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어떤 남자와 소개팅하고, 이후 지속해서 만나고 있는 일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사건이다. 이런 특별한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대학 때부터 거의 단짝처럼 지내 온 친구, 그 친구 한 명뿐이었다. 그 친구는 이 상황을 경이롭게 바라보다가 남편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들어갔다. 물론 카톡 문자로 거의 실시간 물어 왔고, 나 또한 그를 만날 때마다 친구에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어때? 이야기가 잘 통해?”
“응 잘 통하는 것 같아. 이야기하는 게 재밌어.”
“오호~ 좋은데? 참, 나 다음 주에 한국에 들어간다.”
“아 그래? 그럼 같이 만나자. 네가 함 봐 줘야지. 흐흐”
“그래그래. 좋지 그러자.”
그가 점점 좋아질수록, 그에 대한 의문도 점점 늘어갔다. 즉,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걸까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인지, 아님 ‘특별한 사건’을 친한 지인에겐 알려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인지, 어쨌든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하기로 했다.
‘나의 지인들은 이 사람을 어떻게 볼까?’
가장 가깝고, 소개하기에 편한 지인들은 동성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다. 나이 오십이 가까워졌지만, 특히 친한 친구나 선후배들은 기혼보다 미혼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주말에도 볼 수 있고, 여행도 함께 갈 수 있고, 특히 이야기 소재나 고민이 미혼끼리 더 통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당시 나 포함 골드미스 삼인방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리 삼인방은 누가 먼저 결혼하게 되면 나머지 두 명도 꼭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었다. 우리 셋은 25년 전 한 방송사에서 알게 되었다. 각자 다른 부서에서 활동을 해서 서로 친할 기회가 별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25년간 친분을 유지해 왔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좀 특별하긴 하다. 아마도 25년 후에도 싱글로 남아 있을 것을 서로 일찍 알아보았을까? 우리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우리 셋을 보면서, 박사학위 소지자인 고학력 싱글을 좋아하는 남자는 별로 없다며, 우려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먼저 나보다 세 살 위의 선배 언니는 이상형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다. 경제력과 지성, 외모 중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며, 소개팅이나 주선은 꼭 호텔을 고수하는 박사학위 소지자 저널리스트 골드미스 여성이다.
“언니, 나 얼마 전에 소개팅했어.”
“잉? 웬일이야? 네가 소개팅을 다 하고…. 어떤 사람인데?”
“음~, 머라 말하기는 그렇고, 한번 같이 볼래?”
“뭐? 너 언제부터야? 왜 이제 얘기해? 보여준다는 거지? ”
“응 그래. 언니가 한번 봐줘야지.”
“그래?? 그럼, 새끼 치는 거야?”
“아휴 벌써 무슨…. 하여튼 날짜 맞춰 보자.”
적잖이 놀란 듯했다. 근 20년을 봐왔지만 내가 소개팅하고, 그것이 이어져서 언니에게 소개팅남을 선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그건 서로가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나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소개팅이나 선을 많이 본 편이다. 언니는 매번 상대의 경제력에 혹 해서 선을 보러 나갔지만, 상대방의 외모에 실망하여, 불쾌감을 드러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남자의 ‘지성’은 아예 탐색할 기회조차 없이 말이다.
삼인방 중의 또 다른 하나는 두 살 아래 동생인데, 방송사에서 컴퓨터그래픽 팀을 이끄는 박사학위 소지자의 골드미스 여성이었다.
“와~ 대박! 진짜야?”
“그럼. 진짜지. 나도 어리둥절해.”
“좋아 좋아. 내가 봐줄게. 언니.”
너무나 이쁘고 배려심 많은 그 동생은 왜 남자가 없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그런 여성이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곤 했다.
“아니, XX는 왜 남자가 없어? 있지?”
“아니, 없어.”
정말 남자가 없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그 동생과 ‘오바마’가 이상형인 언니와 함께 그를 만났다. 그에겐 우리 셋에 대한 정보를 이미 자세히 준 상황이었고, 그와 우리 셋은 즐겁게 대화를 이어 갔다. 두 여자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것저것 마구 그에게 질문했고, 그가 대답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다 나를 한번 힐끗 바라보며 미소를 짓곤 했다. 생각보다 대화를 잘 이어 가는 그를 보며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저녁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단 외모는 합격, 태도도 합격!”
“응 땡큐!”
“근데, 정확한 정체를 알 수가 없네?”
“잉?.”
“아니, 이런 훈남이 그동안 왜 혼자였으며, 왜 산에 갔고, 또 왜 내려온 거래? 너 그런 거 잘 알고 있는 거니?”
“음~, 나도 그런 의문들이 들긴 하는데, 언니, 이상한 사람은 아냐.”
“너 사람 똑바로 잘 알아봐야 해”
“내가 잘 아는 선배 부부가 소개해 준 거야. 그 와이프의 사촌오빠고.”
“아, 그렇담 일단 다행이네. 그리고….”
“또 뭐?”
“그 사람 지금 아무 일도 안 한다며?”
“응.”
“그럼, 재산은? 재산이 좀 있어?”
“언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런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요즘 뜨는 ‘명상’ 쪽 일을 시작하면 될 거 같아.”
“이제 시작한다고? 야, 너 나이 많아. 이제 결혼해도 고작 30년 정도 함께 사는 거라고. 그리고 서로가 늙어서 쉽지 않아. 정신 차리고, 현실을 봐야지.”
사실 2년 전에 언니에게도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언니보다 7년 연상의 남자를 소개받아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세련되고 재산도 좀 있고, 아이들은 다 키워 장성했는데, 암 투병 후 완쾌 판정을 받은 지 1년이 채 안 되었다고 했다. 언니는 꽤 깊이 고민했으나 만난 지 6개월 후 즈음 이별을 통보했다고 했다.
“내가 다 늙어서 병 수발할 순 없잖니.”
“완쾌했다고 하잖아”
“그건 또 모르지. 언제 다른 병이….”
언니의 그 말이 참 슬펐다. 중년의 슬픔일 것이다.
만남은 어떤 면에서 시작이다. 중년에 만남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기보다는 서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다. 중년의 만남과 사랑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엘 함께 오르기보다는 어떤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 오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을 함께 한다는 것, 그 과정을 함께 겪겠다는 선택은 그래서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