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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Dec 31. 2024

홀아비들의 하마평 - 男

남편의 章

그녀를 만난 지 5~6개월이 지난 후, 친구들에게 그녀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그녀도 자기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일단 친구들이 너무 궁금해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 궁금해했다.   

   

산에서 내려오니, 13년의 세월 동안, 친구들의 삶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산에 올라가기 전인 20대에는 잘 알지 못했던 인생의 풍파가 내 친구들에게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한창의 나이인 30대를 큰 풍파 없이, 혹은 풍파가 있어도 슬기롭게 극복한 친구들은 그럭저럭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보통의 아내, 보통의 아이들, 보통의 삶 속에서 특별하진 않아도 나름 무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반면, 다른 그룹은 그런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친구들이었다. 부인과 이혼을 했거나, 아니면 이혼에 거의 가까운, 같은 집에 살면서 방을 따로 쓰고, 대화 대신 문자로 소통하는 ‘한집 별거’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 쉽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 극공감한다. 가정이 있는 친구들은 일단 시간을 내기가 자유롭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임의롭게 전화해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놀거나, 유흥을 즐기지 않음에도 유부남인 친구들은 점심을 같이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같이 어울리기에는 묘하게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주로 만나는 친구들은 결혼했다가 사실상 혹은 법률상, 현재 상태에서 아내가 없는 친구들이었다.      


보통 4명의 친구와 후배들이었는데, 그중에서 자주 어울리던 친구는 국민학교 동창인 ‘한집 별거’를 하는 A였다. A는 내가 절에 있을 때 찾아왔던 두 명 중 하나였다. 이 친구와는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지만, 묘하게 통하는 게 있는 친구였다. 서로 가벼운 욕도 섞어서 대화할 만큼 막역한 친구였고, 한편으로는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구석이 있는 고집 센 친구였다. 하지만 둘 다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주로 같이 여행도 가고 등산도 같이 다니던 친구였다. 그즈음 우리 둘은 전국에 있는 100대 명산을 다 오르기로 하고, 한 달에 2개의 산을 오르기로 약속하고, 서울과 근교에 있는 산부터 오르려 했었고, 서울의 청계산과 경기도의 유명산을 올랐다.   

   

또 다른 친구들은 모두 후배들이었다. B는 20대 초반, 방위병 시절에 바로 내 후임으로 들어와서 이제껏 가깝게 지내는 1살 아래인 후배였다. 이 친구는 아내와 사별을 한, 아들이 있는 후배였다. 술을 좋아하는 B는 젊은 시절에 인심이 후했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많았다. 후배임에도 모임을 하면, 주로 비용을 지불하는 좋은(?) 후배였다. 아내와 사별한 뒤, 한참을 방황하고 있을 때, 마침 내가 산에서 내려와서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심리적인 도움을 받았다. B도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말한다.  

   

“형! 만약에 형이 내려오지 않았으면, 난 아마 몹쓸 생각을 했을 거야. 고마워! 아마, 형이 나를 살리려고 산에서 내려온 것 같아. 죽은 마누라도 고마워할 거야.”    

 

산에서 내려왔을 때, B의 마음은 공허함 그 자체였다. 마음의 지지대가 쓰러진 상태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가 나의 도움으로 조금씩 삶의 끈을 만들어 내서, 삶의 의욕까지는 아니어도,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C는 하남에서 알게 된 후배였다. 나이는 나보다 6살 정도 아래였지만, 하남에서 고생고생하며 나름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던 후배였다. 가방끈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의 장점이 있는 친구였다. 그릇이 컸다. 작은 일에 휘둘리지 않고, 교활하거나 비열하지 않으면서 머리는 비상한 친구였다. 아마 공부를 길게 했으면 한자리할 만한 친구였다. 설날에 집에 혼자 있는 나를 불러내서, 자기 어머니 가게에서 떡국을 같이 먹을 정도로 정도 깊은 친구였다. 사는 곳도 같은 영구임대주택 아파트의 바로 옆 동이어서, 제일 임의롭게 만날 수 있는 후배였다.      


다른 후배 D 역시 산에서 내려와 하남에서 알게 된 2살 아래인 후배인데, 하남시장 선거 사무실에서 알게 된 후배였다. 그 무렵 나는 친구였던 하남시장 후보에게 도움 요청을 받고 선거 사무실에서 고양이 손을 빌려주는 중이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D는 자기도 불교에 관심이 많다며, 나에게 관심을 표했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꽤 나랑 잘 맞는 친구였다. 오히려 친구인 하남시장보다 나중엔 이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게 된다. 이 친구도 결혼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이혼한 뒤, 이제껏 혼자 살고 있었다. 덩치가 꽤 크고 인물 좋은 친구인데, 감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후배이다. 나중에 친구가 하남시장이 되고 나서, D는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식이 없는 친구이다.     


물론 이 친구들 말고 유부남 친구들과도 어울렸지만, 아무래도 임의롭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은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나의 연애 사실을 알렸을 때, 반응은 한결 같았다.     


A: “얌마. 좋겠다. 새끼 쳐!”

B: “형! 축하혀요. 웬일이래~.”

C: “형님! 축하드립니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D: “형님! 축하드려요. 연애를 시작하시다니~.”     


말투는 달라도 그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스펙과 직업을 얘기해 줬을 때는,     


A: “뭐야~. 그런 여자가 너 같은 백수가 뭐가 좋다는 거야. 잘 알아봐. 아니면, 혹시 인물이 못났나? 암튼 이해가 안 되네.”

B: “엥? 형! 스펙이 너무 좋은데~. 형이 많이 기우는 거 같아. 암튼~, 뭐지?”

C: “와~. 박사라고요? 너무 훌륭하시네요. 근데 형님은 그런 분이 감당되겠어요?”

D: “아니, 그런 분이 뭐가 아쉬워서 형님을 만나요? 이상한데~. 형님한테 내가 알지 못하는 매력이 있나??”     


그리고 이들에게 차례로 그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각각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그녀를 선보였다. 이후의 반응은 비슷했다.  

   

A: “네가 산에서 기도할 때, 좋은 여자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구만. 이쁘네.”

B: “허~! 형. 괜찮아. 아주 괜찮아. 최고야. 내 형수님으로 백 점 줄게.”

C: “형님~. 이제 결혼만 하시면 되겠네요. 단정해 보이시고, 우아한 느낌이에요.”

D: “형님. 뭐죠? 왜 그런 분이 형을 좋아하죠? 진짜 형한테 내가 모르는 매력이 있나?”    

 

이런 홀아비들의 부러움이 섞인 아우성을 뒤로 한 채, 그녀와 나는 계속해서 좋은 만남을 유지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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