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임대주택’은 국가 또는 지자체, 민간사업자가 건축하여 일정한 임대료를 받고 거주자에게 빌려주는 주택이다. 과거에는 주로 저소득층이 이용하였으나, 다양한 임대주택 공급으로 요즘은 중산층들도 많이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여튼 ‘임대주택’은 ‘집’이 없는 사람들이 주거하는 형태이고, 그는 그 ‘임대주택’에 살고 있었다.
즉, 그는 그의 소유의 ‘집’이 없었다.
‘왜 자기 집을 보여 주려고 하는 걸까?’
‘더군다나 임대주택이라면 더 안 보여 주고 싶을 것 같은데...’
‘아,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임대주택이 아닌 걸까?’
‘아니면, 평수가 좀 넓은 집일까?’
운전을 하며 그의 집으로 가는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궁금증이 마구 일어났다. 내부순환로를 지나 북부간선도로로 진로를 바꾸며, 그의 ‘임대주택’이 있는 ‘미사신도시’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던 중, 1년 전쯤에 부동산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많았던 후배와 이곳에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 다리를 건너 ‘미사신도시’를 탐색한 적이 있었다.
“언니, 돈 좀 있으면 여기에 투자해.”
“왜? 여기가 좀 뜨니?”
“뜨는 정도가 아니야. 여기 좀 봐. 도시 그림이 아주 좋지? 흐흐흐”
그녀는 예전의 방송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이다. 방송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 특유의 오지랖과 성실성으로 부동산 투자에 일가견이 생겨, 주변 선후배들에게 실제 발품으로 경험한 그의 정보를 나눠주고 있었다.
“언니!, 언니 집, 이제 팔고 새로운 걸로 갈아타야 해.”
15년 전에 분양받은 집의 대출금을 거의 다 갚았기 때문에, 나는 서울의 33평 아파트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배는 분양받은 지 15년이 넘은 아파트는 더 이상 가격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제 새 아파트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회사에 대한 불확실성, 미래에 대한 불투명, 노후에 대한 불안감들이 마구 생겨났을 때, 후배에게 내가 연락을 해 만나자고 했었다. 아마 그런 불안감 때문에 슬쩍 부동산에 관한 조언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미사신도시’에 대한 관심과 계획은 이후에 진행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난 그 신도시 ‘임대주택’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부동산 투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집중 받았던 미사신도시 아파트 주변, 한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함께 그의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우리는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1층에서 강아지를 동반한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그는 상냥하게 그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고,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듯 보였고, 나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멋쩍어하며 낯선 할머니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층에 함께 내리게 되었다. 내리고 보니 2개의 엘리베이터를 공유하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네. 안녕히 가세요.”
“잘 가요~~”
그는 할머니와 그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반대편으로 돌아서면서 나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 저 할머니 집은 저쪽 끝 집인데, 남편분이랑 노인 두 분이 살아. 동사무소 갈 일 등을 좀 도와드렸더니 한 번씩 반찬을 해다 주셔. 혼자 살고 있으니 안돼 보이나 봐. 그런데 아주 맛있진 않지만 그리운 맛이야. 그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해”
“나는 맨 안쪽에 있는 집이야. 조용해서 좋아. 나름 사생활도 보장돼. 보통 끝까진 안 오니까.”
그는 안쪽 끝 집 문을 열고 나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8평의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50세가 넘은 남자! 나는 거의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8평의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50세 남자와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염두에 둔 만남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가진 게 별로 없는 남자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자본주의와 절연을 하고 사는 남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상’을 꿈꾸는 젊은이가 아름답고 순수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젊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과 열정과 기운을 가지고 있다. 반면, 중년의 꼭대기에 올라선 우리 나이는 이제 무언가를 건설할 수 있는 시기의 나이는 아니다.
현관문을 열고 집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그의 정면을 응시하지 못했다.
“이건 이케아에서 산 침대, 펼치면 2인짜리가 되고.”
“이건 옷장.”
“이 책상도 이케아에서 산 거야.”
매우 단출한 가구와 살림살이였다. 잘 정돈된, 군더더기가 없는 집 내부였다. 혼자 사는 남자가 이 정도의 청결함과 깔끔함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실망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고급스럽고 화려하진 않더라도, 그래도 취향과 향기, 디자인이 느껴지는 그런 가구와 집의 모습이면 내가 덜 실망했을까? 아니면 너무 작은 평수에 실망한 것일까? 주차장부터 엘리베이터,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할머니, 또 할머니와의 대화... 등등, 이런 것이 나로 하여금 ‘현타’를 갖게 했다. 그야말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게다가...
“여기가 나에게 제일 중요한 공간이야. 내가 모시고 있는 분.”
그가 베란다 한켠에 있는 커튼을 치니, 부처님 조각상이 나타났다. 그 아래에는 불이 꺼진 향과 초도 놓여 있었다. 작게 만들어 놓은 제단이었다.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 새벽마다 예불을 작게 드리고 있어.”
‘덜커덩!’
너무 놀랐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잠깐. 화장실이 어디야?”
그가 안내한 화장실에 들어섰다.
문을 닫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나니, 화장실 내부 세면대 위 거울에서 내 얼굴이 보였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니?’
내 마음속 작은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