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돈 첫 만남
기억이 섞였습니다. 손보미의 <불장난>이 대상작이었던 2022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맨 마지막에 실린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음영으로 처리된 이상의 얼굴과 빨간색 바탕에 쓰인 ‘불장난’이라는 하얀 글자, 이상문학상 시그니처인 안 예쁜 그 표지를 넘기고 넘기면 나왔던 마지막 작품, 그 작품집으로 독서토론을 주제 하던 선생님이 참가자들에게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냐 물어봤던 거,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라고 조심스럽게(아마 아무도 이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그래서 그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을까 봐) 대답했던 장면이 똑똑히 기억나는데?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2015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대상작입니다. 그리고 내가 본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2019년에 묶인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에, 거기 맨 마지막에 실려 있습니다. 두 작품집을 비슷한 시기에 독서토론 했기 때문에 섞였는가 봅니다.
그렇게 정지돈의 소설을 처음 만났습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에 흥미를 느낀 토론자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론은 난해하다. 뭘 얘기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였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가장 좋았다고 고른 건 정말 무슨 말인지, 뭘 얘기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작품이어서였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재미있었습니다. 원래 소설은 재미있는 거 아닌가,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내 눈에 구별될 정도면 잘 짜인 소설이겠지, 그런데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원래 그런 거’에 들어맞지가 않았습니다. 단편 하나에 들어간 정보량이 무시무시했고, 실존인물의 역사와 배경이 가상 인물과 사건과 뒤섞이는데, 어디에서 섞였는지 구글링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말이지 읽기에는 불친절하고 귀찮게 하는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나았습니다. 답답하지가 않았습니다. 소설의 전형일(아마도 좋은 전형일) 9편을 읽다가 만난 낯선 작품이라 더 호기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아님 문학을 별로 안 읽고 몰라서 나만 놀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지돈 작가에 대한 온라인 파파라치(ㅎ)가 된 것은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을 읽은 후부터입니다. 이 산문집은 문학동네의 편집자 K가 제안을 해서 쓰게 된 것이라 하더군요. 편집자 K의 책추천 유튜브채널을 빼놓지 않고 보는 중이었습니다. 본인이 편집한 책이기도 했고 어느 날 채널에서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이 소개되었습니다. 편집자 K는 하나의 주제를 이렇게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간 산문집은 없지 않았던가, 이런 산문집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좋은 책을 스스로 발견할 만큼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누군가가 추천한 책을 웬만하면 믿는 편이므로 당장 정지돈의 산문집을 사 읽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이 산문집인가? <건축이냐 혁명이냐>도 산문집이었나? 잠깐 혼란. 아닌데 단편소설로 상을 받았는데? 하나는 소설이고 하나는 수필인데 그렇게 구별 지을 만한 뭐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진심으로 정지돈이 궁금해졌고,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은 정말 들입다 파며 읽었습니다. 이 책이 왜 신선한지, 작가 정지돈이 어떤 문학적/철학적 자장 안에서 글을 쓰는지 내가 판 만큼 아는 척을 해댔습니다. 이 책을 독서토론에 부치고 진행도 하였는데, 별로 큰 호응은 없었어요. <건축이냐 혁명이냐> 때와 비슷하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들 그랬고, 독서토론장은 흡사 나의 강연장(열띤) 비슷하게 흘러갔습니다. 실패죠, 독서토론으로서는.
<나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로 넘어가야 하는데..., 항상 늦습니다. 이 작품은 <비유>라는 문학웹진 66호에 실렸습니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냥 듣기만 했던 <비유>는 서울문화재단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격월로 발행하고 있는 온라인 문학잡지입니다. 2018년 1월에 창간호가 발행되었고 현재 67호까지 나와 있습니다. 웹이나 핸드폰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고요, 다른 쪽으로 공유할 수는 없지만 원한다면 프린트해서 개인소장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비유> 읽기를 독서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다음 달부터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쩌다 <비유>가 들어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지금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나, 함께 읽기에 좋은 건 뭘까... 를 고민하다가 어찌어찌 <비유>로 왔습니다. <비유>로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66호의 목차에서 정지돈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 첫 단락에서 이미 다른 건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결정되었습니다.
“픽션 컬렉티브 투는 미국의 대형 출판사에서 상업적으로 출간하기에
너무 도전적이거나 비정통적인 소설을 출간하는 일에 전념하는
소수의 대안 출판사 중 하나입니다.”
_FC2.org
들어가며
이 소설은 미국의 소설가 랜스 올슨(1954~2024?)의 삶과 인터뷰를 토대로 쓰였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다만 랜스 올슨 스스로 인터뷰에서 말했듯 그의 삶은 때때로 픽션으로 여겨졌다.
소설의 시작이 저렇습니다. 나는 구글창을 일단 띄워놓고 한 줄 한 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읽기 전에 ‘픽션 컬렉티브’, ‘랜스 올슨’이 실존하는지를 구글에서 찾았습니다. 랜스 올슨에 대해서 쓴다고 하고 ‘2024?’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그게 관심사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랜스 올슨의 삶과 인터뷰를 토대로 썼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이 질문이 내 안에서 쏟아집니다. 이 단편을 해부하는 데 하루 웬 종일과 다음 날 한 나절을 썼다는 말씀을 우선 드립니다. 해석이 아니라 해부입니다. 구글 검색창은 필수, 검색자료를 읽다가 다시 돌아오고, 검색 자료의 링크를 타고 들어가 듣도 보도 못한 외국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봅니다. 들을 외국어능력이 안 되기에 번역자막을 봅니다. 유튜브에 원래 번역 서비스가 있었나요, 있긴 했던 거 같은데 요즘 동시 번역 자막의 수준이 좀 더 좋아지지 않았나요? AI 덕분일까요? 다시 소설로 돌아오기까지 한나절이 걸립니다. <나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의 이 색다른 독서경험은 다음 회차에 써보는 시도를 할까 합니다. 너무 길어져서... 식구가 들어왔으니 밥을 차려내야 하기도 하고.