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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Dec 13. 2024

얼떨결에 합방 - 女

아내의 章

* 이 글은 "갱년기신혼부부 01" (https://brunch.co.kr/brunchbook/oldnewlyweds) 에 이어 계속되는 연재입니다. 30편이 넘어가니 새로운 브런치북을 만들어야 하네요. 



 

선배 부부와 소개팅에 대한 감사의 식사를 하던 날,

선배 와이프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본인들은 진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우리에게 동행을 제안한 것이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우리가 여행을 간다는 건 아직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소개팅하고 만남을 이어간 지 고작 두 달이 넘었었다.     


하지만 난 바로 답을 했다.  

   

“네, 그래요. 저도 같이 가보고 싶네요.”     


만난 지 2개월 된 커플에게 여행을 가자며 제안한 선배 와이프, 또 그 제안에 함께 가는 당사자인 그와 상의하거나 의견도 묻지 않고 바로 답해버린 나.  

    

“와…. 잘 됐다. 언니, 같이 가요. 이제 언니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아, 네네 괜찮습니다.”   

  

난 언니라고 부르겠다며 훅 들어오는 선배 와이프의 명랑함과 상냥함에 마법에 끌리듯 끌려가고 있었다.      


“허허허…. 뭐 같이 가시죠. 형님”     


선배는 나와 그를 번갈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말했고, 그는 좀 당황한 듯 여행지에 관해 물었다.     


“오빠! 같이 가자. 와~ 너무너무 좋다. 넷이 여행을 가다니 너무 재밌겠다.”     


선배의 와이프는 그에게 눈치 짓을 하며 무조건 가는 것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우리는 곧바로 여행지와 준비물, 차량에 관한 이야기들로 그날 만남의 시간을 채웠다.     


이왕 시작한 연애, 즉 그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탐색을 하기 위해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둘이 가는 건 아직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특히 주선해 준 부부와 함께 갈 수 있는 여행이라면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주일이 흐르고, 우리는 진도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진도까지는 선배의 차로 이동했다. 운전은 선배와 그가 번갈아 가며 했고, 나와 선배의 와이프는 뒷좌석에 자리했다. 이동하고, 휴게소에서 쉬고, 또 이동하면서 우리 넷은 8, 90년대 음악을 즐겼다. 가끔 그가 모르는 음악도 있었지만 그럴 때는 80년대 대중가요로도 충분했다.      


진도행은 선배의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선배가 대학 시절, 학교 앞 호프집의 점원이었던 그가, 진도에서 전복 사업을 하는데, 선배를 초청했다고 했다. 무려 30년 전에 손님과 점원으로 만났던 그들이 쭈욱 연락과 만남을 지속했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에 성공한 그 지인이 선배 부부를 초청한 것이었다. 우리 넷은 그 지인의 성공담을 들으며 맛있는 전복을 배터지게 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 지인이 선물로 챙겨 준 전복을 한 아름 들고, 숙소엘 들어갔다. 숙소 또한 지인이 알려준 것이었는데, 요즘 유행하는 에어비앤비 플랫폼을 이용한 건 아니지만, 호텔도 펜션도 아닌 일반 집이었다. 마당이 있고, 거실과 부엌이 넓고 방도 두 개 있는 꽤 넉넉한 크기의 일반 주택이었다. 다음 날 먹을 아침밥에 관한 이야기를 한 후, 방 배정을 앞두고 있었다. 난 내 짐 가방을 들고 이방 저방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 언니랑 오빠랑 방 같이 쓰세요.”     


갑자기 선배의 와이프가 그와 나를 함께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아니….”     


난 무척 당황했고, 그도 당황한 듯 머뭇거리며 나를 살폈다.     


“아니, 우리는 같은 방을 써야 해요. 머 어때요? 어린애들도 아니고, 그냥 두 사람이 방 같이 쓰세요.”     


그런데 참 이상했다. 그와 나는 정색을 하며 선배 와이프의 제안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명랑하고 상냥한 그녀가 우리의 만남이 더욱 진전되기를 바라는 강력한 의중을 비친 것이다. 그 진실되고 깊은 마음을 순간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 앞에서 정색을 하면서 ‘너무 큰 실례를 하고 있다,’ 또는 ‘이건 아니다,’라며 그녀에게 면박을 주거나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아, 이거 어떡하지?’     


저 앞 거실에 앉아 있는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선배 또한 머라 말하지는 못하고, 자기 아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가득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야, 이건 아니야. 그냥….”     


그러나,     


“머가 이상해? 그냥 둘이 같이 방 쓰라는 건데, 난 우리 남편하고 같이 방 써야 해. 오빠 괜찮아. 뭘 그렇게….”


“언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그냥 들어가세요. 내일 봐요. 아침 맛있게 먹읍시다.”     


결혼생활을 오래 한, 나이가 있는 남녀의 연애 속도를 빠르게 진행하게 하려는, 삶의 지혜로 내공이 가득 찬 ‘아줌마’의 강한 처방에, 그 남자와 난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그날 방을 함께 사용했다.      


다음 날, 조금은 겸연쩍게 선배 부부와 아침 인사를 했고, 컵라면으로 아침을 대충 먹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 대천 서해 앞바다엘 들러, 시원한 바다 앞에서 넷이 또 둘이, 사진을 찍었다.      


무언가 특별한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들끼리는 묘한 동조 의식이 생긴다. 우리 넷은 지난밤의 얼떨결에 일어난 사건을 애써 서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며 서로 배려하고 서로 살피면서, 더욱 가까워지고 친근해져 갔다. 그리고 우리 둘은 그 여행에서 우리 둘, 당사자끼리의 대화나 교류가 많진 않았지만, 사이사이 서로를 배려하고 챙겨가며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그 시간을 채워갔다.     


합방을 안 그 밤, 엄청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합방하게 된 일은 이후 우리의 연애 속도에 어느 정도 가속을 일으킨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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