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결혼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 특히 싱글의 여자 후배들은 내 결혼 생활에 은근히 관심을 갖는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재미있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를 묻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나는 그냥 으레 묻는 질문이려니 생각되어, 상대방이 듣기에 적당할 정도의 답변들을 했었다.
“친구 같은 점이 참 좋지.”
“욕심을 많이 부릴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크게 싸울 일이 없어”
정말 친한 후배들이나 친구들한테는(아직 싱글인 친구들이 꽤 있다.ㅎ) 내가 경험해서 얻은 찐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내가 찾은 답은, 결혼 생활에 ‘유머’가 참 좋은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즉, ‘유머’가 있는 사람과 결혼하면 좋다는 것인데, 물론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유머’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어서, 서로 코드가 맞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서로가 이해하고 공감이 가능해야 그 ‘유머’는 100%를 넘어 200%까지 ‘빵’ 터지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편은, 매우 ‘유머’ 있는 사람이다. 남편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어쩌면 동의를 안 할 수도 있는데, 내 앞에서 웃기는 행동을 하면서 재미를 유발하는 그 ‘유머’가 나에게는 잘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장난과 개그, 위트가 있는 언행들은 거의 나에게 한정적이라고 봐야 한다. 남 앞에서는 절대 하지 못하는, 아니 하지 않는 행동들과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매일 일상이 반복되는 결혼 생활은 지루하거나 재미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때로는 심각한 일도 발생한다. 그런 가족관계, 부부관계에서, 남편이 그 틈 사이로 유머로 위트 있게 나의 생각을 멈추게 할 때, 아니 멈출 뿐 아니라 깔깔깔 웃으며 그 위기와 시간을 보낼 때, 이 남자와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유머나 위트나 웃기는 행동, 개그... 결혼하기에 참 좋은 남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강릉 여행 후에 다시 구도심 나들이를 했다.
우리는 한층 더 가까워진 듯 여기저기를 다니며, 서로를 탐색했다.
“제가 가방 들어드릴까요?
”아, 네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면서도, 그가 머쓱해 할까봐, 나는 가방을 그에게 건넸다.
지금의 남편에게 그 때 왜 가방을 들어주고 싶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보나 마나 예상되는 답변이 있다.
“그냥...”
여튼 인사동엘 가면 꼭 가는 몇 안되는 식당이 있는데, 그 중 한 곳을 찾았다. 된장찌개를 넣고 비벼 먹는 비빔밥이 맛있는 집이다. 그날 식당은 약간 늦은 오후였는데 등산 이후 허기진 배를 막걸리로 채우고자 하는 중년의 남녀들로 가득했다. 걸쭉한 그들의 대화와, 약간 거친 몸짓과 손짓들로 식당은 좀 시끄러운 편이었다.
“우리, 말 놓는 게 어때요?”
그는 어찌 보면 중년의 남자와는 다른 면이 참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이런 부분이다. 보통 두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다가 친해지면 자연스레 조금씩 조금씩 말을 놓으면서 그게 익숙함으로 넘어가면서 굳어지는데, 그는 먼저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확인을 했다. 참 예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약간의 거리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 네 그러죠”
연애하면서 진행되는 ‘통과의례’도 있다. 인생의 ‘통과의례’를 빗대어 말하기엔 다소 사소한 면은 있지만, 연애에서의 ‘통과의례’들은 언제 어느 시점이 적기일까 생각해 본다. 말은 언제 놓으며, 손은 언제 처음 잡을까? 그리고 그 다음 것들은? 답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흘러가는 대로’이지 않을까? 어디에도 그 정답이 적혀 있지 않다.
사실 이제 이쯤이면 말도 놓고 더욱 친밀하게 우리 사이가 진행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놓자고 하는 걸 보니, 그도 우리 사이를 좀 진행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말을 놓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자 더욱 친밀감이 느껴졌고, 마치 만난 지 꽤 오래된 사이의 느낌마저 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길 위의 사람들도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늘 헤어지는 장소인 버스 정류장으로 함께 가는 길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의 팔에 기대고 싶었을까? 조금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내 팔을 끼고 살짝 기대보았다.
그러자, 그가 내 팔을 그의 손으로 내리더니 손을 마주 잡았다. 생각보다 그는 내 행동에 빨리 반응을 했고, 그것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매우 배려있는 행동으로 말이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좋겠다. 내 손이 거의 새 거라서...”
“....? ”
나는 무슨 뜻인지 당황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수줍어하면서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그렇잖아. 내가 꽤 오랜 시간, 산에 있었으니, 이렇게 손을 사용해 본 적이 없지.”
맞았다. 산에서 오랜 시간 있었으니, 여자와 손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나에게 ‘새 거라서 좋겠다’라는 위트있는 표현을 한 그가 참 싱그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새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겉으로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계속 웃으며 걸어갔다. 팔짱을 끼려는 내 행동이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었으나 그는 재치 있는 말로 우리의 ‘통과의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다음 주, 하남에서 만나는 게 어때?.”
그는 경기도 하남시에서 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긴 했지만 더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에라, 가 보자’
어쨌든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고, 서로를 알아가기로 했고, 그렇다면 서로를 더욱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도 궁금했다.
‘집엘 들어가자고 할까?’
숨길 수 없는 기대감으로,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