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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 Aug 15. 2024

옥상에 사는 객식구

델리 | 메인 바자르와 루프탑


사람, 소, 개, 하늘을 나는 것들이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나는 테라스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하얀 담배 연기 사이로 - 크기도 색깔도 제각각인 환전소, 카페, 레스토랑, 호텔 등 편의시설들이 보인다. 어느 상점들은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을 것처럼 붙어있다. 대문 없이 그대로 내부가 노출되어 있는 상점은 흙먼지를 정면으로 맞아 기력이 바랬고, 욕실의자 같은 조막만 한 의자에 앉아 짜이를 끓이는 할머니, 수동 착즙기를 힘차게 돌리며 오렌지를 짜고 있는 청년이 순서대로 눈에 들어왔다. 차양막 하나 없이 땡볕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 모습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문뜩, 엄마의 부탁을 떠올렸지만 한국으로 전화 걸지 않았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땀구멍에서 봉긋한 열기가 순식간에 하얀 얼룩을 남기며 사라지는 날씨. 한국서부터 입고 온 청바지는 열과 땀으로 범벅이 돼 당장에라도 벗어던지고 싶은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짧은 옷가지들은 실상 쓸데가 없어졌는데, 걷다 보면 튀어 오르는 오물 웅덩이도 문제지만 맨살을 향한, 도저히 참기 힘든 인도 남성들의 노골적인 눈초리 때문이 컸다. 길거리에서 느닷없이 당하기 일쑤라 좀 만 그럴라치면 뭘 쳐다보냐고 쏘아붙이기도 했지만 배실배실 웃으며 성의 없이 아닌 척하는 꼴을 보면 허허 기가 찰 노릇. 씩씩대며 화를 낸들 어쩔 도리가 없다. “한국에서 예쁜 반바지 가져왔는데!” 분노에 차서 상점에 걸린 긴바지들을 노려보다가 어렵사리 입어 봄직한 걸 골라 가방에 쑤셔 넣으면 가만가만 올라오는 부적이라도 손에 넣은 것 같은, 나도 모를 기분은 정말이지 갖다 버리고 싶었다.  

.

기차역 앞 노포에서 산 사모사를 들고 다니다가 먹으려고 꺼내 보니 언제 튀겨진 건지 한 눈에도 상태가 의심스럽다.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인데.’ 눈앞에서 요리조리 돌려 본다. 그러나 텅 빈 창자가 말간 혀를 내밀려고 하니 어쩔 재간 없이 입 속으로 끝까지 밀어 넣어버린다. 조여 오는 입천장에 부서지는 반죽 더미. 바삭하고 어디는 물컹하다. 혓바닥으로 눌러 접고 다시 앙 씹으니 늙수그레한 기름향이 퍼진다. 이빨 사이사이 때려 박히는 향신료 냄새. “으아, 이상한 맛!” 인디아 게이트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니 분뇨 냄새가 진동한다. 싸지른 데로 굳은 것들이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에 제각기 모양으로 나뒹군다. 어떤 이의 것은 저기 도로 앞 경계석까지 흘렀고, 어떤 짐승의 것은 블록 판 몇 개나 해 먹으며 동그랗게 흘렀다. 어느 것은 이쪽으로 흐르는 중. 그 냄새가 손이 되어 이미 창자로 들어간 반죽을 주무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건물 담장을 따라 심어진 앙상한 나무가 만든 구멍 숭숭 뚫린 그늘에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있다. 그들의 옷에 얼룩덜룩한 흔적이 새까맣게 쌓였다. 얼굴들을 보니 녹록지 않은 그만의 삶이 어려있는 것 같다. 이제 꼬랑지만 남은 사모사에서 그 인생의 맛이 나는 것 같으니 나는 내내 삼키지 못했다.    


인디아 게이트 앞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해 잠시 묵념하고 레드포트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인도의 지하철은 꽤 쾌적했고 양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보기와 다르게 소매치기가 있다고 하니 정신을 집중해서 가방을 수호하기로 한다. 괜스레 마음이 쫄아붙어 시선이 요동치는데 이런 얼굴은 뭔가 대단한 걸 숨긴 사람처럼 보여서 오히려 타깃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불현듯 ’나는 빈털터리‘ 모드로 일관한다. 나는 정말로 가진 것이 없어 마른 몸의 허접데기처럼 보였으리라. 출구를 빠져나오자 들이닥치는 현장의 냄새에 왠지 모를 편안함이 몰려온다. 해 질 녘, 내려앉은 노을을 드레스처럼 걸쳐 입은 레드포트가 암적색의 광채를 뿜으며 서있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슬슬 야시장을 구경하고 돌아가면 좋겠다 싶었다. 내 눈에만 볼거리인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시장에 들어선 지도 모른 채 걷고 있었는데 조명 한 줌 없는 자리에 쪼그려 앉은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하얗다 못해 푸른 광을 내는 흰자위가 깜빡이지 않았다면 한참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한 두 명 남짓 앉을 비좁은 자리에서 뭔가를 팔고 있었고, 가만 보니 뒤집어진 낡은 나무박스 위에 몇 가지를 올려놓았는데 도무지 뭔지 모르겠더라. 가슴을 도려내어 꼬챙이에 꽂아둔 건 개구리는 아닌 거 같았고, 해양생물로 추정되는 어떤 몸통은 최후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비극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나는 이게 뭐냐고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릴 적 가 본 모란시장 풍경이 떠올랐다.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들- 불에 까스려진, 동네를 떠돌았을 개들의 흉측한 맨 몸과 눌어붙어버린 눈꺼풀과 귓 끝. 그리고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괴이했던 냄새. 거긴 밝았고 여긴 어두운데  어디가 닮았다고 느낀 걸까. 생기가 스스로 어둠에 숨어버린 건지 달려드는 날파리를 무심한 표정으로 내쫓고 있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면서 나는 그곳을 나왔다. 그리곤 1루피라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던 짜파티를 질겅질겅 씹으며 릭샤꾼과 흥정하다 화딱지가 나버리는 바람에 어딘가 껄렁해진 모습을 하고 메인 바자르로 돌아왔다. 맥주 생각이 많이 났다.


