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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김철기 Oct 17. 2021

손발 묶고 자는 남자

파킨슨병 환자의 렘수면 행동장애 극복 법


꽈당!

 새벽에 작은방에서 혼자 자던 제가 악몽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덮쳐오는 것을 피해 달아나다가 건너편 벽에 설치된 선반에 머리 정수리를 박고 쓰러졌다. 이어 몇 초 지나지 않아 안방과 옆방에서 아내와 아들이 부산하게 여보, 아빠를 외치며 뛰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저는 끈적이는 붉은 액체에 뒤범벅이 된 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지난달 9월 중순 새벽 두 시경에 잠자던 제게 일어난 일이다. 우리 파킨슨병 환우들이 매우 흔히 겪는, 마치 현실과 같은 선명한 꿈을 꾸고 수면 중에 돌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현상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흑백영화와 비슷한 꿈을 꾼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 환우들은 어찌 된 일인지 가끔씩 현실세계와 같은 선명한 화질의 꿈을 꾸게 되고 마치 평소와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우리 뇌에는 꿈에서의 행동을 실제로 나타나지 못하게 나지 못하게 하는 억제 회로가 있는데 렘수면 행동장애는 이 억제 회로가 손상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킨슨병이나 치매 환자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증세이다. 렘수면 행동장애는 렘수면(꿈을 꾸는 얕은 잠) 단계 때 이상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꿈과 현실을 착각해 꿈속에서의 상황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가령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싸우는 꿈을 꿀 때 옆 사람에게 주먹질을 하거나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라고 구글이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가 겪었던 몇몇 렘수면 행동장애에 따른 사건들 중 하나를 예로 들어 보자.  약 2년 전 제가 설립해 운영하던 사단법인 한국안전수영협회 생존수영 지도자 양성을 위해 전북 전주시에 내려갔다가 밤에 호텔에서 자던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포탄 하나가 내 근처에 떨어졌다. 빨갛게 페인트 칠한 족한 포탄 탄두에 적힌 시리얼 번호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포탄이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에 재빨리 몰을 날려 피했는데 순간 꽈당! 어둠 속 내 머릿속에서 불똥이 번쩍했다. 침대에서 벽 쪽으로 몸을 날려 머리를 벽에 사정없이 박고 만 것이다.


 저는 2011년 초에 몇 년간 원인도 모른 채 몸의 절반이 굳어져 고생하다가 서울대병원 파킨슨 센터에서 확진을 받은 후 이제는 제법 중견 파킨슨병 환자가 됐다. 이후 증세가 진행되자 2018년에 14시간에 걸친 뇌수술을 받았다. 뇌심부 자극기를 뇌 양쪽에 심고 오른쪽 가슴 쇄골 밑에 심은 배터리에 이를 연결해서 한시도 쉼 없이 3 암페어가 넘는 전류를 흘러넣음으로써 몸이 움직이게 하는 장치를 부착한 저는 말하자면 싸이보그 이다.


 제 이마 양쪽에는 뇌심부 자극을 위해 두개골을 뚫고 뇌심부 깊숙이 젓가락같이 생긴 심과 이것을 고정시켜 놓은 플라스틱 장치를 두피에 심어 놓아이마 위쪽이 불쑥 튀어나왔는데 이 부분을 부딪히는 경우 뇌출혈을 일으켜서 매우 위험하다. 다행히도 옆머리를 벽에 들이박는 바람에 살아난 것이다.


 그날 전주에서 만약에 침대의 반대편으로 몸을 날려 방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졌다면 난 아마도 즉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벽 쪽에 부딪힌 편이 오히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막은 것이 된다.

그날 이후 난 더 이상 침대에서 자는 호사스러움을 포기해야 했고 아파트 작은 방에 매트리스만 깔고 혼자서 자야만 했다.


저는 이번 사고에서 정말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만약 제가 머리의 정수리 부분이 아닌 약 10센티미터만 아래쪽을 부딪혔더라면 머릿속에 심은 플라스틱 장치가 깨지는 것은 물론 뇌심부에 박은 두 개의 젓가락 모양의 심이 뇌출혈을 일으켜 생명에 지장이 발생됐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날 자칫 했더라면 식구들이 제 부고장을 내 보내느라 바빴을 수도 있다.


 제가 확실치는 않지만 병원에서 제가 복용할 효현제를 신약으로 추가 처방해 주었는데  이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날 다음날 새벽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는데 다음 진료 때 보고드릴 생각이다. 하도 세게 머리를 박은 탓에 목뼈가  며칠 동안 아팠다.


그날 선반에 모서리에 부딪힌 정수리에는 피도 났지만 평소에 잠을 잘 자기 위해 적색 포도주 한 병을 갖다 놓고 가끔씩 조금 마시곤 했는데 제가 쓰러지면서 병에 든 포도주가 쏟아지는 바람에 식구들 눈에는 마치 제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식구들 눈에는 제가 사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럴 개연성이 매우 높았던 사고였다.


 당시 저는 충격으로 정수리 부분에 심한 통증을 느낀 반면에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어서 빨리 생사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과 함께 제가 살아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를 냉철히 따져 봤다. 그런데 제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일단 안심한 채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정말 죽을 뻔했네!


 이번 사건과 같은 부끄러운 일을 공개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숨기기엔  너무 위험한 사고이라서 제가 이번에 큰 용기를 내서 우리 환우들을 위해 나름대로 궁리한 렘수면 행동장애 극복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그런데 저와는 달리 매우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아내가 이 글을 쓴 것을 알게 되면 한바탕 난리를 칠 것에 틀림이 없어 이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제 딱한 입장을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이번 사고 발생 후 제가 셜록 홈스와 같은 예리한 추리력을 발휘하여 연구 실험한 끝에 다음과 같이 손과 발을 묶고 자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침대를 치우고 매트리스만 사용토록 한다.

두 번째, 매트리스를 한쪽 벽에 바짝 붙이고 가까운 쪽 옆 벽과 머리 쪽 벽에 1 미터 높이의 폼 벽지(다이소에서 판매)나 베이비 매트(대문 사진  참조)를 세워서 만약의 경우 벽에 머리를 박아도 충격이 완화되도록 한다.

세 번째, 실리콘 재질 탄력밴드(대문 사진에 분홍색) 또는 면 종류 탄력밴드(대문 사진에 검은 색)를  다이소에서 구해 후자의 경우 손과 발이 자유롭게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두 개의 올가미를 만들어 (전자의 경우 그냥 사용) 각각 넓적한 끈에 부착시키고 끈의 다른 쪽을 벽 또는 벽장 속 물건이나 매트리스 아래쪽에 고정시킨다. 이때 끈의 길이와 탄력밴드 올가미가 충분히 느슨해서 숙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잠잘 때 누워서 가까운 벽 쪽에 있는 팔(엘보)과 다리(발목)를 올가미에 끼운 채 잠이 들도록 한다. 제가 실험을 해본 결과 양팔을 양다리를 다 묶으면 매우 불편하니 피하도록 할 것.
 


 렘수면 행동장애를 가진 환자가 이렇게 하면 자다가 꿈을 꿔서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여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거의 대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잘 이해하셨죠? 여러분의 피드백을 댓글로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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