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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에디씨 Jan 14. 2022

무시무시 시무식

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늦으시는 분이 있어서 10분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발표대 앞에 서 있는 대표의 모습이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나중에 직접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스스로 어디가 고장 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망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어요. 이제는 진짜 망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구나. 우리가 망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목소리 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뉘앙스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머리가 새햐얘진 것 같았어요.


사실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어요. 고발도 당하면서 감정적으로 많이 무너지기도 했죠. 감정이 앞서니까 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았어요. 내가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감정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마인드로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 같아요. 


본인도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 두 페이지의 장문의 글을 뽑아 준비해왔다. 2주 동안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쓴 글. 본인의 의도나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긴 시간 동안 준비했다고 말했다.


(뭔가 이런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서 첫 줄부터 끝까지 읽진 않았지만, 어떻게 이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지, 감사에선 어떤 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적극적으로 반발하지 못했던 이유 등 우리가 이 공간을 접고 나가야만 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진행 사항을 중간중간 공유할 수 없었던 고발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거대한 힘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꼈고, 과연 내가 현대를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하필 시무식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만감이 교차했다. 보통 한 해의 목표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가 했던 노력 중 가장 감사했던 것은 당장 작년 12월에 내쫓기는 일정에서 올 3월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번 것이다. 이로써 비교적 최근에 취업하신 분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우리 모두가 당장 길거리에 나 앉게 되진 않았다. 이 외에도 3월까지 직원들이 이직할 수 있도록 업무 강도를 현저히 낮추기도 하고, 면접 등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가용 인원(깍두기)을 충원하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회사의 노력들이 고마웠다.


결과를 짧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현재 운영 중인 공간 3월 31일 목요일까지 운영하고 OUT.

2. 공간 운영 업무는 최소화한다.

3. 연차, 실업급여 등 직원을 위한 금전적, 시간적 여건을 최대한 보장한다. 


시무식 일주일 뒤, 근로계약서를 썼다. 우리 팀원들도 모두 3월까지 시간이 보장됐다.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방파제가 생겼다.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계약서는 정말 중요하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서명한 문서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의 투쟁 없는 투쟁기는 끝이 났다.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 -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며칠 전 '타다' 다큐멘터리를 봤다. 우리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타다의 결말은 실패가 아니다. 그들이 진정하고 싶었던 일 '모빌리티 산업에 혁신'을 위해 새로운 서비스를 다시 만들어 낸다. 그들의 재도전하는 모습을 비춘다.


우리도 다시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일의 형태는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이 일을 하느냐에 대한 나름의 정의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그 이유가 없는 상태인 지금, 우리는 각자도생을 생각하며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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