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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6시간전

결혼해 볼까? - 女

아내의 章

박사 동기 중에 대학 후배여서 나를 선배라고 부르며 따르던 후배가 있었다. 서너 살 아래 후배였는데 결혼도 했고, 아이를 좀 늦게 두었지만, 아들딸 둘의 엄마로서, 회사에서 중역을 맡으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였다. 내가 연애하는 걸 본인도 설레어 하며 호기심으로 나를 지켜봤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그녀로부터 부고가 왔다.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내 일도 아니고, 내 가족 일도 아니었지만, 문자로 온 그 소식은 나에게 온몸을 떨리게 했다.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그저 평범하게 행복하게 잘 살던 50대 중반의 남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간다는 것도, 40대 후반의 여성에게,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아이 둘을 키워가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는 것도…. 상가에서 그 후배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두어 달이 지난 후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

“아, 그래.”     


그다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막막하여 뜸을 들이고 있을 때,     


“선배. 나 좀 만나 줘.”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TV에서 뉴스나 드라마에서나 봤던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고, 그 일로, 그 이후 모든 상황에 불안을 겪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교통사고가 나면 어떡해? 어디 나가서 맨홀에 빠지면 어떡해? 누가 갑자기 해코지를 하면 어떡해?”     


매 순간순간, 그런 생각들로 사로잡혀서 미칠 것 같다는 얘기였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고, 그런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하며 막 일어서려는데,    

 

“선배. 부탁이 있는데, 앞으로 나 좀 자주 만나줘. 불러주세요. 내가 부탁할게.” 

    

이후 몇 번을 그녀와 만나며, 그녀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간간이 내 연애 소식도 들려주었다.  

   

“선배. 좋아 보여.”

“에고, 내가 그런 얘기 하기가 좀 그러네.”  

   

그녀는 15년을 함께 살던 남편을 잃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이제 한창 연애가 무르익어가며 늦은 나이지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려고 할 즈음이었다. 그녀에게 미안했지만,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희로애락의 인생 한 지점에 있는 것이고 그걸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좋은 사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에 그 후배와 나는 많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차츰 연락이 뜸해졌고, 6개월이 지난 후 연락이 왔다.     


“선배. 나 암 환자가 되었어.”

“머?”

“응. 근데 유방암 1기여서 항암치료 받고 있는데, 괜찮아요. 견딜만해.”

“그래. 그 충격과 상실이 암 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이상하지? 항암치료를 하면서, 남편이 죽었다는 게 이제 인정이 되네. 그리고 내 인생이 무언가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것 같아.” 

    

그 후배는 암을 잘 이겨내었다.     


인생은 무언가 다 얽히고설킨 듯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냥 생기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에 영향을 받아 다음 일이 이어지고, 또 그다음 생겨난 일은 그 다다음에 생길 일에 영향을 주고….     

옆에서 후배를 지켜보면서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내 또래의 사람들도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것, 죽음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 부러울 것 전혀 없는, 어찌 보면 다 가진 것 같은 한 사람에게도 불행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 의지와 노력으로도 불가능한 영역이 있고, 오히려 그것이 인생의 본질일 수 있다는 것. 후배에게 닥쳐온 시련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건강검진 예약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정기검진한 지가 꽤 오래되어 불현듯 내 건강이 염려되었다. 그런데 검진한 의사가 유방 쪽 조직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10여 년 전쯤 회사에서 검진할 때도 조직검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암 조직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이후 5년 정도 정기검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는 또다시 조직검사를 하는 시간 내내 굉장히 불안하고 긴장되던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그를 만나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검진했는데,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했어. 내일 결과 들으러 가야 해.”

“아, 그래? 내가 같이 갈까? 부담스러우면 안 가고….”    

 

그에게 얘기할까 말까, 꽤 고민했었다. 우리는 가족도 아니고, 연애를 하는 사이였다. 어쩌면 서로에게 이런 일은 관계의 진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또한 그의 반응도 궁금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무엇보다도 나는, 내 마음은 그와 함께 병원을 가고 싶어 했다.     


병원에 함께 들어가서 진료실 앞에서 그와 함께 앉아 호명을 기다렸다.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는 일어서고 그는 앉아 있으며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눈짓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이후에 나에게 오래오래 남았다. 

    

의료 검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요즘 추적 검진과 시술들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모르 넘어갔을 건강에 대한 상황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래서 병원도 자주 가게 되고, 시술, 수술 또한 많이 하게 된다. 물론 미리 발견해서 치료하기 때문에 깊은 병에 들어가는 일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튼 나는 큰 이상은 없는 걸로 의사가 결론을 내 주어, 둘이 그제야 편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별일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좀 걱정했어. 오히려 당신이 같이 가자고 한 말에 더 걱정했지. 이런 거 같이 가자고 할 사람이 아니잖아. 

“그랬어?”

“그럼, 그리고 만난 지 1년도 안 된 여자친구가 암에 걸리면 어떡하나 하고….”    

 

갑자기 미안한 생각도 들고, 그의 솔직한 말에 또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장난스레 질문을 했다.    

 

“만약 내가 암에 걸렸다면, 당신은 어떡할 거야?”     

“못 만나지. 어떻게 만나? 당연히 헤어져야지. 하하하”

“그런가? 그치~? 아마 그게 맞을 거야.”  

   

어찌 보면, 우리의 이 대화는 일반적인 연인관계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대화 내용일 수 있다. 보통은 남성의 이런 대답에 실망하고 서운해하고, 그 답을 감정의 영역에까지 갖고 가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로 단정 짓고 관계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 말에 오히려 믿음직스럽고 신뢰감이 들었다. 그는 늘 솔직하고 진실했으며,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오히려 조금 실례를 한 것일 수 있다. 아직 연애 중인 상태에서, 가족 관계에서 가질 수 있는, 가족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거니까. 오히려 그가 부담스러워서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암에 걸렸어도 당신을 만날 거라는 막무가내의 이야기를 떠벌렸다면 어땠을까? 

     

이 일을 계기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무언가를 제안할 땐 나를 배려해서 그 제안을 받아들여 준다. 나의 태도가 진지하기 때문에, 그는 나의 진심을 배려해서 그 제안을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펼쳐지고 벌어질 때까지 기다려 준다. 그리고 결과가 생기면 담담하고 무겁지 않게 받아들인다. 긴장되어 있는 나를 풀어주기 위해서 상황을 가볍게 마무리해 주는 것이다.    

 

이 일을 겪으며 내가 알게 된 그는, 앞으로 함께 인생을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혼을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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