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의 연애는, 특히 우리처럼 나이 오십을 넘긴 처녀 총각의 연애는 흔하지 않다. 우리 나이쯤 되면 처녀 총각의 연애는 거의 없고, 홀아비나 과부의 연애가 주를 이룬다. 보통 청소년 이상의 자녀를 둔 이혼남과 이혼녀들의 연애가 많은 것이다.
이상한 점은, 지금 아내의 주변엔 골드미스들이 많다는 점이다. 한 번도 결혼해 보지 않은 채 처녀인 채로 나이가 많은 친구들이 아내 주변에 꽤 있다. 반면에 내 주위는 물론,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혼자서 총각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오십이 넘은 나이의 처녀 총각의 연애는 굉장히 드문 것 같다.
또, 드문 만큼 주변 사람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녀와 내 주위의 지인들은 대부분 그들의 자녀가 장성해서 연애를 할 나이였다. 그들이 보기에, 나이 오십의 처녀 총각 커플이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해주는 묘한 풋풋함이 있던 것이다.
어느덧 우리의 연애는 4~5개월이 흘러가고 있었고, 주변의 지인들도 하나둘씩 우리의 연애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자기 동생을 한 번 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녀는 세자매중 첫째였고, 바로 밑에 한 살 터울의 여동생과 여섯 살 차이 나는 둘째 여동생이 있었다. 큰동생은 일찍 결혼해서, 대학생인 딸과 고등학교 3학년인 딸, 이렇게 두 명의 자녀가 있었고, 작은동생은 초등생 딸과 미취학 딸 이렇게 두 명의 자녀가 있었다. 작은 동생은 경기도에 살고 있었고, 큰동생은 부모와 살고 있는 그녀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살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같이 살고 있는 그녀보다 더 부모님을 챙기는 효녀였다.
“여동생이 당신을 궁금해 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자리 만들어 볼까?”
“응응, 그래. 근데 뭐가 궁금하대?”
“별건 아니고, 내가 남자 얘기를 한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가 봐.”
“알았어. 날짜 잡아봐.”
그렇게 훗날 큰 처제가 되는 그녀의 여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약속 장소는 연희동에 있는 쌀국숫집이었고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식당에 그녀와 도착해서 보니, 우리가 먼저 와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여동생은 자신의 고3 딸과 함께 나왔다. 바쁜 고3의 엄마였다. 밥을 먹이고 학원에 보내야 하는데, 약속과 겹쳐서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애를 학원에 보내야 해서 같이 나왔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오늘 밥은 제가 살게요. 죄송해서요.”
“괜찮아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사요.”
그녀의 여동생은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다. 그녀가 가족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전형적인 부지런하면서 아끼며 사는 주부의 모습이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녀의 여동생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전 사실 굉장히 걱정했어요. 언니가 남자 얘기를 한 적이 거의 없거든요. 게다가 저한테는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얼마나 됐는지 물어봤더니 한 달 정도 만났대요.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순진한 우리 언니가 이상한 제비족에게 걸렸나 하고요.”
“흐흐, 재밌네요. 그래서요?”
그렇게 얘기를 진행하면서 옆을 보니, 그녀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갑자기 동생이 이런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그녀 여동생의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언니한테 신중해지라고 말했죠. 언니가 남자 경험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요. 그랬더니 언니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형부의 프로필을 얘기하더라고요. 산에서 스님을 했었다고요. 아~! 형부라고 해도 되죠?”
잠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여동생의 ‘형부’라는 단어에 두 번째의 당황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언 듯 그녀의 표정에 기대와 초조, 그리고 당황과 안심 등의 여러 마음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그리곤 곧 자신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네, 그럼요.”
“아무튼 그래서 더 수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스님을 했었다고?!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래서 빨리 만나보고 싶었어요. 어떤 분인지~.”
“그래서 어떠세요?”
“물론 언니가 이후에 형부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줬어요. 그래서 안심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까, 더 안심이 되네요. 인상이 좋으세요.”
“감사해요. 한편으론 부럽네요. 자매가 이렇게 사이가 좋은 거 보니~.”
이후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그녀의 여동생은 헤어지면서,
“형부! 우리 언니 잘 부탁해요. 우리 언니,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네, 알고 있어요. 좋은 사람이란 거. 걱정 말아요.”
나는 지금도 그날의 얘기를 가끔 꺼내며 아내를 놀린다. 당신이 날 더 좋아한 증거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어떻게 한 달 만에 결혼까지 생각했냐고. 그리곤 그렇게 내가 좋았냐고 물어보면,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살짝 발끈해서 말한다.
“아니야. 한 달이 아니라 한 석 달 정도 지났을 때 말했어. 그리고 ‘결혼할 남자’가 아니라,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어.”
내가 보기엔 ‘한 달’이나 ‘석 달’이나 이고, ‘결혼할 남자’나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억울해하며 내용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사실 나의 본심은 그런 아내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더 놀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