼼하신 그녀의 아버지가 차량을 관리해 주고 계셨다. 그럼에도 참 그녀다운 자동차였다. 초기의 SM5는 튼튼하고 고장이 잘 안 나기로 유명했다. 차 모양도 꽤 잘 만들어진 모양새였지만,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모습이었다.  

   

일단 주차장에 그녀의 차를 주차하고, 내 차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짬뽕전문점이었는데 제법 맛이 있는 집이었다. 하남 구시가지에는 제법 맛집이 있었지만, 신시가지인 미사지역은 맛집이 별로 없었다. 프랜차이즈 식당만 들어와서인지 내 입에는 별로 맞질 않았다.     

 

도착하니 앞에 2~3팀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고, 금세 우리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 집 짬뽕의 특징은 불맛이 도는 고기짬뽕이라는 점이다. 난 요즘의 해물짬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 어린 시절, 돼지고기와 오징어 혹은 주꾸미를 채 썰어 넣은, 채소가 들어있는 짬뽕을 좋아하는데, 이 집에서는 그 맛이 났다.   

   

“짬뽕 맛있네. 근데 탕수육은 별로야.”   

  

그녀답게 에누리 없는 심사평이었다.   

   

“흣. 맞아. 다른 음식은 별로야. 짜장도 그저 그렇고. 이러기도 쉽지 않아. 짬뽕만 맛있기는···.”    

 

우리는 이런 점에서 쿵짝이 잘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둘 다 MBTI의 중간에 NT가 들어가 있었다. MBTI가 맞고 안 맞고는 둘째치고, 서로 그렇게 냉정하게 말을 해도 상처 입지 않고 그냥 사실로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식사하고 우리집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 무렵 드립커피에 취미를 붙이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는 아직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여 주려는 내 의도를 알지 못할 게 분명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삶을 살다 보니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리 내 상황을 설명한다고 해도, 직접 보기 전에는 어떻게 느낄지 모른다.      


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그녀를 보니, 순간 당황한 듯한 표정이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졌지만, 혈색은 약간 하얘졌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녀가 생각한 아파트와는 꽤 달랐음이 분명했다.    

  

“집이 작아. 그래도 나한텐 적당해.”

“아~. 그러네.”

     

집은 베란다가 있는 원룸 형식이었고, 살림이라야 집에 맞도록 낮에는 소파로 쓰고 밤에는 침대로 쓸 수 있는 이케아 데이베드, 그리고 식탁 겸 책상과 의자, 그리고 옷장 하나. 그리고 아이들 개인과외에 사용하는 접이식 의자, 그리고 TV 한 대가 전부였다. 오피스텔에 살다가 이 집으로 이사왔을 땐, 꽤 넓게 느껴졌는데, 살림을 넣고 보니 꽤 꽉 차는 작은 집이었다.     


“여기 이 의자에 앉으면 돼.”

“살림이 단출하네.”

“혼자 사는 남자 살림이 그렇지 뭐.”    

 

그녀에게 의자에 앉도록 하고, 한 켠에서 커피를 내렸다. 커피도 이마트에서 사는 커피였지만, 손으로 원두를 갈고, 정성껏 내린 커피라서 먹을 만했다. 아마도 이렇게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녀는 여러 가지 생각을 들었을 것이다. 커피를 마신 후,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책했다. 아직 둘이 좁은 집의 작은 공간에 계속 있기에는 뻘쭘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은 아직 안정되진 않았지만, 신도시라서 정비도 잘 되어 있고, 산책로도 쓸만해서 그런지 그녀의 혈색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산책하고 돌아와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주차장에서 배웅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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