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내식당 창업하기Ep.9
“너 아직 창업 준비 하는 것 맞지? 제주 올레에서 진행하는 ‘내 식당 창업 프로젝트’에 지원해보지 않을래?”
‘내 식당 창업 프로젝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제주올레와 오요리아시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진행하는 청년 창업 지원 프로젝트인데, 한 달 동안은 청년들에게 식당운영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한 달 동안 실제 가게를 운영해볼 기회를 준다고 했다. 1기를 시작할 때부터 주변에서 알려주기도 했고 나 역시 관심이 있어서 살펴봤는데 두 달 이상 일정을 빼놓아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 됐다.
그런데 벌써 3기를 뽑다니. 1기를 시작할 때 지원했다면 벌써 끝났을 시간이다. ‘더 미루지 말고 해볼까? 좋은 기회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존경하던 박찬일 셰프가 멘토 요리사로 레시피를 손봐주신다고도 했다. 우선 지원하고 고민하자는 마음으로 서류를 냈는데 덜컥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가왔다.
오전에는 농산물 공판장, 저녁에는 동문야시장에서 근무하며 창업자금을 모으고 생활비를 썼다. 3기는 3달 동안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했다. 3달 동안 창업자금은커녕 생활비 도 벌 수 없다는 뜻이다. 그 것은 1기와 2기를 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서귀포시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 역시 문제였다.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이번에는 꼭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해보자. 앞으로 현실이 달라지진 않을테니까. 인생에 있어서 3개월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고!’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생활비는 뭐, 정 안 되면 대리운전이라도 하면서 벌지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마침 제주올레여행자센터의 1층 펍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일은 그만둬서 아르바이트 직원을 뽑는다는 것이 아닌가. 제주올레스테이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도 지원된다고 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생활비와 숙박, 왕복 교통의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3기는 8명으로 구성됐다. 그 동안은 셰프들로 선정했는데, 3기는 꼭 요리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내식당창업프로젝트로서도 새로운 시도라고 했다. 8명 중에 나를 포함한 3명은 요리를 전공한 사람들이었는데, 서울에서 이 프로젝트 때문에 온 사람도 있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사람도 있었고, 요리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도시락집을 운영했다가 폐업한 경험이 있다는 분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성공을 배우고 싶어서 청주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의류사업을 했다는 분도 계셨는데, 제주에서 대만요리를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고 요리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문화가 있는 펍을 운영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가 3명 여자가 5명이었고 30대가 5명 40대가 3명이었다. 여러모로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처음엔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창업이라는 공통관심사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빠르게 친해졌다. 요리를 하고 있고 창업을 앞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따로 요리수업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재료를 탐구하는 시간은 있었다. 제주도의 식자재를 따로 공부하고 양용진 님과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님과 함께 오일장을 둘러보며 좋은 식자재를 골라보기도 했고 잘 운영되고 있는 레스토랑을 동기들과 함께 탐방하기도 했다. 사업계획서, 마케팅 등 실무적인 내용들도 배웠다. 크라우드 펀딩이나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은 잘 알지 못했던 분야였는데, 지금 이렇게 브런치를 쓰고 있는 걸 보면 배우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펍 아르바이트를 하는 저녁 시간 역시 배움의 연속이었다. 청년셰프 2기 활동을 한 용한형은 서귀포 호텔에서 근무했던 일식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끝이 없었다. 호텔에서 유명 셰프를 초청하는 행사를 할 때에는 쉬는 날도 반납하고 참여했다고 한다. 일본어를 모르면서도 일본어 요리책을 보며 공부했고, 여전히 새로운 책이 나오면 찾아본다고 하셨다. 이렇게 청년셰프를 하는 동안 도처에서 스승을 만났다. 지원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계속됐다. 이 이야기를 쓰려고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정도다.
어느새 박찬일 셰프님이 내려오는 날이 되었다. 박찬일 셰프님이 코멘트를 해주시다니!! 설레기도 했다. 박찬일 셰프님은 수요미식회의 패널로 활동하기 이전에도 몽로, 광화문국밥 등을 성공시킨 스타셰프였다. 게다가 글쓰는 요리사로도 유명했다. 나에게는 우상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메뉴 테이스팅 날은 8명의 조원들이 각자 하고 싶은 요리를 하나의 주방에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4명씩 조를 나눠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주방을 쓰기로 했다.
나는 BBQ를 하고 싶었지만 한 달 동안 팀원들과 식당 운영을 할 메뉴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샌드위치로 조율했다. 박찬일 셰프님은 ‘샌드위치나 햄버거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겸손함이 너무 놀라웠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고객 입장에서 바라볼 것을 이야기하고 불고기 샌드위치를 제안해주셨다. 맛의 균형을 잡는 것 뿐 아니라 식당을 운영하는 선배의 입장에서도 많은 조언을 주셨고 하나하나가 모두 감사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시던 박찬일 셰프님이 갑자기 “서울에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신 것은.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셰프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햄버거를 잘 아는 후배를 소개시켜줄게." 그리고 BBQ에 관련한 책을 한 권 주문해주시며 읽고 오라고 하셨다.
한 달 후 서울에 올라가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레이먼킴 셰프님이 앉아계셨다.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 앞에 박찬일 셰프님과 레이먼킴 셰프님 두 분이 앉아계시다니. 그것도 나를 만나기 위해서! 식당 이야기도 하고 메뉴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나누는 모든 순간이 꿈만 같았고 믿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 모든 순간을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도전하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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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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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목차
ep. 3화 길이 하나라면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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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목차
ep. 4화 일단해보자 <현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