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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김철기 Oct 19. 2021

나는 어떻게 한국의 IMF 외환위기 극복을 도왔나?

ADB의 대한국 긴급자금 지급을 직접 담당

여러분께서는 0이 아홉 개가 달린 열 자릿수 외화 수표를 보신 적이 있나요?


1997년 말 경에 발발한 한국의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IMF,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공조한 '대한국 긴급구제금융' 지원 프로그램팀의 일원으로 참여해 오던 중 1998년 정초에 ADB의 대한국 지원금 10억 달러를 직접 결재하여 친정인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에 입금한. 외화 수표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기억하는 ‘IMF사태’라 하면 ‘정부의 외환보유고 관리 실패로 인해 IMF를 필두로 한 국제기구단으로부터 긴급구제자금을 빌리게 되고 그 결과 금리와 환율이 급등해 국내 기업 및 금융기관을 포함한 국민들이 예상치 않게 심한 고통을 겪게 된 사태’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 IMF 사태에 대한 평가는 아직 훗날 경제 역사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를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아픔과 고통으로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 대열을 바라보며 겉보기엔 화려한 호황세를 누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단기 외화 차입이 급증하면서 외채구조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잘못된 외환보유고 관리정책(3개월치 수입대금에 맞춘)을 유지한 데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급등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달러 자금을 허비하게 된 결과로 1997년 12월 중 환율이 최고점 1,962원으로 연초 대비 두배 이상으로 뛰었고 외환보유고는 한 때 39억 달러까지 감소한 그야말로 ‘국가부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렇게 초비상 사태를 맞게 된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단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 단과의 피 말리는 ‘밀고 당기기’ 협상 끝에 1998년 12월 5일 날 IMF, 세계은행과 ADB로부터 도합 550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 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IMF로부터 단기성 고금리 차입금인 보완 준비금(SRF, Supplement Reserve Facility) 135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이 준비금은 금리가 높아서 벌칙성으로 간주된다. 세계은행 또한 0.5%의 벌칙성 가산금리를 적용한 반면에, 평소 아시아 회원국들에게 우호적인 ADB는 벌칙성 가산금리 없이 통상적인 차관 금리를 적용해주었다. 여기에는 당시 재무부에서 파견 나온 박진규 이사님이 동료 이사실과 담당 국장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협상한 남다른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ADB는 한국 정부에게 통상적인 차관 금리 만을 적용해줘서 한국민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당시 ADB는 한국 정부에게 40억 달러라는 전무후무하게 큰 금액을 3차에 나누어 지원했다. 이중 제가 결재한 것이 그 2차 지원금(2nd tranche)이었다. 1998년 1월 2일에 첫 출근했는데 캐나다 국적의 Paul Dickie 국장님이 아직 해외 휴가 중이라 제가 국장대행(officer-in-charge)을 맡게 되었다. 아침 일찍 결재가 올라온 10억 달러(1조 6천억 원 상당)의 대한국 지원금이자 과거에 몸담았던 한은의 외환보유고 계정으로 입금하는 10 자릿수 외화수표를 보는 순간 제 가슴은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말을 부도위험으로부터 간신히 넘긴 한국 정부로부터 당일자로 꼭 입금시켜달라는 다급한 요청을 받고 둘러보니 마침 한국 직원 선배님 두 분(박병욱, 문세화)이 컨트롤러 및 트레저리 부서에 출근해 있었고 흔쾌히 협조해 주었다.

이례적으로 당일자에 한은 계정에 입금시킨 후 뜨겁게 만세를 외쳤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후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예상을 뒤엎고 IMF 구제금융 전체를 불과 3년 8개월 만인 2001년 8월에 조기 상환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IMF 관리 체제가 종료되었다. 이는 '금 모으기' 국민운동에서 확인된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구국 열정에 힘입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때 국민 ‘금 모으기’를 훌륭한 지략으로 주관하신 신명호 ADB 부총재님(당시 주택은행장)께도 이 기회를 빌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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