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만난 지, 어느덧 6개월, 7개월을 넘어가고 있었다.
대학은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고, 나의 강사 생활은 공주와 부산을 매주 오가며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학회 또는 연구회 등에 소속되어 있다 보면, 그 곳에서 만난 대학교 교수님들이 강의 자리를 연결해 주곤 했다. 강사 생활을 한 지 언 2년이 넘어가는데, 지방을 다니는 일이 오히려 연애 기간에 ‘풍부함’을 더해 주었다.
공주를 오갈 때는 고속버스 터미널을 이용해야 했고, 부산을 오갈 때는 ktx 기차를 이용했는데, 공주와 부산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올 때마다 그가 마중을 나오곤 했다. 그리고 그가 공주와 부산을 내려오기도 했다. 공주에서는 강의가 끝나고 나오면 그가 차로 마중을 나와 있었고, 함께 공주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부산에서는 휴일을 맞춰, 여행을 하기도 했다. 일하면서 틈틈이 연애질하는 ‘짜릿함’을 맛보곤 했다.
특히 그는 도시, ‘공주’를 맘에 들어 했다.
“공주가 참 조용하고 고즈넉하고 좋은 도시네. 나중에 여기서 살아도 좋겠는데?”
“좋다구? 난 잘 모르겠는데….”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는 부산도 아니고 제주도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지방 도시가 살기에 좋다는 그의 말에 바로 맞장구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생각을 무시하진 않았고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보통 귀농을 하거나 귀촌을 꿈꾸는 도시 남녀들의 제2의 인생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산들이 둘러싸여 있고, 물이 크게 흐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잖아.
전체 기운도 들뜨지 않고 안정되어 있고….”
한번은 밤에 강남의 번화가 속으로 들어가 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밤에 불야성을 이루는 먹자골목을 지나는데, 그는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어지럽다며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황급히 그곳을 비켜난 후, 그는 아직도 번화가와 밤의 불빛들이 익숙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깊숙한 산 생활을 포기했지만, 아마도 그는 산과 물이 흐르고 조용한 곳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고,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그러네. 좋다.”
그의 말에 그제야 맞장구를 친 나는 언젠가 막연하게 그리던 노후의 한 장면을 말해보았다.
“그냥 내 노후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어느 시골 마을로 보이는 곳인데…. 앞엔 들판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산들도 보이는 마당에 남편과 내가 있어.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에 담요를 덮고, 돋보기를 쓴 채로 책을 읽고 있고, 옆에 남편은 아궁이에 지필 땔나무를 만들기 위해 장작을 패고 있는 거야. 크크크 ”
“하하하. 근데 왜 장작을 패?”
“모르겠네. 왜 장작을 패는 남편을 상상했을까? 하하”
“그래. 내가 장작을 패려면 건강해야겠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정말 막연하게 상상했던 그 장면이 어쩌면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 아마 그도 함께 미래를 그려본다는 것에 설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느끼며, 서로에게 진지한 마음으로 만남을 이어 갔다.
그날도 공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었다. 이상하게 그날은 카톡이 오질 않았다. 늘 공주에서 올라오는 날이면 버스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카톡이 왔었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전화했다. 그는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좀 몸이 안 좋네.”
“어디가 안 좋은데?”
“응. 그냥 조금. 나중에 연락할게.”
전화를 툭 끊어버린 그가 어떤 상태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난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도 약을 사기 위해서 그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혀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대중교통으로 그의 집을 혼자 가 보기는 처음이어서, 지하철과 버스 간 몇 번의 환승으로 어렵게 그의 집에 다다랐다. 아파트 문을 세차게 두들기고 초인종을 몇 번 누른 후에야, 비로소 현관문이 열렸다.
“왔어?”
말은 하는 둥 마는 둥, 그는 문을 간신히 열어주고는 바로 침대 위에 누워버렸다. 현관문을 잠그고 가방을 놓은 후, 그를 살펴보는데, 엄청 펄펄 끓는 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약국에서 산 약을 이미 먹은 듯 약봉지들이 방 아래 널려 있었다.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그의 온몸을 닦아주고, 그를 마사지해 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정신이 없었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그는 조금 정신이 드는 듯했고, 열도 좀 내린 것 같았다. 그나마 안심하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통화로 그가 훨씬 나아졌음을 확인했다.
“감기였던 거지? 병원 가봐야 하지 않아?”
“응 이제 괜찮아.”
“내가 가 보고 싶은데 오늘 부산 가느라 못 가”
“그래. 괜찮아.”
“근데 참 좋네….”
“잉? 머가?”
“1년 전쯤에 엄청 아팠던 적이 있어. 그때 꼼짝없이 3일을 혼자 누워 있었거든.”
“??”
“어제 너무 행복하더라. 아플 때 혼자 있지 않아서…. 누가 달려와 주고, 걱정해 주고 하니까”
전화를 끊고, 지난밤처럼 3일을 내내 혼자 있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그를 혼자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조용히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