방에 들러 오늘 산 긴바지로 갈아입고 나왔다. 미음자 복도를 빙 두른 데코타일에는 어제 보지 못한 파란 낙타가 그려져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낙타가 모래 언덕을 넘고,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줄지어 걷는 모습을 보다 보니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 앞이었다. 그 계단 끝에 난 큰 구멍을 콘크리트를 두들겨 패서 뚫어놓았는지 마감이 엉망이고 볼품이 없었다. 수평이 맞지 않은 계단은 여기저기 깨져 있었고 주저앉은 천장 끝으로 갈수록 캄캄했다. 엉거주춤 어둠을 기다리자 하찮은 인테리어 소품인 형형색색 알전구가 소심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너무 캄캄하네. 뭐가 보여야 말이지’


이게 양파인가 소시지인가 못 알아볼 정도로 어두웠지만 맛은 좋았다. 오물오물 씹으면서 맥주와 함께 삼켰다. 그러나 사달은 두 번째 메뉴가 막 나오려고 할 때 났다. 나는 마시던 맥주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처음엔 크고 까만 먼지 뭉치 같은 게 바람에 떠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게 바닥 타일의 줄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움직임을 보면서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고 내 직감은 이미 답을 썼다. 그건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였다.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던 나는 허리를 다 펴지도 않은 채로 어물쩡 걸어가서 조심스럽게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아.. 역시’ 짧은 탄식이 흘렀다. 달빛을 받아 더욱 까맣고 반질반질한 타원형의 등껍질을 가진… 바퀴벌레였다. 어두워서 다른 벌레인가 다시 확인했지만 확실했다. 그것은 위험요인을 감지하느라 더듬이 끝을 예민하게 세우다가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부동했다. 아흐윽, 어른 손가락 두 마디를 넘길 덩치만큼이나 굵은 더듬이는 내가 뒷걸음질 치니 수맥봉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 벌레가 있어!” 그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리는가 싶던 친구는 조금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모른 채 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서 말했다. “여기 바퀴벌레가 있어.”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말하니 그 방향을 분명히 본 친구는 말했다. “어 맞아. 아까부터 있었어.“ 그러더니 머리를 아래로 꼬꾸리고 다시 말했다. ”봐봐. 여기에도 있잖아.“ 내 시선이 곧장 테이블 아래로 따라갔다. 거기엔 여러 마리가 회의를 하듯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있었다. 친구는 태연했다. “조용히 하자. 여기 우리말고도 사람 많잖아.”


바퀴벌레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곤충 따위에 겁이 없는 편이지만 이 까만 벌레는 다르다. 나는 허기를 잃고 소름이 돋아서 뒤통수를 계속 긁고 있었다. 그 사이 내 눈은 어둠에 더 적응이 돼서 우리 식탁 밑뿐 아니라 뒤에 앉은 사람들의 근처에도, 주문을 받고 있는 종업원 다리 사이에 바퀴벌레도 보였다. 저 끝에 있는 화단부터 이쪽 화장실 근처까지 유유자적 기어 다니고 있었다. 축제를 즐기러 나온 떼거리, 그야말로 바글바글한 수준이었다. “말도 안 돼.” 테이블을 치우던 종업원이 실수로 달달한 음료라도 찍 흘리면 와르르 달려드니 그 모습이 줄다리기 끈을 잡은 대열처럼 보였다. 사람들 보폭 사이에선 호기롭게 죽은 척을 하다 다시 움직이곤 했다. 레스토랑은 그렇게 지상낙원이 되어 잘 거둬주었는지 녀석들의 등딱지가 땡글한 고약처럼 윤기가 반지르르했다. 약은 안치는 건지 비틀거리는 건 한 마리도 안보였다. 더 이상 그곳에 앉아 있을 수 없게 됐다. 음식 위는 물론이고 빙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위에도, 주방에 쌓여 있을 그릇 사이사이에도, 화장실 다녀온 사람 엉덩이 위에도 그것들이 기어 다닐 거라는 공상에 몸서리가 쳐졌기 때문이다.





*짜이: 인도 아대륙에서 주로 마치는 향신료가 가미된 밀크티.

*사모사 만두: 감자와 채소, 커리 등을 넣어 만든 삼각형 모양의 튀김. 인도나 네팔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간식으로 많이 먹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인디아 게이트: 인도 뉴델리의 중앙 교차로에 서 있는 전승기념물. 영국 식민 시절, 영국의 독립 약속을 믿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인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위령탑이다.

*레드포트: 인도 무굴제국의 5대 황제인 샤 자한에 의해 델리 북쪽 야무나 강변에 건설한 성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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