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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Dec 21. 2023

힙합은 뿌잉뿌잉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요 뿌잉!


이건 꿈이다.


액세서리샵을 구경 중이었다. 귀걸이 몇 가지를 손에 쥐고 귀에 걸어 봤다. 샵에는 엔틱한 소품들이 한가득이었다. 갑자기 옆으로 웬 남자가 와서 내가 구경하는 파티션의 물건들을 같이 봤다. 불편해진 나는 다른 파티션으로 가려다 슬쩍 남자를 본다. 민윤기였다! 윤기는 까만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는 체 하고 싶은 맘을 꾹 누르고 옆으로 이동했다. 윤기가 따라왔다. 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보더니 그거 말고 저기 있는 것을 해보라고 했다. 그건 낙엽 모양의 귀걸이였다. 나는 괜찮다고 표정으로 말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윤기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침착한 척 구경을 계속했다. 윤기는 자기를 알아본 것 같은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재밌는지 계속 따라다녔다(2018년 10월 20일).



이번에도 민윤기였다. 이번에도 귀걸이를 사줬다. 지난번엔 낙엽모양 귀걸이를 사줬다. 어제는 물방울 모양에 큐빅이 박힌 귀걸이였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민윤기가 물방울 모양 귀걸이를 내 귀에 해줬다. 좀 무거웠다. 장난 아니다. 진짜 장난 아닌 건 예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민윤기 손등을 내려다보는데 힘줄이 있었다. 스카이라운지였는데, 장난 아니었다. 나란히 앉아서 윤기가 주는 연보라색 벨벳 상자를 열었는데 장난이 아닌 건 이런저런 귀걸이가 몇 세트 더 있었다. 윤기 손등에 힘줄이 다시 보였다. 놀라서 깼다(2019년 9월 5일).



그 두 번의 아침 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나 블로그에 기록했다.







SUGA 슈가


본명 민윤기, 1993년 3월 9일생, 고향 : 대구,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 2025년 6월 21일 소집 해제 예정. 549일 남았다. 믹스테이프는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다. 어거스티 디는 DT(Daegu Town) SUGA를 거꾸로 한 것.



힙합은 뿌잉뿌잉을 하지 않습니다


머스터에서 '힙합은 뿌잉뿌잉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하지만 저는 해요 뿌잉!'이라고 끼 부린 이력이 있다. 물만두처럼 볼을 부풀려 손가락을 찍어서 뿌잉 뿌잉을 완성했다. 사랑과 우정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개인의 취향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여자분의 선택에 따르겠다고, 본인은 누구에게 강요하는 거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쿨내 나는 소년은 나중에 '가스나야 장난 똥 때리나 눈이 삣나. 호석이 같은 머스마는 천지삐까리다 쌔리삐다. 아 쫌~ 금마는 지삐 모른다'며 제이홉을 음해하고 '내 맘 이제 다 니끼다 난 니삐 모른다~'며 앙탈부리는 남자로 자라났다('어디에서 왔는지' 참고).



민빠답(민윤기에게 빠지면 답이 없다)의 시작


시작은 뭐 즐거웠었네
오르락내리락 그 자체로
LOVE YOURSELF 結 'Answer' (2018.08.24.)
11번 트랙 'Seesaw'



민빠답은 진리이다. 윤기는 아미들을 과격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 나는 분명 멀쩡한 사람인데, 윤기 앞에만 서면 괴성을 지르고 욕을 하고 뭔가 부수고 싶다 말한다. 윤기는 그저 웃었을 뿐인데, 카메라를 바라봤을 뿐인데, 그리고 어쩌다 꿈에 등장했을 뿐인데, 상대방은 광기와 집착을 시전하고 마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민빠답의 자매품으로는 '고소할 거야(내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까요)'와 '윤기 메리미(yoongi, marry me)가 있다. 콘서트 장에 가면 넘쳐나는 저 문구를 볼 수 있다. 고소할 거라는 팬에게 '저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고, 결혼하자는 팬에게 결혼 서류를 가져오라고 툭. 대답한다.



이 무심해 보이는 남자가 팬들을 돌게 만드는 순간은 랩으로 때려 박는 순간이 아닐까. 욕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이 남자의 입에서 이런 가사. 저속한데 좋으니 어쩔.



니 여친도 홀리는
내 목소린 좀 꼴림
Skool Luv Affair (2014.2.12.) 7번 트랙
'BTS Cypher PT. 2 : Triptych'


알다시피 내 목소린 좀 꼴림
남자든 여자든 랩으로
홍콩을 보내는 유연한 내 혀놀림
Dark&Wild (2014.8.20.) 7번 트랙
'BTS Cypher PT.3 : KILLER'



2018년 8월의 주 경기장에서 'Seesaw'를 부르는 민슈가는 민빠답 그 자체였다. 랩으로 홍콩을 보내던 오빠가 빨간색 반짝이는 슈트를 입고 꿀렁댔다. 짧은 팔과 다리를 위아래 흔들었다. 2019년 10월의 주 경기장에서는 더 진화했다. 의상으로 날 죽였다. 미쳤어 민윤기 그 구멍이 숭숭 뚫린 니트 뭔데. 살색 니트 뭔데. 니트 속에 블랙 나시 뭔데. 춤출 때 오른쪽 어깨 다 깐 거 뭔데. 내가 본 게 설마 민슈가 겨드랑이? 그런 생각으로 점철됐다. 민윤기 어깨가 클로즈업될 때마다 잠실 공기를 흔드는 함성이 터졌다. 나는 미쳤어를 연발하며 괴성을 질러댔다.




D-DAY final 콘서트

2023. 8. 4. d-day final 첫날 체조경기장



나도 ㅅㅂ을 뱉을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윤기의 D-DAY final 콘서트에서였다. 그날 나는 민슈가 팬들이라면 으레 입을 만한 시커먼 옷과 시커먼 색의 네일 아트를 장전하고 잠실 체조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나같이 시커먼 인간들로 북적였다. 아늑했다.



콘서트 전날까지 윤기의 수많은 랩가사를 외우느라 퀭한 상태였다. 'D-DAY' 가사는 '퓨쳐스고나비오케오케오케룩켓더미러앤아씨노페인'까지는 괜찮은데 그다음부터 혀가 안 굴러갔다. 박자도 문제. 가사를 아는 부분도 박자를 놓쳐서 못했다. 그래도 그런 내가 하찮고 좋았다.



그날 2층 30구역 6열에 앉아 인생 최초로 그 단어를 내뱉었다. 사실 윤기가 하길래 따라 했다. 사실 노래 가사이기도했다. 아미들은 맺힌 게 많아 보였다. 아주 찰지게들 그 욕을 외쳤다. 그날밤 블로그에 수많은 shit과 ㅅㅂ과 미쳤네와 사랑해를 남겼다. 그리고 좋은 꿈을 꾸며 푹잤다. 윤기는 항상 이런 마음을 주는 것 같다. 죄의식을 느끼며 외친 단어인데 막상 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해주는? 나빠 보이는 것도 제 자리에 놓인다면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언제라도 나를 돌아이로 만들어주는 윤기와 무심한 듯 다정한 민슈가. 윤기야 내가 많이 사랑하고 사모하고 낀다. 오늘도 내 꿈에 와주라.



윤기 솔로곡 추천. 너무 많지만 일부만 적어본다.

- 화양연화 pt.2 앨범의 'INTRO : Never Mind'

- D-2 앨범의 '취타'

- MAP OF THE SOUL 앨범의 'Interlude : 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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